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우회 소식
<길 따라 오름 따라 032> 은빛 세상 - 백약이
 김승태
 2009-01-08 13:37:58  |   조회: 5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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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설이여! 잠시 묻노니, 너는 지상의 누가 유혹했기에 이 곳에 내려오는 것이며, 그리고 또 너는 공중에서 무질서의 쾌락을 배운 뒤에, 이 곳에 와서 무엇을 시작하려는 것이냐? 천국의 아들이요, 경쾌한 족속이요, 바람의 희생자인 백설이여! 과연 뉘라서 너희의 무정부주의를 통제할 수 있으랴! 너희들은 우리들 사람까지를 너희의 혼란 속에 휩쓸어 넣을 작정일 줄은 알 수 없으되, 그리고 또 사실상 그 속에 혹은 기꺼이, 혹은 할 수 없이 휩쓸려 들어가는 자도 많이 있으리라마는, 그러나 사람이 과연 그런 혼탁한 과중(過中)에서 능히 견딜 수 있으리라고 너희는 생각하느냐? ….” 김진섭의 ‘백설부(白雪賦)’에서 옮김.

2008년 세밑의 한파는 제주 산간에 대설주의보가 내려졌고 - 한라산 진달래밭에는 65㎝의 적설량 - 제주섬은 은빛 세상이 되었다. 2009년 성산일출제를 비롯한 해맞이 행사는 큰 차질을 빚기도 했다.

눈이 내릴 때 비자림로와 성산읍 수산리를 잇는 ‘오름사이로(필자 명명)’ 변의 백약이를 중심으로 제주 중산간 지역의 겨울 풍광을 조망해봄은 제주의 또 다른 매력일 것이다. 백 약이(百藥岳 百藥山, 표선면 성읍리 산 1번지, 표고 356.9m, 비고 132m)는 비자림로(1112번)와 수산리를 잇는 오름사이로를 따라 수산리 쪽으로 3.0㎞를 가면 오른쪽에 오름으로 이어지는 길이 있고 이를 따라 100m를 더 가면 기슭에 도착할 수 있다.

예전부터 이 오름에는 온갖 약초가 많이 자생한다는 데 연유하여 백약이, 이를 한자로 백약악(百藥岳), 백약산(百藥山)이라 하고 있다. 정상의 움푹 팬 굼부리 너머로 동쪽으로는 우도와 일출봉이, 서쪽으로는 한라산이 와 닿는 멋스러움이다. 봉긋한 봉우리는 멀리서 보면 젖무덤을 연상하게 하지만 정상에 가면 이 봉우리는 야트막한 등성이에 불과하다.

400m 트랙을 연상하는 굼부리 등성이는 잔디가 곱게 깔려 있고 이 곳을 쉬엄쉬엄 돌아가며 사방에 펼쳐진 형형색색의 오름들을 조망할 수 있음은 이 오름의 자랑이다. 오름의 남~서쪽 비탈 기슭에는 삼나무로 조림된 숲이 50m 정도의 폭으로 둘러 있다.

북동쪽 비탈은 개량 초지인데 군데군데는 약용으로 이용되는 복분자딸기, 층층이꽃, 초피나무, 인동덩굴, 진달래, 찔레나무 등이 자라나고 있다. 오름 입구에는 2004년 6월에 한라식물사랑회 등에서 소황금(골무꽃속 꿀풀과) 자생지임을 알리는 안내판을 세워 놓았다.

백 가지 약초는 이 오름을 둘러선 100곳의 오름을 뜻하는 것은 아닐까? 이웃하고 있는 좌보미와 거미오름의 기이(奇異)한 얼굴을 시작으로 빙 돌아가며 사방에는 지천으로 오름뿐이다. 구좌, 조천, 성산, 표선, 즉 제주 동부 지역의 수려한 경관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으니 신선의 세계가 따로 없다. 또한, 부드러운 곡선으로 이루어진 원형의 굼부리 안으로 들어서면 외부 세계와의 단절로 또 다른 세계를 창출시킨다. 그 넓디넓은 홍진(紅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리고 오직 하늘만 있을 뿐이다.

겨울이 깊어가고 있다.
은빛 세상의 대자연을 바라보면서 2009년 한해를 설계해 보자.
2009-01-08 13:3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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