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우회 소식
걸어서 제주 속으로 7-제주섬 종주(냇새오름~동광육거리)
 김승태
 2013-04-10 12:33:13  |   조회: 7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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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계절의 순환은 이제 완연한 봄이 왔음을 알리고 있다. 첫 출발일인 3월 1일만 해도 쌀쌀한 기온이 감돌았는데 20여 일이 지나면서 무척 포근해졌다. 길가에는 이름 모를 봄꽃들이 앞다퉈 꽃망울을 터트리는가하면 나뭇가지마다 어린 새싹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돋아나기 시작했다. 냇새오름 한쪽에는 쏟아져나온 물이 자그마한 폭포를 이뤄 봄의 정취를 더해주곤 했다.

제4일째에 이어 제주섬 종주의 멋은, '광령천 건너기~1시간 여 동안의 임도 따라 걸어가기~드넓은 공초왓 가로지르기 등'으로 한껏 즐기기도 했다. 그런데 당초 계획은 '공초왓삼거리에서 공초왓을 가로지르지 않고 농로를 따라가다 솔도마을과 광평마을을 거쳐 신화역사로'로 접어들어감이었는데 시간 관계상 평화로로 변경함이 다소 아쉬운 대목이었다.

'걸어서 제주 속으로 7'의 제5일째 출발지인 냇새오름 입구까지 승용차로 이동했으며, 도착지인 동광육거리까지는 15.0km였다. 4시간 11분이 소요되었는데 그 여정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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냇새오름 입구(08:04)~광령천(08:08)~천아오름 입구(08:30)~붉은오름 입구(08:44)~안천이오름 입구(09:44)~공초왓삼거리(09:52)~북돌아진오름 입구/평화로(11:03)~안덕면충혼묘지(12:00)~동광육거리(12:15)

---- 주요 역사의 현장

0 중산간용수개발 : 1995년 10월부터 3년 동안 냇새오름 인근에 제주개발건설사무소가 발주한 '제주도중산간 용수 개발' 사업이 이뤄졌는데 이의 자취는 냇새오름 입구에 세운 표석과 현재 남아있는 건물들에서 확인할 수 있음

0 광령천 : 예전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와 북제주군의 경계 지역을 가로지르는 하천이다. 제주도가 고시한 기준으로 보면 기점은 애월읍 광령리이며 종점은 제주시 외도동이다. 실제 광령천은 한라산 Y계곡에서 발원하여 외도동 바닷가로 흘러든다. 『탐라지』(제주)에는 '무수천(無愁川)'으로 표기했는데, "제주성 서남쪽 18리에 있다. 조공천(朝貢川)의 상류이다. 양 언덕은 돌벽으로 되어 있어서 기이하고 험하여, 경승이 뛰어난 곳이 많다."라고 했다. - NAVER 사전에서

0 천아오름 : 오름에 초낭, 초남(참나무․상수리나무의 제주어)이 많음에 연유하여 초낭, 초남오름으로 불려지다 뒤에 오름의 형국이 천녀등공형(天女登空形)이라는 천녀(天女․天娥)와 맞물리면서 천아오름, 이를 한자로 천아악(天娥岳), 천아봉(天娥峰), 진목악(眞木岳 : 참나무오름)이라 하고 있음

0 붉은오름 : 김통정 장군 휘하의 삼별초군이 최후의 항전을 하다 전멸하면서 온 산을 피로 붉게 물들여졌다고 하여, 오름의 토질이 붉은 빛을 띤다고 하여 붉은오름, 이를 한자로 적악(赤岳)이라 하고 있다. 한라산국립공원 내 오름이라 일반인들의 출입이 금지되고 있음

0 공초왓 : '공초(국화과의 여러해살이풀 곰취를 일컫는 제주어) + 왓(밭을 뜻하는 제주어)'으로 분석되어 '곰취가 자라나는 밭'으로 풀이된다. 큰바리메~족은바리메~다래오름'을 연하는 드넓은 들판 일대를 말하나 요즘은 농경지(또는 목초 재배지)로 이용하고 있음

0 북돌아진오름 : 오름 정상부에 있는 커다란 암벽이 멀리서 보면 마치 북(鼓)이 돌아져(매달리다․걸려있다의 제주어)있는 모양과 같다고 하여 북+돌아진+오름, 그 형상이 동물과 비슷하다 하여 동물오름이라 불려지고 있기도 함

0 안덕면충혼묘지 : 1953년 화순리 <살래동산>에 설치했다가 1999년 3월에 원물오름으로 옮겨 묘역(7,875㎡)을 단장하고 충혼탑도 세웠다. 강방영 시인은 헌시에서, “… 전장의 소용돌이치는 시간과 / 숨 가쁜 적막 속에서 / 찰나를 밟아 / 영원으로 건너간 임들이기에 / 이제는 삶에서 싸움으로 / 멀찍이 떨어져 / 이 곳 원수악 기슭에 / 임들은 누워 …”라고 충혼을 위무(慰撫)하고 있음

0 원물오름 조선 시대에 이 오름에서 조금 내려간 동광리 입구에 원(院 : 출장하는 관원들을 위해 각 要路나 인가가 드문 곳에 두었던 國營의 숙식 시설)이 있었음에 연유하여 이 곳의 샘물을 원물이라 했고 그 이름이 오름에까지 확대되었다고 한다. 또한, 대정원님이 제주목을 다녀오다 이 오름 입구에 있는 물을 마셔 갈증을 해소했다고 하여 원물, 원나라가 목장을 설치하여 그 물을 이용했다고 하여 원수(元水)라고도 명명되었다고 전해지고 있음

0 동광육거리 : 동광리를 가로지르는 한창로(1116호선), 신화역사로, 동광로가 지나면서 육거리를 형성하고 있음

러시아의 소설가 톨스토이(1828~1910)는 그의 단편집 ‘세 가지 질문’에서 주인공 니콜라이라는 소년의 '가장 중요한 때는 언제일까? 가장 중요한 사람은 누구일까? 가장 중요한 일은 무엇일까?'에 대한 궁금증을 레오 할아버지를 통해 '바로 지금, 지금 만나고 있는 사람, 바로 지금 하고 있는 일'이란 답을 내놓았다. 그렇다면 '걷기에 동참한 오르미들과 제주의 풍광을 벗삼아 도란도란 인생사를 주고받는 4시간 여의 순간순간들'은 '가장 중요한 때, 사람, 일'에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것 같다.

오늘 걸어간 그 길이 한번 가면 다시 돌아오지 못하는 인생길이었다면 어떠 했을까?
(2013. 03. 24.)
2013-04-10 12:3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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