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우회 소식
걸어서 제주 속으로 6 - 일주도로(표선교차로~고성교차로)
 김승태
 2012-05-11 12:13:08  |   조회: 17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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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의 혁명이라 일컬었던 제주 일주도로 포장 준공식(1971. 01. 29.)은 환호 속에 거행되었고, 제주일보사는 이를 기념하기 위해 ‘도일주 역전마라톤대회’를 탄생시켰다. 이와 관련해 제주일보는 '일주도로 포장 준공'이란 제하로 다음과 같이 보도(2010. 02. 07.)했다.

"제주일보사(옛 제주신문사) 주최로 4월 10일 옛 제주도청(제주시청) 앞 광장에서 개막, 당시 12개 읍면과 제주시 3개동, 고등학교 7개교 등 22개팀 198명의 선수가 출전한 가운데 11일까지 열렸다. 대회가 열리는 동안 고장과 학교의 명예를 걸고 출전한 선수들, 일주도로로 몰려나온 인파로 제주도는 온통 축제의 분위기로 출렁거렸다.

제주일보는 당시 대회 첫날 사설을 통해 “일주도로는 본도의 역사와 더불어 숨쉬어온 생활 도로로서 이의 포장은 도민의 연래 숙원이었다”며 “우리는 이 약진의 길 위를 달리고 있다. 이 길 위에 조상의 피와 땀이 어려있다면 우리는 밝은 내일을 향한 의지를 안고 이 길 위에 새로운 역사를 펼쳐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대회는 해마다 계속돼 1977년 제7회 대회부터 ‘도일주 역전경주대회’로 명칭이 바뀌었다. 도일주 역전경주대회는 단일 종목 체육 행사로는 가장 치열했던 대회로 1990년 베이징 아시안게임 마라톤 우승자 김원탁 선수 등 수많은 스타들을 배출해 냈다. 한편 도일주 역전경주대회는 1997년까지 계속 시행됐고 본사가 대회를 제주도로 이관한 후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

'걸어서 제주 속으로 6' 제7일째인 4월 11일 총선일, 내리던 비는 출발 즈음에 그쳤고, 흐린 날씨에 바람도 살랑살랑 불어 걷기에 최상이었다. 출발지인 표선교차로까지는 버스로 이동했으며 도착지인 고성교차로까지 주거리 15.6km, 보조거리 0.1km, 모두 15.7km였다. 3시간 32분이 소요되었는데 그 여정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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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선교차로(09:06)~하천교차로(09:20)~평화교(09:30)~신천리사무소(09:36)~신천리동굴유적(09:56)~신풍리(10:23)~삼달교차로(10:30)~신산리10:37)~성산기상대 입구(10:58)~온평리(11:38)~혼인지 입구/제성로(11:44)~신양리 입구(12:17)~고성교차로(12:38)

--- 주요 역사 현장

0 하천리/신천리/신풍리 : 신풍리, 하천리와 한 마을로 '내끼'라고 불리워지다가 <웃내끼 >를 신풍리, <알내끼 >를 하천리라 하여 분리되었던 것을 냇가를 분기점으로 다시 <알내끼 >에서 <샛내끼 >를 잘라내어 새로운 마을을 형성한 것이 신천리다. - 마을 홈페이지 참조

0 평화교 : 표선면과 성산읍 경계가 되는 다리로 1995년 6월에 착공해 1997년 5월에 완공(길이 104m, 교폭 24.5m)했음

0 신천리동굴유적 : 자연동굴 집자리로서 신석기시대 유물들이 발견되었고, 안내문과 함께 보호되고 있음

0 삼달1/2리 : 구전하는 바에 의하면 처음 마을이 형성되었던 곳 가까이 있는 더러물내(川)의 형상이 누워있는 강을 닮았다 하여 와강(臥江), 2리는 다양한 어족(漁族)이 모여드는 바다라고 하여 주어(駐漁)라고 불렸다. 1946년 8월 제주도제의 실시에 따라 남제주군 성산면에 편입되고 삼달1리와 삼달2리로 분리되었다. - 마을 홈페이지 참조

0 신산리 : 오래전에 '신술목'이란 곳에 설촌되어 끝동네(末洞)라 불렸고, 200여 년 전에 풍수지리 학자 도움으로 '신산'으로 개칭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 마을 홈페이지 참조

0 성산기상대 : 제주 동부지역과 바다의 국지 기상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상청 소속 기관으로 관측거리 480㎞의 최첨단 레이더(S-BAND)를 설치했으며 높이 24m의 기상타워도 새로 들어섰음

0 난산리 : 오래전에 '새모슬'이란 곳에 설촌되어 '난미'라 불폈고, 풍수지리설로 지형이 난초형이라 하여 난야리로 불리다가 한자표기를 위해 '난미, 난뫼'를 난산리로 적었고, 1895년에 제작한 지도에 보면 서난산리, 동난산리로 구분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행정구역 개편으로 3군으로 제작된 지도, 1896) - 마을 홈페이지 참조

0 온평리 : 옛 이름은 '여을 또는 열운'이다. 19세기 중반 이전까지는 '열운이'로 불리다가 '온평리'로 개칭하였으며 민간에서는 '온온(溫)은 따뜻하다는 뜻과 평(平)은 산이 없고 평평하다.'는 뜻으로 '온평'이라고 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 마을 홈페이지 참조

0 족은물메 : 예전에 이 오름에 물이 솟아나 못을 이뤘음에 연유하여 물+메(뫼․미)라 불려지다가 서쪽에 있는 큰물메와 견주어 대소(大小) 개념을 끌어들여 이를 족은물메(뫼․미), 오름의 모양이 마치 송아지와 닮아 새끼+쇠, 오름 모양이 독새기(달걀의 제주어)처럼 생겼다 하여 독새기오름, 이를 한자로 소수산봉(小水山峰)이라 하고 있음

0 큰물메 : 예전에 이 오름에 물이 솟아나 못을 이뤘음에 연유하여 물+메(뫼․미)라 불려지다가 동쪽에 있는 족은물메와 견주어 대소(大小) 개념을 끌어들여 이를 큰물메(뫼․미), 대수산봉(大水山峰)이라 하고 있음

0 신양리 : 1894년 어로와 해조류 등의 수산물 채취에 종사하기 위하여 인근부락인 고성리로부터 수명의 농어민이 내려와 살기 시작한 것이 설촌의 시초이다. 곡식을 수량으로 하는 말(斗)과 같이 우묵하게 생겼는데 머리쪽은 막히고 밑은 터졌다고 하여 방두포(房斗浦)라고 했고 주민들은 <방뒤 >라 불렀는데 새로 신설된 마을이며 살기에 편하다고 하여 신안동(新安洞)이라 잠시 부르다가 해방이 됨과 아울러 새로 떠오르는 태양과 같은 마을, 또 금방 떠오른 새 해를 가장 먼저 맞이하는 마을이라 하여 신양리로 바꾸어 오늘날에 이른다. - 마을 홈페이지 참조

0 고성교차로 : 일주도로와 서성로(1119호선)가 만나는 곳임

4.11 총선이 막을 내렸다. 새누리당은 300석 중 152석(민주통합당 127석, 통합진보당 13석, 자유선진당 5석, 무소석 3석)의 과반을 차지하며 완승을 했다. 여소야대(與小野大)를 실현하겠다던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의 야권 연대는 목표 달성에 실패했고, 새누리당은 정권 심판론이 바탕으로 깔려 있던 총선에서 예상을 뒤엎고 원내 1당을 차지했다. 이에 따라 정국(政局)은 12월의 대선(大選)과 맞물리면서 또 한번 안갯속으로 빠져들게 될 것 같다.

한편, 제주의 4.11 총선 결과는 어떠한가? 예상은 했었지만 민주통합당이 3연속 '싹쓸이'로 세 후보(강창일, 김우남, 김재윤)는 3선의 고지에 오르게 되었다. 선거 운동 기간 내내 민군복합형관광미항(제주해군기지)은 전국적으로 이슈화되었고, 한.미 FTA 대응, 제주 4·3의 해결, 제주 신공항 추진 등에 대해서도 후보들은 치열한 공방을 벌였는데 이제는 당선자의 몫으로 남게 되었다. 전국의 판세로 보아 제주의 현안들이 당선자들의 의도대로 해결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상황에 따라서는 되는 것도 없고 안 되는 것도 없는 허송의 4년을 보내게 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예상하지 못한 모 후보의 낙마(落馬), 각 후보들의 비방전, 그리고 후보 매수설 등의 혼탁 양상은 향후 어떻게 매듭될지 궁금할 따름이다.
2012-05-11 12: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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