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는 시, 읍, 면별로 조성한 14곳의 충혼묘지가 있는데 그 중 애월읍(물메/수산봉)과 안덕면(원물오름)은 오름 등성이에 마련해 놓았다. 현충일 연휴에는 관광도 좋고 오름 산행도 좋지만 오가는 발걸음을 잠깐 멈추고 맑은 술 한잔, 한 송이의 꽃을 준비하지 못해도 충혼묘지를 찾아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선열들의 넋을 기리면서 대한민국의 과거 - 현재 - 미래를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한다.
안덕면 충혼묘지는 1953년 화순리 <살래동산>에 설치했다가 1999년 3월에 원물오름으로 옮겨 묘역(7,875㎡)을 단장하고 충혼탑도 세웠다. 강방영 시인은 헌시에서, “… 전장의 소용돌이치는 시간과 / 숨 가쁜 적막 속에서 / 찰나를 밟아 / 영원으로 건너간 임들이기에 / 이제는 삶에서 싸움으로 / 멀찍이 떨어져 / 이 곳 원수악 기슭에 / 임들은 누워 …”라고 충혼을 위무(慰撫)하고 있다.
원물오름(안덕면 동광리 산 41, 표고 458.5m, 비고 98m)은 평화로(1135번)와 산록도로(1115번)가 만나는 광평교차로에서 동광초소 쪽 1.7km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조선 시대에 이 오름에서 조금 내려간 동광리 입구에 원(院 : 출장하는 관원들을 위해 각 要路나 인가가 드문 곳에 두었던 國營의 숙식 시설)이 있었음에 연유하여 이 곳의 샘물을 원물이라 했고 그 이름이 오름에까지 확대되었다고 한다. 또한, 대정원님이 제주목을 다녀오다 이 오름 입구에 있는 물을 마셔 갈증을 해소했다고 하여 원물, 원나라가 목장을 설치하여 그 물을 이용했다고 하여 원수(元水)라고도 명명되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자그마한 언덕들이 정상을 향해 뻗어 올라 남, 북의 두 등성이를 이루고 이는 서쪽으로 말굽형(서쪽)의 펑퍼짐한 굼부리를 형성하고 있다. 등성이는 민틋하고 남, 북의 두 봉우리 사이에는 곱디고운 잔디가 자라나고 있다. 남서쪽의 봉우리 부근에는 큰 바위가 있는데 이를 <고고리암>이라고 부르고 있다. 이는 그 모양새가 고고리(꼭지의 고어)와 닮은 데 기인한 것으로 보아진다. 그리고 북쪽 봉우리에는 넓은 바위들이 연이어 박혀 있고 그 밑에는 꽤 넓은 공간이 만들어졌다. 오름의 남~서 비탈에는 삼나무와 소나무가 일부 조림되어 있고 자연림도 자라나고 있다.
정상에서는 동광초소를 중심으로 한 사통팔달(四通八達)의 모습도 확연히 확인할 수 있다. 산방산 너머의 가파-마라도의 모습은 반공(半空)에 솟아 뜬 것처럼 보이고 북쪽으로는 당오름-정물오름-금오름이 연출하는 삼중주는 백미를 이룬다.
-- 사진 제공 : 강성홍
충혼묘지의혼들이 오름을 다스리고있는듯한?
또충혼묘지가앞에있어서 오름이조금 으스스하다해야하나?그런느낌도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