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우회 소식
103) 오름 표석 - 윤드리오름
 김승태
 2011-08-28 13:28:59  |   조회: 49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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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름을 오르다보면 가끔 만나는 게 오름 입구(또는 기슭)에 세워진 오름 안내 표석들이다. 옛 북제주군에서는 대부분 바윗돌에다 빗돌을 붙여 오름의 이름과 소재지, 그리고 해당 오름에 대해 안내를 하고 친절하게 영문으로 번역도 해놓고 있다.

이 사업은 옛 북제주군 당시 오름 보호 차원에서 연차적으로 진행된 것이라 짐작되는데 제주특별자치도 출범과 더불어 북제주군이 제주시로 통합되다보니 중단된 것 같다. 이와 함께 일부 자생단체들도 나름대로 오름 소개 모형을 만들어 일부 오름들에 세워놓고 있다.

오름 표석 세우기 사업이 오름을 사랑한다는 측면만 본다면 바람직한 것 같은데 그 결과는 검증되지 않는 내용들을 새겨 놓으므로 인해 오히려 폐해를 주고 있을 뿐 아니라 먼 훗날에는 잘못된 내용이 바른 것이 되는 역사의 아이러니(irony)가 될 것 같아 걱정되는 대목이다.

한 예로 윤드리오름을 보자. 예부터 이 지역 주민들은 이 오름을 윤드리오름(은들오름 운들오름 눈달오름 은다리오름 隱月峰 凌達岳, 구좌읍 종달리 산 15-22번지, 표고 179.6m , 비고 75m. 형태 말굽형)이라 부르고 있다. 그런데 오름 표석에는 '은다리오름'이라 칭하면서 "일찍부터 민다리오름으로 불리고 禿達岳으로 표기되었다."라는 근거도 없는 주장을 펼치고 있을 뿐 아니라 '민간에서 소리가 바뀌었다'라는 내용을 세 번씩 되풀이하다가 결국은 '윤드리오름이라고 불린다.'라고 하는 주장은 논리상 전혀 맞지 않은 것 같다.

중산간도로(1136번)와 비자림로(1112번)가 만나는 송당사거리에서 수산리 쪽으로 4.6㎞를 가면 왼쪽에 종달리로 가는 삼거리가 있고 종달리 쪽으로 3.8㎞를 더 가면 오름의 기슭(오름 표지석)에 도착할 수 있는 이 오름은 '오름의 모양이 넓은 들판에 달이 숨어 있는 격'이라 해서 '은들오름, 운들오름, 눈달오름, 은다리오름', 이를 한자로 '은월봉(隱月峰), 능달악(凌達岳)'이라 하고 있다.

윤드리는 '눕다의 관형형 누운'에서 두음 법칙과 축약 현상이 작용하여 '윤'으로의 변이+ 드리는 '들+이'로 분석되어 '드르(들판)+이'로 해석된다. 자그마한 몸체로 드넓은 벌판에 외따로 서 있어 북동쪽에서 바라보면 반달의 모습이긴 하나 다른 방향에서는 전혀 다른 형상을 하고 있다. 동쪽 등성이는 조금 가파른 편이며, 북동쪽으로 말굽형 굼부리가 형성되어 있다. 굼부리는 예전에 띠(茅)의 주산지였었는데 최근에는 밭으로 개간되었다. 남동쪽 비탈에 소나무와 삼나무가 조림되어 있고, 북동쪽 비탈에는 애기우산나물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고 알려지고 있다.

이 오름 주위는 제주특별자치도의 '제주도 전설지'(1985)에 나오는 '물징거와 고종달이' 전설의 배경이 되는 곳으로서 종달리 선민들의 옛 고향이기도 하다. 중국 호종단(胡宗旦 : 고종달이)이 왕명을 받고 제주의 물혈(水穴)을 끊기 위해 종달리 바닷가로 상륙하여 제일 먼저 이 오름의 남동쪽에 있는 '물징거'의 혈을 떠 버렸다는 전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마을 형성의 모태요, 생활의 안식처인 오름의 의미를 잘 대변하는 윤드리는, 뒤에 한라산을 비롯해 거미오름․높은오름․손지오름․용눈이 등이 튼실한 보호자가 되고 있고, 곁에는 생수가 펑펑 쏟아졌다는 '물징거'를 껴안고 있는데 이 '물징거'는 현재 그 자취만이 남아 있다. 이 오름의 동쪽으로는 종달리 설촌의 모태를 이루었던 '넙은드르, 대머들' 지역을 품고 있으며 남쪽 비탈에 연한 길은 성산읍과의 경계를 이루고 있다.

오름 사랑 차원에서 관계당국이든 자생단체든 오름 표석을 세울 때는 관계자는 물론 지역주민들과도 충분한 논의를 거쳐 문안을 작성해야 하고 표석을 세우는 위치 또한 심도있게 논의되어야 그 오류를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다.
2011-08-28 13:2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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