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우회 소식
걸어서 제주 속으로 5-서성로(성읍사거리/표선농협~성산항 입구)
 김승태
 2011-06-01 12:18:39  |   조회: 6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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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1년 9·11테러 이후 10년 간 이어져온 미국과 빈 라덴의 숨바꼭질이 드디어 끝을 맺었다. 5월 2일, 미국 오바마 대통령이 오사마 빈라덴을 총살했다고 밝힌 가운데 각국 외신들은 각기 다양한 분석을 내놓고 있는 반면에 알-카에다가 빈 라덴의 사망 사실을 인정하면서 ‘미국인 피가 눈물과 섞이게 될 것’이란 보복을 천명하고 나섰다. 이제 전 세계는 빈 라덴 사망 이후 중동 정세 변화와 국제사회에 미치는 영향에 집중되고 있는 것 같다.

서성로 걷기 제2일째인 5월 8일 어버이날엔 성읍사거리/표선농협 입구에서부터 성산항 입구까지 걸었다. 서성로는 현재 남조로(수망교차로)에서 녹산로(정석항공) 구간이 공사 중이다. 2010년 7월에, 성산읍 고성에서 성산항 입구(갑문 앞)까지 3.2km 구간을 4차로 확포장 완료(193억 원)했는데 위의 공사 구간이 개통되면 제2산록도로(한경면~서귀포)와 연계되면서 명실상부하게 제주의 동~서를 횡단하는 총 연장 77.8㎞의 ‘동서 횡단로’ 시대가 열리게 된다. 이 도로는 대부분 거의 직선 코스를 이루는데다 논스톱 도로망을 갖추고 있어 운행 시간이 많이 단축되고 있다.

서성로 제1일째 도착지가 가시사거리라서 이 곳에서 출발함이 순리지만 가시사거리부터 성읍사거리까지 4.5km 구간은 중산간도로(1136번)와 중용되고 있는데 이는 지난 2010년 3월의 '걸어서 제주 속으로 3(신산~한남)' 때 걸었기 때문에 성읍사거리를 출발지로 삼았다, 출발지까지는 차량으로 이동했고 주거리 16.0km, 보조거리 0.1km를 포함해 모두 16.1km였으며, 3시간 42분(간식 포함)이 소요되었는데 그 여정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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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읍사거리/표선농협 성읍지점(08:42)~성읍문화마을 입구(08:47)~영주산 입구(08:58)~모구리야영장 입구(09:15)~나리시오름 입구(09:33)~유건에오름 입구(09:40)~수산2리 입구/금백조로 기점(10:41)~수산리 입구(11:00)~고성교차로(11:33)~관치기해변 입구(11:49)~성산리 입구(12:07)~성산항 입구(12:24)

--- 주요 역사의 현장

0 성읍사거리/표선농협 성읍지점 : 중산간도로(1136번)에서 서성로로 갈려나가면서 사거리를 형성하고 있음

0 성읍문화마을 : 성읍민속마을 성곽 내에 거주하는 주민들을 성곽 밖으로 이주시킴으로써 성읍민속마을 정비 사업을 원활하게 추진하기 위해 1994년도에 1차, 2004년 7월부터 2006년 10월까지 5만2800㎡ 규모의 문화마을 조성했음

0 영주산 : 신선이 살아 신령스럽다 하여 영모루라 불려졌는데 이후 한자로 영지(靈旨․ 瀛旨)로 표기되다가 발음이 비슷한 영주로의 정착, 한라산의 분신으로 신산시(神山視)하는 데서 그 별칭이 쓰여 졌다는 설이 있음

0 모구리야영장 : 2003년 5월 남제주군(서귀포시)에 의해 조성된 야영장으로서 모구리오름의 기슭 161,688㎡ (4개 영지 27,070㎡) 면적에 잔디운동장, 극기훈련장, 놀이마당, 산책로 등을 갖추고 있음

0 모구리오름 : 오름의 모양새가 마치 어미개가 새끼를 껴안은 것과 같다고 하여 모구리, 이를 한자로 모구악(母狗岳)이라 하고 있음

0 나리시오름 : 이 오름의 유래에 대해선 잘 알려지지 않고 있으나 그 모양새가 소라고둥처럼 나사형으로 생겼다 하여 나시리, 이를 한자로 대역하여 나(螺 : 소라)+시(施 : 퍼지다)+ 악(岳), 나시리악(羅時里岳), 나슬이악(羅瑟伊岳) 등으로도 표기하고 있음

0 유건에오름 : 오름의 모양새가 옛날 선비들이 쓰는 두건처럼 생겼다 하여 유(儒)+건(巾)+에(이)+오름, 유래가 전해지지 않는 ‘이기네(내)․이근이․이근악(伊近岳)’으로도 불려지고 있음

0 수산2리 입구/금백조로 : 서성로에서 구좌읍 송당리를 잇는 금백조로가 갈려나가는 곳임

0 수산리 : 1,000여 년 전에 속칭 남다리, 통개남물 등에서 설촌이 이뤄졌다고 전해온다. 원래 수산(首山)으로 명명되었는데 양촌으로서의 양반, 선비가 사는 마을의 이름으로는 부적당하다고 해서 '인자요산 지자요수(仁者樂山, 智者樂水)에서 '水'자와 '山'자를 따서 수산리(水山里)로 개명했다고 한다. 1946년 8월에 남제주군 성산면 수산1, 2리, 1980년 12월에 읍 승격으로 성산읍 수산1, 2리가 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 '마을 홈페이지' 참조

0 고성리 : 1200년대 원나라가 '수산평'에 목장을 만들면서 거주자들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조선조 태종 16년(1416) 5월에 제주가 삼읍으로 분할되면서 『고성리』는 정의현청에 소재지가 된다. 그러나 바다가 가까워 왜구의 침입에 대비하기가 용이하지 않다하여 수산리로 옮겨지고 이후 1609년에는 정의현 좌면 면역소 소재지가 되었다가 1915년 정의면 고성리로 1933년에는 행정리 <고성리 1구 > <고성리 2구 >로 나뉘었는데 1951년 4월에 1구는 고성리로 2구는 신양리로 분리되어 오늘에 이른다. - '마을 홈페이지' 참조

0 고성교차로 : 서성로와 일주도로(1132번)가 만나는 곳임

0 관(광)치기해변 : 바다에서 시체가 물결에 밀려와 이 바닷가의 모래밭에 올라오면 성산 사람들이 관을 짜서 이 곳에서 입관을 하고 묻어 줬던 데서 연유한 이름(또는 바다가 광활하다 하여 명명되었다고도 함) - '걸어서 제주 속으로 1'에서도 소개함

0 성산리 : 제주 최동단 해안가 한소반도 위에 자리하고 있고, 육지와 가까운 섬이 연안류의 작용으로 발달한 사주에 의하여 육지와 이어진 섬 아닌 섬의 마을이다. 그리고 동으로는 우도 서로는 신양과 고성, 북으로는 오조와 각각 이웃하고 있다. - '마을 홈페이지'에서 옮김 -

지난 3월 1일부터 시작된 '걸어서 제주 속으로 5'는 '지방도로를 따라서'란 부제 아래 9차례에 걸쳐 이뤄졌다. 다만, 제성로(제주~성산)와 제안로(제주~안덕)는 구간별로 미개설 구간이 많아 다음으로 미뤘고, 도로명이 붙지 않은 일부 도로들에 대해서는 하반기로 남겨 두었다.

‘걸음은 걸은 만큼 행복하다.'고 했던가? 걸어보고 싶은 그 길을 마음 맞는 동료들끼리 걸으면서 세상사 얘기들을 도란도란 나뉨은 걷기의 또 하나의 매력일 것이다. ‘걸어서 제주 속으로’에 참가한 오르미들, 멀리서 가까이에서 우리들을 지켜보며 성원과 격려를 아끼지 않은 모든 분들과 함께 완답의 기쁨을 함께 하고 싶다.
(2011. 05. 08.)
2011-06-01 12: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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