동우회 소식
걸어서 제주 속으로 3(중산간도로편 1)
 김승태
 2010-05-01 08:59:03  |   조회: 64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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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미 창립 10돌을 기념하기 위한 ‘걸어서 제주 속으로’는 제주섬을 8구간으로 나눠 2009년 3.1절(90돌)에 시작하여 4.19에 마쳤고, 5월 5일 어린이날에는 한라산 정상을, 그 2(부제:한라산을 넘어서)는 한라산을 기점으로 북~남인 1100도로와 5.16도로, 서~동인 제1산록도로와 제2산록도로에서 이뤄졌으며 12월 25일에는 한라산의 어리목~웃세오름휴게소~돈내코 탐방로를 종주하면서 대단원의 막(총거리 334.5km, 연인원 166명)을 장식했다. 이와 함께 2월 28일의 가파도, 8월 16일의 사려니숲, 12월 27일의 우도 탐방 등은 ‘걸어서 제주 속으로’를 진행하는데 촉매가 되기도 했다.

‘걸어서 제주 속으로’는 무엇을 남겨주고 있을까? 좀 더 가까이에서 제주 문화의 이해, 걸음이 주는 가르침의 체득, 지난날들에 대한 자성(自省)과 살아갈 날들에 대한 나름대로의 설계로 귀착시킬 수 있을 것 같다.

‘걸어서 제주 속으로 3’은 작년도와 마찬가지로 3.1절에 시작하려 했지만 전국적으로 비 또는 눈 내림이 예보돼 하루 앞당긴 2월 28일에 시작하였다. 어제의 비 내림은 겨우내 온갖 찌꺼기들을 내려앉게 해 버렸는지 맑은 하늘에 상쾌한 공기는 최고 최상의 분위기를 자아내게 했다.

중산간도로(1136번)는 제주제2우회도로(濟州第二迂廻道路)라고도 한다. 이 도로는 제주시 아라동을 기점으로 해발 200~400m의 한라산 밑 허리를 한 바퀴 돌아 제주시에 이르는 지방도로로서 총길이는 176.8㎞이다. 왕복 2차선은 157.8㎞, 왕복 4차선은 14.7㎞, 왕복 6차선은 4.3㎞이고, 도로 포장률은 100%이다. 원래는 국도 제16호선이었으나 제주도가 특별자치도가 되면서 지방도 1136호선으로 변경되었다. 1984∼1985년 아라∼봉개 구간을 시작으로 1989∼1992년 종달∼성읍 구간이 완공되었으며, 전 구간에 걸쳐 소교량이 36개소 있다.

제주섬의 해안가를 따라 일주하는 이 도로는 제주제1우회도로(지방도 1132호선)의 안쪽에서 나란히 달리며, 서귀포시 안덕면∼서귀포시내에서 왕복 4차선 3.3㎞ 구간이 중복된다. 5.16도로(지방도 1131호선), 1100도로(지방도 1139호선)와도 연결된다. 제주특별자치도의 관광개발과 함께 개설된 해안 경승지를 통과하는 해안도로와 연결되어 관광 및 산업 개발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아라초등학교 사거리(5.16도로와 중산간도로가 만나는 곳)를 출발하여 번영로와 만나는 지점(대기고 앞)을 거쳐 선흘리 목선동사거리까지는 출발 6시간 25분(간식 포함)이 소요되었으며 주거리 23.6km, 보조거리 2.5km를 포함해 모두 26.1km였는데 그 여정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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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초등학교/1131*1136도로 교차점(08:17) - 금산공원입구(08:32) - 신성여중․고입구(08:42) - 영평초교(09:04) - 제주중앙고입구(09:19) - 다라쿳복지회관(09:30) - 용강동웃두무네표석(09:59) - 아봉로*번영로 교차점(10:18) - 봉개초교(10:21) - 서회천(10:47) - 조천읍 경계(11:38) - 대흘초교(12:30) - 선흘리복지회관(14:04) - 웃바매기오름표석(14:29) - 선린지리조트입구(14:35) - 목선동사거리(14:42)

-- 주요 역사의 현장
0 금천마을:1600년 경에 지금의 금산물로 칭하는 천(泉)을 중심으로 촌락을 형성하였으며 성종 때는 국마를 방목할 적에 이 곳에서 물을 먹였다 하여 걸마로촌(巨乙馬路村), 거마로(巨馬路) 등으로 불렸으며, 1970년 경에 금산공원 내 식수로 사용하던 금천수(錦泉水)의 이름을 딴 금천(錦泉)마을로 칭하게 되었다. - 참조:마을 설촌유래 표석

0 영평마을:영평동은 영평상동(寧坪上洞)과 영평하동(寧坪下洞)으로 나뉘는데 영평상동의 옛 지명은 ‘가시나물’이라 칭하였고, 영평하동은 원래 전못(前池:앞못)이라 불리우는 곳을 중심으로 하여 마을이 형성되었는데 ‘알무드내’라 칭하였는데 1904년 『삼군호구가간총책』에는 ‘영평(寧坪)’이라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마을복지회관 앞에 마을향약과 마을 유래를 새긴 기념탑이 세워져 있다. - 참조:마을 홈페이지

0 다라쿳마을:월평동의 옛 이름은 ‘다라쿳’으로 ‘다라’는 높다는 뜻을 가진 고구려어로 ‘높은 곳에 있는 숲 또는 덤불’이란 뜻으로 『탐라순력도』(1702년)에는 ‘별라화(別羅花)’로 『탐라지도』(1709년)에는 ‘별라화리(別羅花里)’로 표기되었는데 이는 다라쿳의 한자 표기이며 『삼군호구가간총책』(1904년)에는 ‘월평(月坪)’으로 기록되어 있다. - 참조:마을 홈페이지

0 용강마을:보통 웃무드내라고 부르는 마을로써 상무등천리, 상무등천촌 등으로 표기하여 오다가 1904년에 삼군호구가간총책에는 용강이라 하였다. 1914년 제주면에 속했으며, 1931년 제주읍에 속했고, 1955년에는 시관할구역이 되었으며, 1962년 1월 동제실시에 따라 봉개동회 관할이 되었다. - 참조:마을 홈페이지

0 봉개동:봉개악리 또는 상봉개악리와 하봉개악리로 불리어 오다가 1709년 봉개악리 또는 봉개리로 표기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봉개리라 칭하고, 1931년에는 제주읍에 속했으며, 1955년 9월 제주읍의 제주시 승격에 따라 봉개동에 편입되었다. 1962년 1월 말단 행정구역의 정비강화에 따른 임시조치로 봉개동이 되었다. - 참조:마을 홈페이지

0 회천동:회천동을 세은쇄리, 세은촌리로 표기되어 오다가 1914년 4월 군면폐합에 따라 제주면에 속하게 되고, 1955년 9월 제주읍의 제주시 승격에 따라 회천동이 되었다. - 참조:마을 홈페이지

0 와흘리:와흘은 한라산의 정기를 받은 산맥의 모양이 완만하고 천천히 바다로 흘러내리고 있어 그 지형 모습이 편안하게 사람이 누운 형체와 같다고 한다. 이러한 지형 모습을 본떠서 눌 와(臥)자와 산 높을 흘(屹)을 써서 와흘리라 하였고 삭음으로 눌흘이라고 불렀으나 세월이 흐르다 보니 눌흘이 논흘로 발음이 바뀌어 부르다가 논흘을 노늘로 부르게 됐으며 1918년 세부 측량이 되어 행정구역이 확정된 후부터는 ‘와흘리’라 부르게 되었다. - 참조:마을 홈페이지

0 와흘본향당:제주민속자료(제9-3호)로서 와흘리 주민들의 생산(生産) 물고(物故) 등을 관장한다. 제일은 1월 14일(대제일)과 7월 14일(백중제)이다. 당일 제일에는 많은 주민들이 참가하는데 커다란 팽나무와 함께 진설해 놓은 제물들이 서로 어울려 장관을 이룬다. 2009년 1월 28일 무속행위 등으로 화재가 발생하여 당분간 본향당내 출입을 금지하고 있음

0 대흘리:설촌 당시 ‘한흘’이라고 명하였다고 한다. ‘한흘’은 옛날 이 곳에는 수풀이 우겨져 있었음에 연유하고 있다. 일제 당시 한자표기로 대흘리로 고쳤다고 한다. 1730년경에 유재융(1684∼773)씨에 의해 설촌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 참조:마을 홈페이지

0 와산리:예전에는 와호(臥虎)산이라 불리웠다고 한다. 이 마을 남쪽에 있는 당악(堂岳)이란 이름을 묘사하여 그렇게 불렀다. 이 당악의 형태는 백호(白虎) 범이 누워있는 형태와 같다고 하여 와호산이라 칭하게 되었다. 약 350년 전에 설촌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 참조:마을 홈페이지

0 선흘리:약 650여년 전에 현씨에 의하여 설촌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는 마을로 웃바매기오름 분지에 사시사철 흐르는 샘이 있는데 현씨가 사용했다 하여 ‘현샘’이라 부르다가 지금은 '선샘'이라고 개칭. 현재의 마을명은 1900년경 남단 이태성 선생이 착한 기상이 산과 같이 높게 뻗어 나아가라는 뜻에서 선흘이라 한데서 유래하고 있다. - 참조:마을 홈페이지

0 알바매기오름:밤(栗)알과 같이 생긴 2곳의 오름이 조천읍 선흘리 목선동 사거리를 중심으로 아래쪽에 위치하고 있어 알(아래)+밤+애기(아기의 l모음 동화), 밤(栗)과 같은 형체를 하면서 아래쪽에 위치하고 있으므로 알밤오름, 한자로는 하율악(下栗岳), 하야막지악(下夜漠只岳)으로 표기하고 있음

0 목선동:선흘2리에 소속된 동네로 한림 이시돌 임신부(피제이맥그란치)가 이 땅을 사서 양돈을 목적으로 22동으로 분류하여 귀농 정착을 하면서 형성되었다. 길가에 세워진 전기가설기념비가 눈길을 끈다. - 지역사회 개발을 위하여 버스노선 개통 전기가설 등 물심양면으로 그 노고가 지대하므로 이에 기념비를 세우다. 1978년 12월 이시돌농장일동 세움

제주의 자연, 한 마디로 표현하면 ‘참 아름답다.’이다. 그 어디를 가더라도…. 해안가는 해안가 나름대로, 한라산과 오름을 오르면 한라산과 오름 나름대로…. 중산간도로를 거닐면서 전혀 싫지도, 힘들지도 않았다. 작년도에 하루 30km 이상 거닐었던 경험이 있긴 하지만 이 경험과는 무관하게 끊어질듯하다 이어지는 중산간 마을 나름대로의 풍광이 피로를 반감시켜 주었던 것 같다. (2010. 02. 28.)
2010-05-01 08:5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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