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이 넘치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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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광리 제주한라병원 흉부외과장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에 욕이 넘쳐나기 시작했다. 5`~6살 아이들부터 어른들까지 입에 욕을 달고 사는 경우가 흔하고 욕에 대한 상대방의 반응도 무뎌져서 그냥 그런가 보다 하는 수준까지 이르렀다. 초·중·고교생들이 지나가며 나누는 대화를 들어보면 욕이 빠지면 말 자체가 성립이 안될 지경에 이르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욕에는 성차별도 없어서 예전에 보기 힘들었던 욕하는 여성이 흔해져서 욕을 쓰는 사람의 성비도 비교적 균등해진 듯 하다.

 

그야말로 욕이 넘치는 사회가 된 것이다. 욕 잘하는 놈이 출세하는 사회가 되었기 때문인가? 아니면 어른이 어른답지 않고 스승이 스승답지 않고 선배가 선배답지 않은 세상이니 욕을 해도 별로 죄의식을 못 느끼는 것인가? 과거에는 누군가에게 욕을 사용했다는 자체가 큰 모욕으로 여겨져서 사과하지 않으면 결투를 벌여야 했으나 이젠 욕을 먹은 사람도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 이상한 사회가 됐다. 물론 우리나라의 반만년 슬픈 역사를 되돌아보면 민초들의 삶은 지배자들에게 빼앗기고 억눌리고, 외세의 침략에 믿었던 국가 지도자들은 백성들을 속이고 도망부터 치기 바빴으니 참으로 욕 없이 살기는 어려웠으리라 추측해 본다.

 

그렇지만 욕이 넘치는 현대 사회의 진짜 문제는 욕의 질이 낮아졌다는 것이다. 욕이라고 다 같은 욕이 아닌 것이 욕에도 등급이 있다고 한다. 최근 동아대 교수가 발표한 욕에 대한 논문에서 우리나라의 욕을 공격적이고 파괴적인 쌍욕, 비아냥거림과 조소의 방귀욕, 꾸지람과 차별의 채찍욕, 애칭과 유희의 익살욕 등 4가지로 구분했다고 한다. 그런데 문제는 스트레스 해소, 사회질서 유지, 친밀감 증대, 집단 결속을 강화시키는 순기능이 많은 질 높은 욕인 익살욕 보다는 인간 본능을 자극하는 가학적인 질 낮은 나머지 세가지 유형의 욕들이 현대 사회 욕의 주류를 이루고 있다는 데 있다. 그렇다면 이렇게 욕의 질이 낮아진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첫째로 끔찍한 경쟁에 휘둘리는 현대 사회에서 이겨서 살아남기 위해 마치 약한 동물이 힘있는 동물에게 덤빌 때 깃털을 세우는 과장된 몸짓과도 같이 자신의 능력과 자신감의 부족을 감추려는 거친 표현이 질 낮은 욕으로 표현되었다고 볼 때 건강하지 못한 경쟁사회가 욕을 부르는 중요한 원인일 것이다.

 

둘째는 사회지도층이라는 사람들이 맨날 싸우는 모습만 보여주고 무슨 무슨 죄를 지었다느니 하면서 매스컴에 오르내리다 보니 가족들이 모여서 뉴스를 시청하다 보면 가장의 입에서 욕이 안 나올 수가 없는 것이 현실이 되어버렸으니 사회지도층의 잘못도 적지 않다고 하겠다.

 

마지막으로는 텔레비전 채널을 돌리다 보면 학교 다닐 때 주로 딴 짓 하던 친구들이 천문학적 소득을 올리는 연예인이 되어 나타나서는 주말의 평화로운 휴식을 취하려는 사람들에게 아무런 교훈도 없는 순간적이며 말초적인 웃음과 거칠고 천박한 언행으로 세상사람들을 바보로 만들고 있는 것을 느낀다. 이런 국민 바보 만들기 프로그램들이 당장엔 높은 시청률로 거액의 광고비로 이어지니까 방송국에서는 앞다투어 만들겠지만 멀리 보면 자라나는 아이들의 언행과 사고에 영향을 미쳐 국가에 큰 해를 끼칠 것이 자명하다라는 면에서 방송 및 언론인들의 책임도 크다고 할 수 있다.

 

사회가 메마르고 각박해 질수록 욕이 필요할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인간관계에서 싸움을 불러일으키고 피를 부르는 질 낮은 욕이 넘치는 사회는 분명 잘못된 사회이다. 순기능이 있는 건강한 욕이 넘치는 사회로 바꾸기 위해서는 구성원 모두의 노력이 필요하다. 권모술수와 편법이 정도를 이기거나, 지연, 학연, 혈연이 능력에 우선하거나 하면 질 낮은 욕이 넘치는 사회가 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일단 정한 규칙은 지키고 좀 돌아가더라도 정도를 걷는 것을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가르치고 마음속에 바른 것을 세우려는 자세를 우리 모두가 갖는다면 건강한 욕이 넘치는 사회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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