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
제주고의 '뿌리찾기'
 김정택
 2010-05-28 09:34:58  |   조회: 3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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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고의 '뿌리찾기'

김정택(제주고100년사편찬위원회 주간)


최근 제주고와 제주고총동창회의 큰 관심사 중 하나는 개교(開校) 시점을 변경하는 것이다. 현재 제주고는 공립제주농림학교가 출범한 1910년 5월 2일을 개교 시점으로 삼고 있어 올해가 개교100년이 된다. 그런데 총동창회는 몇 해 전부터 '사립제주의신학교'가 문을 연 1907년으로 개교 시점을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그러니까 올해가 개교 100주년이 아니라 개교 103년이라는 것이며, 개교기념일 역시 의신학교의 개교일인 7월1일로 잡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제주고의 개교 시점 재조정이 내부 문제로만 그치지 않는 것은 그것이 근대 제주 중등교육의 성격과 역사를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대표적 공립고교인 제주고를 통해 근대교육을 이끌어가는 중요한 축의 하나인 '중등교육'이 제주지역에서 어떻게 뿌리내려 갔는지를 살펴볼 수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제주고와 제주고개교100주년기념사업회가 작년 5월1일 <제주중등교육100주년기념심포지엄>을 가졌고, 제주고총동창회는 개교시점을 1907년으로, 개교기념일을 7월1일로 재조정해 줄 것을 공식 건의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사학계 김찬흡 등 몇몇 원로 동문들이 개교시점 재조정에 사실상 반대했다. 이들은 공립제주농림학교 학생들의 입학허가가 1910년 5월 2일(1910년도 학적부)로 되어있고 이날을 1981년부터 지금까지 개교기념일로 삼았음을 들고 나왔다. 아울러 의신학교의 미미한 출발에 제주고 개교의 의미를 부여할 수 없으며 '공립'으로 탄생한 1910년과 그 이후 연면히 이어온 제주고의 역사를 중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쟁점이 되고 있는 것 중 몇 가지는 문제의 본질에서 점점 멀어지게 된다.

개교 시점의 재조정을 주장하는 쪽은 선각자 윤원구(尹元求 1839~1910)가 도민들의 자율적인 ‘학교비’ 모금에 의해 ‘흥국문민(興國文民)’의 기치를 걸고 대한제국 융희(隆熙) 원년(1907) 오현단에 의신학교를 설립한 이래 전농로 교지와 노형벌로 이어지기까지 하나의 맥락으로 이어져 온 제주고의 역사를 상기시켰다.

사실 1910년대 전국에 관공립 사립학교가 2천 곳이 넘었으나 중등교육과정을 설치하여 중등교육을 실시한 학교는 60여개교에 불과했다. 그 가운데 공립제주농림학교는 사립제주의신학교에서 공립으로 개편되었으므로 현재 전국에 존속 중인 실업학교 중 순수 민족계 민간자본으로 설립된 실업계 학교로서는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셈이다.

결국 논의의 핵심은 제주고의 시작이 사립(1907)이냐 공립(1910)이냐의 관점의 차이가 아니라 개교시점 재조정 반대론자들 스스로도 강조했듯이 제주고의 정체성(正體性)이 무엇이냐 하는 것이다. 개교 100년대의 전국 고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제주 중등교육의 효시'라는 외형적 면모를 중시하면서도 제주 근대화의 원동력이 된 제주고의 역사를 제주교육의 연장선상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오늘날 제주고는 시대의 요청 때문에 비록 실업학교로 성장하고 있으나 교육의 축은 사립제주의신학교 이래로 인재 교육일 수밖에 없다. 여러 가지 어려움 속에서 근대화를 추진해야 했던 도민들에게는 지역사회를 이끌어가는 인재를 길러내는 역할이 오히려 더 중요했고, 제주지역의 중등교육은 제주고에 대한 도민들의 애정과 자주적인 교육 운동의 결과로서 중단 없이 계속 되었던 것이다.

역사의 아픔과 모순, 그리고 오늘의 교육현장도 성찰함으로써 <제주고 100년사> 기술에 있어서도 선배보다 더 훌륭하고 성실하게, 보다 넓고 더 높고 보다 깊이 더 올바른 의미를 부여하는 통합적 학교사의 편찬으로 이어지기를 바란다. 오히려 이번 기회에 제주고를 비롯한 전국의 중등학교들이 지난 한 세기 우리 역사에서 차지해 온 의미를 짚어보고 지금 추구해야 할 정체성은 무엇일까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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