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우회 소식
걸어서 제주 속으로 6 - 일주도로(함덕초중교 앞~시외버스터미널)
 김승태
 2012-06-11 11:29:34  |   조회: 238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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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3~4월, 오름오르미들 창립 10돌을 기념하기 위한 '걸어서 제주 속으로'의 '해안길을 따라' 섬 한 바퀴를 돌고나니 걷기의 매력에 푹 빠져들었고, 이는 제주의 주요 도로를 모두 걸어보자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이어진 '한라산을 넘어서, 중산간도로를 따라서, 평화로와 번영로를 따라서, 지방도로를 따라서'는 제주의 문화와 역사를 이해하는 데 더없이 좋은 시간들이었으며, 제주 섬을 세 차례(해길/중산간/일주도로)나 거닒은 그 무엇에 홀린 기분이었다.

제주의 일주도로 2차 확, 포장 사업(노폭 24.5m)은 지난 1992년 제주~애월 구간을 시작으로 마무리 단계에 이르렀다. 계획 당시에는 2017년까지였는데 공사 장기화에 따른 관광 차량과 지역주민 민원 등이 제기돼 완공을 3년 앞당기기로 했다고 한다. '함덕~신촌' 구간이 가장 늦게 발주된 까닭은 무엇일까?

'걸어서 제주 속으로 6' 제10일째 마지막 날인 4월 29일, 비 내림 예보가 있었지만 걷기를 마칠 때까지 내리지 않아 최상의 조건을 제공해 주었다. 출발지인 함덕초.중교 앞까지는 버스로 이동했으며 도착지이면서 지난 3월 1일 출발지였던 시외버스터미널까지는 주거리 15.7km, 보조거리 0.1km, 모두 15.8km였다. 4시간 21분이 소요되었는데 그 여정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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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덕초.중교 앞(08:34)~조천사거리(09:08)~신촌리 입구/진드르(09:47)~삼양검문소(10:12)~삼양검은모래해변 입구(10:40)~삼사석(10:56)~화북남문(11:38)~오현고 앞(11:45)~국립제주박물관사거리/일주도로*번영로 교차점(11:59)~인제사거리(12:09)~광양사거리(12:36)~시외버스터미널(12:55)

---- 주요 역사의 현장

0 조천리 : 8백여 년 전에 설촌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제주 항일정신이 투철한 곳으로 조천만세동산과 항일기념관이 있다. 기념물로는 비석거리, 연대, 도지정 문화재로 연북정이 있으며 고가옥이 잘보존되어 있고 2월에는 용신제라는 세시풍속이 있어 제주 제일의 문화 유적지임을 자랑하고 있다. - 마을 홈페이지에서 옮김

0 조천리사거리 : 일주도로와 남조로(1118호선)가 만나는 곳으로 남조로의 실제 기점이 됨

0 신촌리 : 400여 년 전 현재 마을 위치보다 위쪽에 <숙군>이라는 이름으로 설촌한 것으로 전해오고 있으며, 식수 곤란으로 물을 찾아 해안으로 내려오면서 '새로 생긴 마을'이라는 데서 신촌리라 부르게 되다. - 마을 홈페이지에서 옮김

0 진드르 : 진('길다'의 구개음화 '질다'의 관형형) + 드르(들)의 분석되면 기다란 들판으로 해석됨

0 원당봉 : 원나라 때 이 오름 중턱에 원나라의 당인 원당(元堂)이 있었음에 원당봉(오름), 조선 시대 때 원당봉수가 세워진 데서 망오름, 삼양동에 위치하고 있음에 삼양봉, 3개의 능선에 7개의 봉우리가 이어져 있어 원당칠봉(일명 삼첩칠봉)이라고도 불려지고 있음

0 삼양1/2/3동 : 설촌은 조선 초에 고려 유민들이 유배되고 또는 은둔할 목적으로 제주도에 입도하여 살기 시작할때 이루어 졌다고 짐작된다. 삼양 1ㆍ2ㆍ3동과 도련 1ㆍ2동 5개의 자연마을로 이뤄져 있다. 마을 지형이 호미모양을 하고 있다고 하여 서흘포 또는 설개라 불리웠던 삼양1동과 단물(甘水)이 많이 흘러나와 감물개(가물개, 감흘개)라 불리웠던 삼양2동, 바다에 접하여 파도소리가 서로의 파도를 가르는 듯하다 하여 칠벌(伐), 물결랑(浪)을 이어 벌랑(속칭 버렁)이라 불리웠던 삼양3동은 일주도로 북쪽에 위치하여 바다를 모두 접하고 있다. 도련(道連)은 사면으로 모든 길이 이어져 있다하여 불리워진 이름으로서, 옛부터 오곡이 풍성하고 평온하여 인근주민들이 부러워 도련드르라 불렀던 도련1동과 마을 모양이 매화꽃과 같다고 하여 매촌(梅村 속칭 맨촌)이라 불리우는 도련2동마을은 일주도로에서 남쪽에 위치해 있다. 백여 년 전에 풍수지리설에 의거, 설개, 감을개, 매촌(梅村) 세 마을이 합(合)해졌다는 데서 삼(三)을 따고 천기 운도(天氣運度)의 동력중구(動力中木區)인 중양(重陽)의 양(陽)자를 합(合)해서 삼양(三陽)이라 호칭하였다. - 삼양동 홈페이지에서 옮김

0 제주민속박물관 : 1964년 6월에 진성기 씨가 설립한 박물관으로 제주라는 지역적 특성에서 선조들의 오랜 생활의 슬기에서 만들어진 이 지방의 역사와 전통을 지닌 향토적 생활 도구를 보존, 전시하고 있다. - 네이버백과사전 참조

0 삼사석 : 제주도 기념물 제4호. 탐라가 개국하고 고, 양, 부 삼성신인(三姓神人)이 삼성혈에서 솟아나 벽랑국의 세 공주를 배필로 정한 뒤 활을 쏘아 거처할 터전을 정할 때 그 화살이 꽂혔던 돌이다. 제주시 화북1동 1380-1에 위치한다. - 네이버백과사전 참조

0 화북1/2동 : 400여 년 이전에서부터 사람들이 정착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화북1ㆍ2동과 6개의 자연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조선 시대에는 '별도포리(別刀浦里), 별도리(別刀里), 화북포(禾北浦)' 등으로 불리다가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공북리(拱北里)'라 했다. 1908년경부터 화북리(禾北里)라 했다. 지명유래와 관련하여 별(別)과 화(禾)는 모두 신역(神域)을 뜻하는 '볼'의 표기로 별도와 화북은 '볼뒤'로 '신역의 뒤'라는 의미라는 설과 칼로 단장을 끊는 듯 하는 이별의 아픔을 뜻하는 데서 '별도'라 했다는 설, 제주도의 최북방에 꽂힌 마을이라는 데서 '공북'이라 했다는 설, 별도봉 동북 기슭 절벽이 칼로 자른 듯하다는 데서 '별도(別刀)'라 했다는 설 등이 있다. - 화북동 홈페이지 / 네이버지식사전에서 옮김

0 베리오름 : 원래의 이름 베리오름에는 이론이 없는 것 같다. 그 어원의 해석에 대해서는, 벨(벼랑의 제주어)+도(길목의 제주어)로 벼랑에 이르는 길목, 예전에 육지를 드나드는 포구가 있었음에 유래하여 배의 길목인 뱃+도, 이 오름이 소재한 화북동이 벼를 재배하던 곳이었으므로 그 마을의 뒤인 볏+뒤의 변이, 그리고 포구가 있었음에 관련지어 이별의 슬픔이 칼로 베이는 것과 같다 하여 별도봉(別刀峰), 화북에 위치하여 화북봉(禾北峰)이라고도 함

0 사라봉 : 일반적으로 지는 해가 고아 마치 비단을 펼쳐놓은 듯하다 하여 사라(紗羅)라고 붙여졌다고 한다. 그러나 한자 표기 이전부터 이 오름은 사라오름이라 명명되었는데 사라는 ‘동쪽, 신성시하다.’의 의미를 지니고 있음

0 국립제주박물관 : 2001년 6월에 개관한 박물관으로, 제주 전통민가 형상으로 지어져 제주의 토착 역사와 문화 등을 종합적으로 소개, 전시하고 있음

0 국립박물관사거리 : 일주도로와 번영로(97호선)가 만나는 곳으로 동일주도로와 번영로의 실제 기점이 된다. 동일주도로는 이 지점에서 서귀포시청 입구까지이며 서일주도로는 서귀포시청 입구에서 신광사거리까지인데 광양사거리를 중심으로 동쪽은 동광로~동일주도로, 서쪽은 서광로와 도령로(신광사거리)~서일주도로로 이어짐

0 광양사거리 : 일주도로와 5.16도로(1131호선)가 만나는 곳으로 5.16도로의 실제 기점이 됨

제주섬 한 바퀴 걷기는 실로 많은 걸 생각하게 했다. 개발과 발전의 논리에 의해 옛 정취가 많이 퇴색되었지만 그곳에는 제주인의 삶의 모습들이 남아 있었다. 지역과 마을에 따라 사뭇 다른 분위기들, 예전의 길을 사장시키면서 꼭 우회시켰어야 했을까? 하는 의문 등은 영원한 숙제가 될 것 같다. 이와 함께 제주특별자치도 차원에서 마을별. 지역별로 설촌 유래 및 주요 관광지를 소개하는 안내판과 헷갈리게 하는 이정표 등의 대대적인 정비, 가로수의 지속적인 식재, 2006년 7월에 제주가 특별자치도 출범으로 국도가 지방도로 편입되면서 도로 관련 국비 예산 지원에서 역차별 등은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기도 하다.

'지자요수 인자요산(智者樂水仁者樂山, 지혜로운 사람은 사리에 밝아 물을 좋아하고, 어진 사람은 의리에 밝아 산을 좋아한다.)'라는 구절이 문득 떠오른다. 제주 오름(산)을 좋아하는 인연으로 만난 멋지고 아름다운 분들과 함께 '물도 아니고 산도 아닌' 그 길에서 열흘 동안 거닐면서 살아감을 얘기하고 제주 속으로 빠져들어감은 더없이 행복한 순간순간들이었다.

'걸은 만큼 행복하다.'고 했던가? 일주도로를 따라 제주섬 한 바퀴를 10구간으로 나눠 거닐어 다시 출발지로 돌아왔다. 제주에서 살아가는 제주인들에게, 아니 제주를 알고 싶어하는 모든 분들에게 제주의 길 중 대표격인 일주도로 걷기를 추천하고 싶다. 그 길에서 제주의 다양한 모습들을 나름대로 찾아봄은 분명 의미있는 일 중의 하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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