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숨이 왜 이리 거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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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을식 소설가/제주문화예술재단 이사

일상에 대한 절절한 반성이 필요하거나 무뎌진 감각의 날을 벼리고자할 때 나는 무작정 버스에 오르는 버릇이 있다.

 

차창 밖으로 흘러가는 도시의 무미건조한 거리나 시골의 소박한 풍경을 바라보면서 마음을 다잡다보면 나름 긍정적인 결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검의 시간이 끝나면 내 감각의 안테나는 같은 공간에 있는 동승자들을 살펴보는 일로 분주해진다. 주로 관심을 갖는 것은 승객 개개인이 내뿜는 날숨에 관해서다. 내가 날숨을 주목하는 것은, 우리 인간에게 꼭 필요한 소통 매개인 언어가 바로 이 날숨의 영역에 속하기에 그렇다.

 

어느 때 버스가 시골 장터를 거치기라도 하면 그날은 왠지 횡재한 기분이 든다. 버스에 가득 들어 찬 사람들의 날숨에서 나오는 맛깔난 언어는 그야말로 말의 성찬이다. 그들의 입에서 쏟아지는 거침없는 언어를 통해서 밋밋한 생의 소소한 재미며 그것의 질감까지도 생생하게 느껴볼 수가 있다.

 

어느 날에는 참새 떼같이 무리지어 버스에 오르는 교복을 입은 아이들을 만날 때가 있다. 이런 때는 또 다른 분위기에 한껏 고무된다. 마치 신록으로 가득 찬 숲속에 들어와 휴식을 즐기고 있는 느낌이랄까. 이럴 때 아이들의 상큼한 날숨에는 이산화탄소가 전혀 들어있지 않은 것 같아 차 안의 공기가 오히려 신선해진 느낌까지 드는 것이다.

 

하지만 요즘 날숨의 상황이 예전 같지가 않아서 걱정이다. 버스에서 만나는 도민들의 날숨은 왠지 모르게 한숨과 구별되지 않고, 힘을 잃은 말은 그대로 푸념에 가깝다. 수입은 줄고 물가는 가파르게 오르니 삶이 팍팍해져서 그런 것이 아닌가 싶어 마음 구석이 싸하다.

 

하지만 요즘 정말 심각하게 우려가 되는 것은 아이들의 언어 습관이다. 오종종한 입에서 날숨을 타고 나오는 언어가 차마 입에 담아 옮길 수 없을 정도로 흉하다. 아이들의 날숨에서 청정하고 건강한 언어가 사라지면서 대신 난폭한 욕설이 넘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여학생의 날숨은 다른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내가 보기에는 50보 100보인 것 같다. 장소 불문하고 성별 따지지 않고 두세 명만 모이면 아이들은 마치 '쌍말 경연'을 벌이는 경쟁자 같다. 그런 경연이 있다면 말이다.

 

시대에 따라 언어 습관에도 약간의 변화는 있게 마련이다. 어느 때는 은어나 속어, 일단의 유행어가 마치 불멸의 언어처럼 위세를 떨치지만 그러나 그뿐, 곧 시들하다가 사멸한다. 그래서 그건 시간이 해결해주는 문제이기도 했다. 그런데 요즘 아이들의 언어 습관은 예전의 그것과는 전혀 다른 현상으로 읽혀서 걱정이다.

 

입에서 날숨을 타고 나오는 언어에는 그 사람의 사상과 감정이 고스란히 담기게 된다. 그래서 말은 곧 그 사람이고 그 사람의 인격이라고 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아이들은 지금 자신의 인격에 황당한 자해를 가하고 있는 셈이다.

 

날숨에 건강한 말이 실리지 않고 비어와 욕설만 난무하는 아이들의 이 못된 언어 습관을 이대로 방치해서는 안 된다.

 

대화의 절반이 욕설로 채워지는 이 이상한 현상을 나몰라 하고 내버려 둔다면 우리의 미래는 어두울 수밖에 없다. 늦은 감이 있지만 이제라도 학교와 가정과 사회가 나서서 이에 대한 고민을 심각하게 해야 한다.

 

욕쟁이로 자란 아이들이 어른이 되었을 때의 사회를 그려보라, 끔찍하지 아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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