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우회 소식
걸어서 제주 속으로 7(고산-금성)
 김승태
 2009-04-26 13:58:52  |   조회: 63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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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돌아가는 게 복잡해서일까? 20도를 웃도는 초여름 날씨는 전국에 건조주위보가 발효되었고, 4월 평년 강수량이 92mm인 제주에는 4월 들어 단 한 차례의 비도 내리지 않았다. 한편으론, 봄 관광의 절정을 이루고 있는 시기에 제주를 찾은 수많은 관광객들에게 비는 불청객이지만...
지난 주와 마찬가지로 07:00에 한라체육관주차장에 모여 출발지인 수월봉입구(한경면)까지 승용차를 이용하였고, 도착 목표 지점은 금성사거리(애월읍)였다.
08:10 수월봉 입구에서 완답을 기원하는 '걸어서! 제주 속으로!'의 힘찬 파이팅과 함께 축배의 잔을 들었다. 엉알길을 따라 자구내포구에 이른 시각이 08:50인데도 예상보다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었다. 포구 주변에는 차귀섬의호종단전설을 비롯해 차귀도천연보호구역(천연기념물 제422호), 영화'이어도'촬영지, 고산옛등대 등 표석(안내문)들을 세워 찾는 이들에게 세심한 배려를 해 놓았지만 정작 자구내(포구)에 대한 설명은 찾을 수 없었다. 자구내? 무엇을 뜻하고 있을까? 숙제로 남겨둘 수밖에 없었다. (주요 역사의 현장 참조)
최근에 당오름 등정로 일부를 이용해 용수리 입구까지 <올레>코스를 개설하였다. 차귀섬을 가장 가까이에서 내려다볼 수 있도록 한 것은 좋은데 안전시설은 미흡한 편이므로 코스를 바꾸든지 아니면 대대적인 보완이 뒤따라야 할 것 같았다. 용수리(절부암/김대건신부기착지) 마을을 벗어나 신창리까지 이어지는 해안도로는 풍력발전기와 어우러져 이국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신창리를 가로지르면 제주섬의 지형으로 볼 때 그 머리에 해당한다는 두모리(頭毛里)-꼬리에 해당하는 마을은 구좌읍 종달리의 지미(地尾)-에 들어선다. 두모리 땅끝 두모연대에 올라서서 시계가 닿는 사방을 조망해봄도 의미있는 일 중의 하나일 것이다.
일주도로로 되돌아 나와 판포리를 거쳐 월령리에 접어들었다. 차창에서 무심코 바라보았던 선인장 군락이 천연기념물(제429호)로 보호되고 있다는 사실을 비롯해 옛북제주군문화원에서 세운 한림항의 '한림공업고발상지, 명월포수전소와최영장군격전지, 그리고 연대(두모/죽도)' 등의 표석들을 통해 제주 역사의 단면이나마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걸어서 제주 속으로'가 준 소중한 선물들이었다.
일주도로와 해안도로(백사장)를 넘나드는 <걸어서 제주 속으로 7>의 주거리는 29.5Km이며, 보조거리 1.0km를 포함하면 모두 30.5km인데 그 여정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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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월봉입구(08:23) - 엉알 - 용운천 - 자구내/영화'이어도'촬영표지(08:50) - 당산봉수대터(09:05) - 용수방사탑 - 성김대건신부제주토착기념관입구 - 절부암(09:52) - 싱계물공원/벌내물공원 - 한경면사무소 - 두모포구/두모연대(11:16) - 해거름마을공원 - 월령리(선인장마을)입구 - 금능해수욕장입구 - 점심(13:25) - 협재해수욕장 - 한림공업고발상지표석/명월포수전소와최영장군격전지표석(15:01) - 한림중앙상가/비양도항선대합실 - 죽도연대옛터표석(15:23) - 동덕여대제주연수원 - 라신동(귀덕2리) - 한수풀해녀학교(16:16) - 귀덕초입구/귀덕1리표석 - 금성교(橋)/금성사거리(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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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역사의 현장
0 엉알길/용운천 : 엉(바닷가나 절벽 등에 뚫린 바위그늘/언덕의 제주어)+알(아래의 제주어)에 있는 길/이 곳에 솟아나는 샘을 용운천(龍雲泉)이라 함
0 차귀섬의호종단전설 : 고려 예종 때 제주에 유능한 인재의 출현을 막기위해 중국에서 보낸 호종단이 서귀포에 있는 지장샘 수호신의 꾀에 속아 술서(術書)를 찢어버리고 돌아가는 길이었는데 바로 이 차귀도가 있는 지점까지 왔을 때 한마리의 날쌘 매가 날아와 돌풍으로 변해서 호종단이 탄 배를 침몰시켰다. 이는 한라산 신령이 매로 변하여 호종단의 횡포에 대한 복수로서 본국으로 돌아가는 것을 막았다 하여 차귀도(遮歸島)라 불렀다 한다.
0 자구내/포구 : 한라산에서 흘러내린 물이 차귀벵듸(고산평야)를 중심으르 굽이굽이 흘러 자구내포구까지 흐르는 고산리 설촌의 젖줄인 큰 내(川) : 차귀천(遮歸川/蛇尾川/蛇鬼川-자귀천-자구천-자구내'로 변천했을 것이라 추측/이 내(川)에 연한 포구를 자구내포구라하는데 예전에는 '돔베(도마의 제주어)+성창(포구의 제주어)'이라 불렸다고도 함-'고산향토지' 참조
- 차귀도천연보호구역 : 차귀도, 죽도, 그리고 와도 등 3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무인도로서 고산리 해안과 약 2㎞ 떨어져 있는데 쿠로시오 난류의 영향을 가장 먼저 받는 지역으로 서식하고 있는 동식물이 매우 다양함-천연기념물 제422호(2000. 07. 18. 지정)
0 영화'이어도'촬영 : 1977년도에 동아수출공사에서 촬영한 영화로서 이화시 김정철 최윤석 권미혜 등이 출연함
0 당산봉수 : 차귀진에 소속되어 동쪽으로는 모슬봉수대 서쪽으로 만조봉수대와 연락망이 이뤄졌음-1999년 12월 한라일보유적표석세우기추진위원회에서 표석 세움
0 용수방사탑 : 포구에 탑 2기가 세워져 있는데 서쪽의 탑은 새원(새의 머리 모양의 돌)탑, 남쪽의 탑은 화상물(화상물)탑이라고 부름
0 절부암 : 열부(烈婦) 제주 고씨(高氏)의 절개를 기리는 바위인데 19살 때 같은 마을에 사는 강사철(康士喆)에게 출가한 고씨는 어느날 남편 강씨가 고기잡이 나갔다가 풍랑을 만나 변을 당해 돌아오지 못함에 애통한 마음을 금치 못하다 엉덕동산에서 자살했는데 남편 시체가 이 바위 나무 아래 떠올랐다고 전해옴-1866년(고종 3) 판관 신재우(愼載祐)는 고씨가 자결한 바위에 절부암(節婦岩)이라 새기게 했으며 강사철과 고씨 부부를 합장(合葬)하게 했으며 그 넋을 위로하기 위하여 제전(祭田)을 마련하여 용수리민으로 하여금 매년 3월 15일에 제사를 지내도록 하고 만대에 기리게 함-제주도기념물 제9호(1971. 08. 26. 지정)
0 두모연대 : 명월진에 소속된 연대로 동쪽으로 대포연대(직선거리 1.2km), 남쪽으로 우두연대(직선거리 3.7km)와 교신-제주도기념물 제23-20호(1996. 07. 18. 지정)
0 월령리의선인장군락 : 월령리의 해안 바위틈과 마을 안에 있는 울타리 형태의 잡석이 쌓여 있는 곳에 넓게 분포되어 있다. 멕시코가 원산지인 선인장이 쿠로시오 난류를 타고 열대지방으로부터 밀려와 야생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이곳 주민들은 그 형태가 손바닥과 같다 하여 '손바닥선인장'이라 부름 - 천연기념물 제429호(2001. 09. 11. 지정)
0 협재해수욕장 : 협재리와 금능리 일주도로변 해안에 있는 해수욕장-1953년 8월 15일 광복절을 기하여 한림읍민 수영대회를 열면서 개장
0 한림공업고발상지 : 1942년 일본인이 태평양전쟁 때 제약회사를 설립하여 군수물자를 생산하던 곳(한림읍 옹포리 386번지)-1952년 5월에 일부 건물을 수선하여 한림공업고가 개교됨-2007년 5월에 북제주문화원에 의해 표석 세움
0 명월포수전소와최영장군격전지 : 명월마을을 안고 흐르는 하천을 명월포(현재 옹포천)라 칭하는데 이 곳은 1270년(원종 11) 삼별초군이 이 포구로 상륙하였고, 1374년(공민왕 23)에는 최영장군이 전함 314척에 군사 25605명을 이끌고 이 포구로 상륙하여 목호(牧胡)를 토벌하였다. 조선시대에는 이 곳에 수전소(水戰所)를 설치하였다고 함-표석 안내문 참조
0 죽도연대 : 명월진에 소속된 연대로 동쪽으로는 우지연대와 서쪽으로는 마두연대(폐쇄된 이후 배령연대)와 교신
0 라신동(羅新洞) : 1211년(희종 7)에 귀덕현을 설치한 후에 새로 생긴 마을-지세가 비단같이 곱고 아름다우며 해안가 절경이 뛰어나 알차게 벌려나간다는 의미를 지님
0 한수풀해녀학교 : 제주해녀문화의 보존과 전승을 위해 2007년 11월에 한림읍, 한림읍주민자치위원회, 한림읍귀덕2리어촌계가 공동으로 설립한 학교
0 금성교(橋) : 일주도로(1132번)변 애월읍과 한림읍 경계에 있는 다리

정성필은 '월간 山'(2007. 11.)에서 '걸음'을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 걸음은 길이 열려 있을 때 걸을 수 있다. 길이 닫히면 걸음은 멈추어야 한다. 걸음은 정직하다. 걸음은 길의 걸은 거리만큼 수고해야 그 길을 갈 수 있다. 힘든 길일수록 걸음의 수고는 더하다. 하지만 힘든 길일수록 걸음은 스스로를 단련시킨다. … 처음엔 길을 걸었지만 나중에 뒤돌아보니 그 길이 내 삶이었다고, 그래서 감히 이런 말씀을 드린다. 걸음은 정직하다. 뒤돌아보면 걸은 만큼 보인다."
(2009. 04. 12.)
2009-04-26 13:58:52
122.202.23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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