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우회 소식
걸어서 제주 속으로 3(선흘-신산)
 김승태
 2010-05-10 21:51:27  |   조회: 6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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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봄의 문턱에서 올해처럼 비가 많이 내리는 해는 생애 처음인 것 같다. 지난 2월부터 3월 초순까지 강수량도 강수량이지만 간혹 천둥과 번개와 강풍, 거기에다 짙은 안개까지 껴 햇빛을 볼 수 있는 날은 헤아릴 정도다. 제주기상청 예보는 시시각각으로 변해 도저히 종잡을 수 없는 실정이고, 강원 산간에는 가끔 폭설 경보까지 발효되고 있으니 기상 이변임이 틀림 없다. 봄 장마(春霖)를 실감하고 있는 것이다.

'걸어서 제주 속으로 3'을 시작한 지난 2월 28일 화창함 이후 매일 지겹게 내리는 비는 토요일인 3월 6일의 정기 산행 때 기적처럼 잠깐 소강 상태를 보였다가 저녁부터 다시 장대비로 돌변하자 출발 시각을 부득이 한 시간 늦췄다. 서울에 거주하는 영원한 군동기인 이승무 교수도 제2구간 걷기에 동참하기 위해 모처럼 제주에 내려왔다.

제2일째인 3월 7일 09:00 영락교회주차장에 모여 출발지인 선흘리 목선동사거리에 도착하자 빗방울은 가늘어지면서 알바매기오름 등성이에는 안개까지 피어올랐다. 출발 기념 사진을 촬영하고 걷기를 30여 분, 비는 그치고 사방의 시계도 훤히 트였다. '제주도지(2006)'에서 소개하는 중산간도로의 개설은,
"중산간도로는 1939년 일제강점기 말기 일본 군인들이 군사용으로 녹산장벌판(현 제동목장)을 중심으로 성산-표선, 송당-평대, 교래-조천 방면으로 도로 개설을 시작했는데 이에 앞서 어승생악을 중심한 일본군의 '팔항(八巷)도로가 상당 부분 이 도로에 포함되었다.
이 도로가 재개발되기 시작한 것은 5.16군사정변 도지사인 김영관 제독이 4.3사건 이재민들을 해안마을 피난살이에서 원래 그들이 살았던 중산간마을로 복귀시키는 시책과 더불어 중산간 개발을 행정 목표로 세우면서부터이다."라고 밝히고 있다.

선흘리 목선동사거리에서 출발하여 신산리 입구까지는 6시간 10분(점심 포함)이 소요되었으며 주거리 25.0km, 보조거리 1.0km를 포함해 모두 26.0km였는데 그 여정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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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선동사거리(09:40) - 조천읍/구좌읍경계(09:55) - 북오름(10:04) - 상덕천리(10:15)) - 종제기오름(10:30) - 송당리사거리/큰내교(11:07) - 송당복지회관/송당초등교(11:14) - 구좌읍공설묘지입구(11:40) - 손지오름표석(12:08) - 용눈이오름안내문(12:28) - 수산2리입구/점심(12:55) - 보호수(14:11) - 수산초등교/수산진(14:17) - 수산리사거리(14:31) - 난산사거리(15:28) - 신산리입구/통오름/독자봉(15:50)

-- 주요 역사의 현장
0 북오름 : 오름의 모양새가 북(鼓)을 닮았다 하여 북오름, 이를 한자로 고악(鼓岳)이라 하고 있다. 2009년 하반기에 산책로가 개설되었는데 중산간도로를 기점으로 등성이를 따라 T자형을 이루고 있어 오르내림에 불편이 따르고 있음

0 덕천리 : 원래는 비가 오면 토질이 검고 질퍽질퍽하고, 지세가 평탄하지 않아 우뚝우뚝한 돌동산이 많아 검흘(琴屹)이라 호칭했는데, 이후 이 마을에 '모산이물'이란 연못(池)을 주민들은 '덕이 있는 물'이라 해서 마을 이름을 '德泉里'라 호칭하게 됐다고 한다. - 참조 : 마을 홈페이지

0 종제기오름 : 오름의 모양새가 종제기(종지의 제주어:간장이나 고추장 따위를 담아 상에 놓는 작은 그릇)와 비슷하다 하여 종제기, 또한 체오름 서쪽에 위치한 웃식은이에 견주어 알식은이, 이를 한자로 하씨근악(下氏近岳)이라 하고 있다. 한편, 식은이라는 의미는 옛날 어느 지관(地官)이 이 곳을 지나다 “이 산은 벌써 맥이 식었다.(死地).”라고 한데서 연유하고 있다고 전해지고 있음

0 송당리 : 송당모루(송당지)라는 당이 있으므로 인해 송당리(松堂里)라 호칭하고 있다. 전설에 의하면 설촌은 1,500년(年)을 헤아릴 수 있으나 고려조 의종시(毅宗時)에 중시랑 고조기(高兆基)가 '송당야유(松堂夜留)'라는 기록(고씨족보)이 있고 김해김씨인 김태백(金太伯)의 13세조 김언양(金彦良)이 조천면(朝天面)에서, 광산김씨인 김진태(金鎭泰)가 남원면(南元面)에서 이 곳으로 이주했다고 하니 900여 년 전에 설촌이 된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 참조 : 마을 홈페이지

0 손지오름 : 오름의 모양이 한라산과 비슷하므로 한라산의 손자라는 뜻에서 손지(손자의 제주어)+오름/봉, 이를 한자로 손악(孫岳), 손지악(孫枝岳, 孫支岳)이라고도 하고 있다. 이 오름의 모양새나 어원적인 측면에서는 한라산이 아니라 오히려 표선면 가시리의 따라비의 손자로서 손지오름으로 불려진 게 아닐까 함

0 용눈이오름 : 오름 가운데 큰 홈통이 있는데 거기에 용이 누었던 자리 같다고 해서 용눈이, 용논이, 용눈오름, 이를 한자로 용와악(龍臥岳), 용유악(龍遊岳)이라 표기하고 있다. 표선면 가시리의 모지오름과 더불어 승천하는 용의 전설을 배경으로 지니고 있음

0 수산리 : 수산리는 1,000여 년 전에 속칭 남다리, 통개남물 및 지금의 臣洞(큰동네) 인근 지역에 고씨, 양씨 등이 살기 시작하여 점차 생활 여건이 좋은 현재의 수산1리 및 2리에 정착하여 현재에 이르는 것으로 전해진다. 수산리라는 이명(里名)은 원래 首山(수산)으로 명명되었다. 그러나 부락이 커지면서 인구가 늘어나고 학숙당(學塾堂이) 설립되었으며, 향교 출입자가 많아지면서 인재가 많이 배출되어 양촌으로서의 입지가 굳어지게 되자, 首山 의 '首'는 '우두머리', '처음', '먼저', '머리' 등을 표현하는 반면에 '꾸벅거리다', '魁首自白(괴수자백)' 등의 의미를 갖고 있기 때문에 양촌으로서의 양반, 선비가 사는 마을의 이름으로는 부적당하다고 해서 水山으로 개명하게 되었다. - 참조 : 마을 홈페이지

0 수산진성(水山鎭城) : 조선 시대 제주의 방어시설은 3성 9진 25봉수 38연대로 요약될 수 있다. 이러한 본격적인 제주 방어시설은 이미 고려 말부터 논의된 것으로 추정된다. 수산진성은 도 안무사 한승순의 건의에 의해 1439년(세종 21)에 둘레 약 350m, 높이 약 5m 규모로 9개 진성 중 가장 먼저 축성됐다. 이경록(李慶祿) 목사가 임진왜란 때 성산 일출봉을 천혜의 요새라 판단하고 진성을 성산일출봉 인근으로 옮기면서 폐성됐다가(1597년) 1599년(선조 32) 성윤문 목사가 본래의 자리로 되돌려놓았다. 수산진성은 동-서 134m, 남-북 138m가 넘는다. 수산진성은 성체 대부분이 원형대로 남아 있으며, 성담은 현재 수산초등학교 교사(校舍)와 운동장 돌담으로 이용되고 있다. 동성(東城) 한 부분에는 ‘진안할망당’이라는 신당이 있다. - 참조 : 디지털제주시문화대전에서 옮김

0 통오름 : 오름의 모양새가 통(桶 : 물건을 담는 통 - 밥통․물통)과 같이 생겼다 하여 통(桶)오름으로 불려지고 있음

0 독자봉 : 이 오름이 소속된 신산리와는 멀리 떨어져 있어 오름이 외로워 보인다 하여 독자봉(獨子峰․獨山), 봉수대가 있음으로 인해 망오름, 별칭으로 사자봉(獅子峰)이라 하고 있음

'QOOK TV' 2010년 3월호에서는 '걷기, 명상이자 여행이라 불리는 그 이름'이란 제하로 걷기 여행의 장점을,
"1) 몸이 건강해진다. 2) 같이 온 일행과 그 동안 못 나누었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3) 일상에서 벗어나 자연과 하나가 되어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이 된다. 4) 유산소 운동과 다이어트에 도움이 된다. 5) 아름다운 풍광과 그간 보지 못했던 비경을 직접 볼 수 있다. 6) 긍정적인 생각을 하게 된다. 7) 사계절 다른 여행지로 계절별 여행을 만끽할 수 있다. 8) 난이도를 정해 자신에게 맞는 걷기 여행을 할 수 있다."라 소개하고 있다.

'걸어서 제주 속으로 3'의 제2일째는 위의 2)를 실천한 것 같다. 이 교수와는 가끔 대한민국의 명산들을 오르곤 하지만 이번처럼 제주 길을 걸으면서 오르미들과 살며 살아가는 얘기들을 오순도순 스스럼없이 주고 받음은 큰 수확이 아닐 수 없었다. 걷기를 모두 마치고나서 출발지로 되돌아와 이 교수에게 오름오르미들의 명예회원임을 인정하는 위촉패가 전달되었고, 한 가족됨과 성취의 기쁨을 한데 모아 감격의 '오름! 오르미!'를 힘차게 외쳤다.
(2010. 03. 07.)
2010-05-10 21:5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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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은 2010-05-12 07:20:51
걸어서 제주속으로~~지금까지 만나지 못했던 제주문화를 몸으로 체험한 귀중한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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