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우회 소식
걸어서 제주 속으로 6 - 일주도로(월령삼거리~대정여고 입구)
 김승태
 2012-04-04 10:25:00  |   조회: 14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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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1 총선을 앞두고 포퓰리즘(대중인기영합주의)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한국경제신문이 발간하는 '생글생글'(2012. 03. 05.)에서는, "포퓰리즘이란 말은 제정(帝政) 러시아 시절 ‘브나로드(Vnarod, 인민 속으로)’에서 유래했는데 원래는 ‘국민을 위한 정치’를 꿈 꾼 이상주의자들의 슬로건이었지만 정치가들이 유권자들의 표를 얻기 위해 경제 현실을 무시한 채 겉만 그럴 듯한 선심정치를 앞세우는 것으로 뜻이 변했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복지 강화가 건강한 사회의 근간임은 분명하다. 노후를 불안해하는 사람들이 많은 사회, 절대적 빈곤으로 소중한 생명을 잃어가는 사람들이 많은 사회, 빈부격차 확대로 계층 간 갈등이 심화되는 사회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중략) 모든 유권자를 대상으로 세금 문제를 거론하는 것이 표를 얻는 데 부담이 된다는 계산으로 ‘1% 대 99%’라는 대립적 구도를 만들어 1%에 과도한 세금을 매기는 것은 사회 분열을 조장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기본 정신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혜택을 받는 만큼 국민들 골고루가 부담을 나눠 지는 지혜를 모아야 한다. 복지라는 명분이 정치인들의 표를 얻는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라고 경고하고 있다.

제주의 역사와 문화가 살아 숨 쉬는 일주도로, 그 포장과 관련해 제주일보(2010. 02. 07.)는, '생활, 교통, 관광 변모.. 제주 개발 가속도'란 제하로 "1961년 9월 21일 일주도로 포장 사업의 착공은 도로 현대화의 시발점이 됐다. 제주의 해안선을 따라 제주시 광양로터리에서 섬을 한바퀴 돌아 다시 되돌아오는 총연장 181㎞ 코스. 울퉁불퉁하던 돌길이 쭉뻗은 아스팔트 도로로 바뀌었다. 제주 도로의 주동맥 일주도로(제1우회도로)의 포장은 제주 개발에 가속도를 붙였다. 제주 섬사람들의 생활과 교통, 관광산업이 새로운 모습으로 전개되기 시작했다.

1960년대 이전 제주지역의 도로 대부분은 지반이 모두 암석인데다 돌이 많아 ‘돌길’이라는 표현이 알맞을 정도였다. (중략) 김영관 해군소장이 제주도지사로 부임한 후 정부에 강력히 건의, 신호탄을 쏘아올린 것이다. 당시 정부는 자동차 통행량이 1일 300대 미만임을 들어 난색을 표시했지만 김 지사의 끈질긴 노력 끝에 ‘가장 경제성이 없다는 도로’ 포장이 시작됐다. 공사에 필요한 중장비는 대형 화물선이 없어 해군 L.S.T로 수송됐다. 기공식은 제주항 입구인 동부두에서 성대하게 진행됐다. 당시 공법은 돌과 자갈로 기층을 다지고 ‘골타르’를 침투시키는 전근대적인 것이었다."라고 보도하였다.

'걸어서 제주 속으로 6' 일주도로를 따라서 제3일째인 3월 11일, 꽃샘추위 영향이 제주까지 미치면서 다소 쌀쌀했고 바람까지 불었는데 바람은 등을 지었기 때문에 걷기에는 오히려 도움을 주었다. 출발지인 월령삼거리까지 버스로 이동했으며 도착지 대정여고 입구까지는 주거리 21.2km, 보조거리 0.1km 모두 21.3km였다. 4시간 19분이 소요되었는데 그 여정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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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령삼거리(09:18)~판포리(09:35)~두모삼거리(10:03)~신창사거리(10:10)~용당교차로(10:29)~용수교차로(10:46)~고산3교차로(11:11)~제주시*서귀포시 경계(11:20)~신도3리(11:27)~영락교차로(12:37)~일과2리(12:58)~동일교차로(13:29)~대정여고 입구(13:37)

--- 주요 역사의 현장

0 판포리 : '너른개' 또는'널개'라는 옛이름을 가진 이 마을은 정확한 설촌 연대는 알 수 없으나 '세종실록지리지'에 '판포'라는 지명이 나오는 것을 보아 15세기 중엽에 이미 마을이 조성되어 있었을 것이다. 본래 제주군 구우면 지역으로 바닷가가 되므로 '판을포, 판포'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에 따라 판포리가 되었다. 1946년 한림읍에서 분리되어 한경면에 속하게 되었다. - 마을 홈페이지에서 옮김

0 신창리 : 원래 두모리에 속했으나 민간에서 솔개 또는 솔래라고 하는데 신창리 바닷가를 이른다. 한자 그대로 새로 창성한 마을(新昌)의 뜻이다.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에 따라 신창리가 되었다. - 디지털제주문화대전 참조

0 용당리 : 옛 이름은 용소 또는 용못이다. 용당은 한자 뜻 그대로 용못이라는 데서 붙여졌다. 1600년 조선 광해군 때 속칭 '산밭승물'이라는 곳에 7호가 살기 시작했다는 기록이 있다. 19세기 말 이전에는 두모리에 속했으나, 19세기 말부터 용수리에 속하였다. 1963년 용수리의 일부를 갈라 용당리라 하여 한경면에 편입되었다. - 디지털제주문화대전 참조

0 용당교차로 : 일주도로와 제2산록도로(1115호선)가 만나는 곳으로 제2산록도의 실제 기점이 됨

0 한경면충혼묘지 : 1958년에 조성된 묘역으로 충혼탑 추모비 묘역 등으로 구분되고 있음

0 용수교차로 : 일주도로와 용수리로 잇는 마을길이 만나는 곳이다. 여기서부터 '고산리~신도리~무릉리' 마을들을 우회시켜 일과교차로까지 도로 확/포장 공사가 대대적으로 진행 중에 있음

0 당오름 : 예전에 이 오름에 당(堂)이 있었음에 당오름, 당산봉(堂山峰), 당(堂)에서 섬겼던 신이 뱀이었는데 이 사귀(蛇鬼)가 차귀(遮歸)로의 와전, 호종단(胡宗旦)이 제주 섬의 수맥(水脈)을 끊어 버리고 송나라로 돌아갈 때 한라산신(漢拏山神)이 매(鷹 : 응)로 화하여 돌아가는 길을 막았다는 데 연유하여 차귀오름(遮歸岳)이라 하고 있음

0 고산리 : 상고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국가사적 제412호인 고산선사유적지가 있는 역사의 고장으로, 그리고 토끼와 염소를 풀어놓은 자연과 같이하는 아름다운 섬 차귀도. 전설이 숨쉬는 수월봉에서 바라보는 그림 같은 바다 등의 자연경관뿐만 아니라, 배낚시가 가능한 포구 등이 있는 볼거리, 먹거리와 함께 체험이 함께하는 마을이다. - 마을 홈페이지에서 옮김

0 녹남봉 : 예전에 이 오름에 녹나무가 많이 자라나서 녹남봉(오름), 이를 한자로 표기하여 장목악(樟木岳), 녹남봉을 한자 표음화하여 농남봉(農南峰)이라 하고 있음

0 보르미 : 오름의 모양새가 보름달같이 둥글다 하여 ‘보르미(보름+이(미)․보로미(보롬+이(미)’, 이 마을 주민들이 보름달을 맞이하는 곳이라 하여 망산(望山), 망월봉(望月峰)이라 하고 있음

0 신도1/2/3리 : 서귀포시의 가장 서쪽에 위치하며, 마을 뒤에는 녹남봉이 있다. 주변으로 농토가 넓게 펼쳐져 있다. 자연마을로는 비자동, 모살물동네, 논깍(답미동 : 沓尾洞) 등이 있다. 비자동은 옛날 이곳에 비자나무가 무성했다는 데서 연유한 이름이다. 논깍은 논밭의 끝에 형성된 동네라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논깍, 농깍이라 하였으며 한자표기로 답미동이라고도 한다. - 네이버 백과사전에서 옮김

0 무릉1/2리 : 대정읍 서부지역의 중심지로 해안 및 중산간을 광범위하게 포용하고 있는 마을이다. 1654년(효종 5) 대정현감으로 부임한 변만향이 둔포리(현 신도리의 옛이름)의 부락명이 좋지 않다 하여 도원리로 개칭하자, 이웃마을인 이곳도 옛 중국고사에 나오는 무릉도원의 머릿글자를 따서 무릉리로 개칭하였다고 한다. - 네이버 백과사전에서 옮김

0 돈대미 : 예전에 이 오름에 돈대(墩臺 : 예전에 성곽이나 변방의 요지에 적을 감시하고 연기를 피워 통신수단으로 활용하던 시설물)가 세워졌으므로 인해 돈대+미(산의 의미를 지닌 제주어)라고 불려지다 와전되어 돈돌미, 돈두미오름, 돈도름, 이를 한자로 돈두악(敦頭岳), 돈도악(頓道岳), 돈대산(墩臺山)이라 표기하고 있다. 또한, 오름의 모양새가 돼지머리를 닮았다 하여 ‘돈(豚)+두(頭)+미’라고도 하고 있음

0 영락리 : 농경지가 넓은 편이며 전형적인 농촌이다. 해안가에 돈두악(돈두미오름)이 있다. 자연마을로는 돗구멍동, 내논동 등이 있다. 돗구멍동은 옛날 이 동네 큰 구멍에서 돼지를 길렀다 하여 돗구멍동이라 불렀으며, 후에 한자표기로 재혈동이라고도 불렀다. - 네이버 백과사전에서 옮김

0 일과1/2리 : 생활용수를 공급하는 서림수원지가 있으며, 많은 용천이 있어 식수가 풍부한 마을이다. 자연마을로는 대수동, 제성몰리, 명달동 등이 있다. 대수동은 식수가 많아 처음에는 큰물동이라 불리던 곳으로 그 후 한자표기에 의해 대수동이라 불렸다. 마을 앞 바닷가에 환해장성 및 서림연대가 위치한다. - 네이버 백과사전에서 옮김

0 동일교차로 : 일주도로와 대한로(1120호선)가 만나는 곳으로 대한로(대정~한림)의 실제 기점이 됨

0 동일1/2리 : 예전에는 '날외'라 불리웠고 지석묘 2기가 발견되는 등 곳곳에 역사유적이 있으며 소금을 만들던 염전터가 지금도 전해 내려오는 유서깊은 마을로 가시오름 동남쪽에 위치하고 있다. 자연마을로는 홍수동, 알나외 등이 있다. 홍수동은 생수가 솟아나와 홍물동, 홍수왓동이라 불리던 것이 한자로 표기되면서 불리게 된 이름이다. - 네이버 백과사전에서 옮김

0 대정여자고등학교 : 1964년 3월 대정여중을 병설하여 개교한 공립 여자고등학교

1961년 9월부터 시작한 일주도로 포장 사업은 1971년 1월에 완공을 했다. 그리고 일주도로에 대한 확, 포장 사업은 1992년 제주~애월 구간을 시작으로 2017년 완공을 목표로 추진하고 있다. 제주 서부 지역은 용수교차로에서 '고산리~신도리~무릉리'를 지나 일과교차로 구간이 진행 중에 있다. 예산 때문에 마을을 우회하다보니 예전의 모습은 거의 찾아볼 수 없고 그 분위기 또한 육지부의 고속국도와 비슷해서 제주의 정감을 반감시키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요즘 한국인의 평균 수명(남자 75.7세, 여자 82.4)과 기대 수명(남자 77.2년, 여자 84.1년)이 늘어나면서 제2인생 설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어쩌면 제주섬 한 바퀴를 걸음도 이에 무관한 것은 아닐 것이다. 톨스토이는 다음의 세 가지 질문, '일생 중 가장 중요한 때는? - 바로 지금. 가장 중요한 사람은? - 지금 만나고 있는 사람. 가장 중요한 일은? - 바로 지금 하고 있는 일'이라고 답하였다고 한다.

남은 인생살이는?
'나홀로 인생'이 아닌 '더불어 함께 하는 품앗이 인생'이었으면 좋겠다.
2012-04-04 10:2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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