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워하려고 옷 벗고 알몸을 드러내면 신체의 최고 중요부위가 노출되는 것은 당연할 터. 성별을 결정짓는 프라이버시의 핵심부위 말이다. 매일 아침 샤워하려고 화장실에 들어서면 사랑스런 내 딸 은아가 쪼르르 따라 들어온다. 은아의 첫 마디. “아빠! 고추!” 여기까진 좋다. 다음 말. “은아도 고추!” 라며 딸내미는 서슴지 않고 자신의 신체중앙을 검지로 가리킨다. 응당 나는 바로 잡아준다. “은아는 고추 없어.” 대화는 계속된다. “은아 고추 없떠?” “응!” 어느새 내 가슴이 아려온다. (예전 육아일기에서 밝혔듯) 난 독자다. 무녀독남, 정통 독자다. 올해 태어난 둘째 은서마저 고추 없이 세상에 나온지라 아들자식에 대한 미련이 없을 수 없다. 물론 젊은 아빠로서 개인적으로는 굳이 아들에 집착하지는 않는다고 감히 단언할 수 있다. 다만, 나 또한 부모의 자식이고 김씨 집안의 장손이란 태생적 사명감 등에서 비롯된 사회적 부담감이 고추란 말을 사심 없이 받아들일 수 없게 이끈다. 오늘 아침 샤워 때도 은아는 “아빠 고추”란 말을 무책임하게 내뱉었다. 아빠 속도 모르고. 나도 모르게 샤워기 꼭지를 온수에서 냉수로 재빨리 돌렸다. 마트에서도 이 제품, 저 농산물 하나하나 은아에게 가르치다가도 문득 고추가 시야에 들어오면 괜히 인상이 찌푸려지는 요즘이다. 가히 '고추 유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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