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도서
지성의 스캐너로 한국인 마음의 별자리 훑다
 김현종
 2008-06-03 12:41:54  |   조회: 68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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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령의 '우리문화박물지'(이어령의 이미지 + 생각)를 추천한다.



밥 먹을 때 쓰는 젓가락 하나, 옷 입을때 매는 옷고름 자락 그리고 누워서 바라보는 대청 마루의 서까래-한국인들이 사용해온 물건들 하나하나에는 한국인의 마음을 그려낸 별자리가 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그것들은 서명되어 있지 않은 디자인이며 조각이며 책이다.'(머릿글 중에서)


그랬다. 저자 이어령의 말 그대로, 책 속에는 한국의 영상과 한국인 생각의 프레임을 구성하는 무의식의 암호들이 웅숭깊은 사회문화적 시각에 의해 낱낱이 해독돼 있었다. 책은, 우리가 눈에 익었다고 몸에 배었다고 아무런 의문없이 받아들여온 다시말해 우리 몸과 마음을 작동시켜온 어쩌면 소소한 일련의 문화 방정식에 대한 걸출한 풀이서인 셈이다. 당대 지성인 이어령의 지적 깊이와 유려한 문장도 책의 가치를 높여준다.

책장을 넘기다가 오호라! 이렇구나~란 탄성을 여러번 질렀다. 한국인의 뇌리에 천생 박힌 별자리를 보았다.



다음은 맛보기 예시 하나.(정신의 흔적, 붓 중에서)

-의미는 흔적을 통해서 전달된다. 해변의 모래톱에 찍힌 흔적들을 보면서 우리는 그 위에 앉아 있던 물새와 몸을 숨긴 조개들의 작은 드라마를 읽는다. 인간이 만든 글자 역시 이 생명의 해변 위에 찍어놓은 그 많은 흔적들의 하나인 것이다.

흔적, 말하자면 어떤 자국을 일부러 남기기 위해서는 모래판 같이 부드러운 것 위를 손가락처럼 딱딱하고 뾰족한 것으로 긁어야 한다. 그래서 '글'이란 말이 '긁다'라는 동사에서 나온 것이라고 주장하는 언어학자도 있다. 일본말에서도 쓰다의 '가꾸'와 '힛가꾸'는 그 음이 비슷하고 영어의 '라이팅' 또한 '긁다(스크래치)'라는 어원을 지니고 있다. 호랑이가 자기의 영토를 표시하기 위해서 나무 등걸을 발톱으로 긁어 자국을 내듯이 인간이 의미의 흔적을 만들어낸 최초의 붓은 손톱이었을 것이다.

(...)

그러나 붓은 아무리 힘을 주어 써도 종이가 찢어지는 법이 없다. 이미 붓은 손톱의 연장이 아닌 것이다. 붓은 부드럽기 때문에 모든 힘을 받아 전달한다. 섬세하고 오묘한 정신의 리듬까지 전달할 수 있는 것이다.

쇠로 된 펜이 정신의 부도체라고 한다면 붓은 그것을 전류처럼 흐르게 하는 양도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부드러운 붓을 잡은 손을 움직이려면 어깨에 힘을 주어야 하고 어깨에 힘을 주려면 가슴에 힘을 주어야 한다. 그리고 가슴에 힘을 주려면 허리에 힘이 있어야 하며 그 허리가 힘을 받으려면 그것을 떠받치고 있는 발끝이 튼튼하게 땅을 딛고 있어야 한다. 붓글씨는 땅을 딛고 있는 발끝에서, 말하자면 땅의 힘으로부터 나오지 않으면 안된다는 추사 김정희의 '서화론'대로, 쓴다는 것은 온몸의 힘을 받는 흔적인 셈이다. 그것은 이미 의미가 아니라 정신 그 자체를 나타내는 흔적인 것이다. 일본 사람들이 날카로운 칼을 만들어 '쓰기'가 아니라 '베기'의 문화를 만들고 있었을 때 한국인들은 최고로 부드러운 붓을 만들어 '쓰기'의 문화(선비문화)를 만들어갔다. 그것이 바로 중국인들도 탐했던 한국의 붓-족제비 꼬리털로 만들었다는 황모필이었다.

종이 위의 글씨는 긁는 것도 새기는 것도 찍는 것도 아니다. 쓰는 것이다. 서양에 서예가 없었던 것은 종이 위에 정신의 흔적을 남기는 진정한 쓰기의 문화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볼펜과 타이프라이터와 워드프로세서는 이제 쓰는 문화에서 찍는 문화로 옮겨간다. 백이면 백이 다 같은 흔적 위에 존재하는 복사문화만큼 황모필과 대립되어 있는 문화도 아마 없으리라.
2008-06-03 12:4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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