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5건) 리스트형 웹진형 타일형 (3)세상을 움직인 대정치가 제주에 유배 오다 (3)세상을 움직인 대정치가 제주에 유배 오다 조선 후기는 ‘송시열의 나라’였다. 송시열(1607~1689)은 성리학의 대가이자 집권 여당인 서인 노론(老論)의 영수로 조선왕조실록에 3000번이나 이름이 등장했다.조광조와 더불어 조선을 유교의 나라로 만든 장본인이었던 그는 공자와 주자를 잇는 송자(宋子)로 추앙받았다. 우리나라 학자 중 ‘자(子)’가 붙은 유일한 인물로, 역사상 가장 방대한 문집인 송자대전(宋子大全)을 남겼다.사약을 받고 죽었음에도 유교의 대가들만이 오른다는 문묘(文廟)에 배향됐고, 전국 23개 서원에 제향됐다. 당시 그의 죽음은 신념을 위한 순교로 이해됐고, 길에서 제주를 만나다 | 좌동철 기자 | 2021-01-17 18:11 (2)“제주 유배문화, 독보적인 장르 개척 절실" (2)“제주 유배문화, 독보적인 장르 개척 절실" “광해군은 오늘날 매력적인 캐릭터로 떠올라 영화와 오페라, 뮤지컬에 등장했다. 게임과 만화, 음악 등 다양한 미디어가 접목된 킬러 콘텐츠(핵심 콘텐츠)로 활용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30년간 제주 유배문화를 연구해 온 양진건 제주대학교 스토리텔링연구개발센터소장은 2019년 ‘탐라공략’에 이어 지난해 ‘광해의 요리사 충(沖)’을 네이버 웹소설에 연재했다.웹소설 ‘탐라공략’은 추사 김정희가 북경에서 진시황의 불로초를 구하러 떠났던 서복의 암각문 탁본을 보게 되면서 시작되는 동아시아 보물에 얽힌 뒷이야기다. 두 번째 웹소설은 광해군의 남 길에서 제주를 만나다 | 좌동철 기자 | 2021-01-10 16:51 (2)380년 전 잠든 광해군, 제주 원도심을 깨우다 (2)380년 전 잠든 광해군, 제주 원도심을 깨우다 광해군(1575~1641)이 제주에서 눈을 감은 1641년 음력 7월 1일을 전후해 제주에 큰 비가 내렸다고 한다.제주에서는 이 때 내리는 비를 ‘광해우’(光海雨)라는 한다. 그를 추모하는 제주민초들의 마음이 여름 가뭄에 단비로 내렸다는 믿음으로 전해온다.광해군은 유별난 미식가로 꼽힌다. 광해군에게 총애를 받은 이충(李?·1568~1619)은 호조판서에 올랐지만 ‘잡채 판서’로 유명하다.광해군일기에 따르면 이충은 겨울에도 땅 속에 큰 집을 짓고 그 안에 채소를 길렀다. 당시에 구하기 힘들었던 맛난 음식을 만들어 아침·저녁으로 광해군 길에서 제주를 만나다 | 좌동철 기자 | 2021-01-10 16:48 (1)인목대비 모친 노씨, 여성 첫 제주 유배 (1)인목대비 모친 노씨, 여성 첫 제주 유배 광해군은 이복동생인 영창대군의 외조부이자 당대 실력자인 김제남이 영창대군을 옹립하려는 모반을 했다는 이유로 그에게 사약을 내렸다. 강화도로 유배를 보낸 영창대군을 살해했다.이 사건으로 김제남의 부인이자 인목대비의 어머니인 노(盧)씨부인(1577~1637)은 1618년 제주에 유배된다. 여자로서는 최초의 제주도 유배인이다.화북 거로마을에서 귀양살이를 한 노씨부인은 술을 빚어 팔며 연명했다. 대비의 어머니가 만든 술은 ‘대비모주(大妃母酒)’라 불렸다. 제주에서는 지금도 탁주(막걸리)를 어머니의 술이라는 뜻으로 ‘모주’(母酒)라 부른다. 길에서 제주를 만나다 | 좌동철 기자 | 2021-01-10 16:45 (1)왕에서 죄인으로’ 드라마틱한 삶 제주에서 끝내다 (1)왕에서 죄인으로’ 드라마틱한 삶 제주에서 끝내다 제주의 역사·문화를 알려면 길에서 그 답을 찾아야 한다. 제주를 뒤흔든 사건과 역사적 인물의 발자취는 길에서 시작해 길에서 끝난다. 본지는 인생행로의 희로애락을 간직한 길에서 제주의 진면목을 살펴보는 기획을 연재한다. 【편집자 주】제15대 임금 광해군(1575~1641)은 조선의 왕 중 가장 드라마틱한 삶을 살았다.광해군은 선조의 후궁인 공빈김씨의 둘째아들로 태어났다. 왕통을 계승할 적자가 아니었지만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상황은 급변했다.선조는 국난에 대비해 광해군을 세자로 삼고, 조정을 둘로 나눴다. 선조의 원조정(元朝廷 길에서 제주를 만나다 | 좌동철 기자 | 2021-01-10 16:42 처음처음1끝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