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 박정희 의장의 세 번째 제주방문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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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의장, 홍콩같은 '제주 자유항' 구상 전격 발표
파격적인 조치와 정부의 적극 추진의지에 모두 놀라
"정부 지시없이 제주도가 자율적으로 연구 검토하라"
대공문제와 제주역량 미비 이유로 결국 사업 유보

박정희 의장은 1963년 6월 2일 도지사 공관에서 첫째 날을 마무리한 후 다음 날인 3일 오전 도청에서 업무보고를 받은 후 서귀포로 향했다.

 

박 의장은 서쪽 방향으로 이동하면서 애월 신엄의 간이수도급수장을 방문한 데 이어 한림읍 대림 지역 심정굴착현장, 안덕면 화순 급수시설을 잇따라 찾았다.

 

박 의장은 제주도를 처음 방문했을 때 제주도민들이 물 문제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매우 가슴 아파하고 하루빨리 대책을 세울 것을 내게 지시한 적이 있었다.

 

박 의장은 내게 지시한 일들이 어떻게 이뤄지고 있는 지 확인해보고 싶었던 듯 급수시설방문을 우선시 했다.

 

박 의장이 제주시에서 서쪽 일주도로를 따라 서귀포로 가던 중 대림지역 간이수도 현장을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이 지역에 살고 있던 어떤 여성이 박 의장에게 다가와 두 손을 모으고 “의장님 자꾸 혁명만 해줍써”라는 말을 기도하듯 계속 얘기하자 박 의장 수행원들이 무슨 뜻인지 몰라 어리둥절해 있었다.

 

수행원 등이 무슨 말이냐고 묻자 내가 설명했는데 바로 전까지만 해도 빗물을 받아 식수로 사용했는데 이제는 수돗물을 먹게 돼서 그런 것이라고 해석해주자 고개를 끄덕였다.

 

또 박 의장은 이동하던 도중 해안풍경을 보더니 “1억불만 이곳에 팍 쏟아 붓기만 한다면 멋진 관광지가 될 거야”라고 혼잣말로 중얼거리기도 했다.

 

앞좌석에 타고 박 의장의 혼잣말을 듣고 있던 이후락 실장이 “제주도가 이만큼 개발된 것은 김 지사의 힘이 컸다”며 나를 추켜세워 준 일도 있었다.

 

박 의장은 세 번째 제주도를 방문했을 때는 휴양을 겸해 중산간 어느 지역에선가 사냥을 하기도 했다.

 

박 의장의 사냥은 도내 경찰관 가운데 전문가 수준의 엽사가 있었는데 그는 사냥터 지리도 밝아 박 의장을 안내했는데 꿩 몇 마리를 사냥했다.

 

박 의장은 이어 4·3 이재민 원주지 복귀사업으로 복원된 남원 학림동 마을을 찾아 지역주민을 격려하기도했다.

 

4·3 이재민 원주지 복귀사업은 혁명정부가 출범되고 내가 도지사에 취임하자마자 처음 시작한 사업이었다.

 

박 의장도 이 사업에 큰 관심을 보이며 군사정부가 해결해야할 중요사업으로 국가재건최고회의에 상정하고 정부에 적극적인 지원을 지시했었다.

 

나는 지금도 내가 잘한 일 중 하나가 지난 정부로부터 고통을 받은 4·3 이재민들이 고향으로 다시 돌아가 살 수 있도록 하는 4·3 이재민 원주지 복귀사업이다.

 

나는 4·3 이재민들이 복귀해서 조상 대대로 살아왔던 곳에서 편안하고 행복하게 살았으면 하고 기원했다.

 

박 의장도 4·3 이재민 원주지 복귀사업이 마무리된 후에도 정부차원에서 지속적으로 지원해 그들이 안정적으로 살 수 있도록 도우며 위로하고 격려했다.

 

박 의장은 서귀포에서 거시적인 제주도의 개발방향을 전격적으로 제시하고 나와 대동한 장관들에게 지시했다.

 

제주도를 자유항으로 개발하는 것을 적극 검토하고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 상공부에 보고하라는 것이었다.

 

이른바 서귀포구상이라는 제주도 자유항 개방계획은 제주도의 관광산업과 수산업, 농·축산업의 획기적인 발전을 위해 하와이, 홍콩 마카오 같은 자유항으로 개방해야한다는 국가정책이었다.

 

박 의장의 서귀포 구상이 비록 전격적으로 발표됐으나 내가 제주도지사에 부임하고 박 의장이 제주도에 처음 방문해 도정 업무를 보고할 때 제주도개발 비전으로 이미 제시했던 것이기도 했다.

 

당시 상공부 수장이었던 박충훈 장관이 제주도 출신이어서 나의 제안을 적극 검토하고 박 의장에게 적극적으로 제의하면서 이뤄진 배경이 있다.

 

박 장관은 당시 박 의장에게 제주도에 관심을 갖고 지원해준데 대한 감사와 고마움을 담아 보고했음을 나는 알고 있다.

 

홍콩이 자유항으로 개방된 지 45년 만에 65억불의 외화를 벌어들이고 있는 사실과 제주도를 나와 박 장관은 자유항으로 개방할 경우 10만 명이 넘는 제주출신 재일동포들의 자본을 유치할 수 있다는 점을 들어 제주도 자유항설치 문제를 박 의장에게 적극 제의한 결과였다.

 

박 의장이 제시한 제주도 자유항 개방 구상은 나의 제안을 정부가 크게 관심을 갖고 적극적으로 뒷받침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박 의장은 또 자유항 구상을 발표하면서 중앙정부에 구애받지 말고 제주도가 독자적인 자율권을 갖고 자유롭게 정책을 구상하라는 것이었다.

 

제주도 자유항 개방 구상은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것이었던 만큼 어느 누구도 감히 접근할 수 없었던 사안이기도 했다.

 

당시 내 주변에서는 제주도를 홍콩·하와이 같은 자유항으로 만든다는 구상에 대해 꿈같은 얘기라며 실현 가능성에 의문을 품고 정부가 관심이나 가져줄까 하는 회의적인 반응이 대부분이었는데 정부가 관심을 갖고 추진을 지시하자 모두가 깜짝 놀라는 분위기였다.

 

꿈은 꾸어야 실현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

 

더욱이 박 의장은 정부에 지시하지 않고 제주도가 알아서 연구검토하고 중앙정부가 적극 지원하라고 지시한 것은 엄청난 일이었다.

 

제주도 자유항 개방은 제주도뿐 아니라 대한민국이 대양으로 해외로 진출한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고 국제화하는 역할을 수행하기 위한 것이었다.

 

다시 말해 제주도 자유항 개방은 국가발전의 한 방안으로 인식했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제주도을 개방하면 적성국가의 침투가 용이해질 우려가 있어 자유국가만을 상대로 한 제한개방이 돼야 한다는 주장이 뒤따랐다.

 

또 자유항 개방 문제는 당시 제주도 자체의 역량으로 수립하기에는 역부족이었으며 대공문제와 제주지방의 여건 미비 등 여러 가지 이유로 결국 유보됐다.

 

다시 말해 제주도 자유항 개방은 지역발전 차원에서 접근해 중앙정부 차원으로 발전된 것으로 제주지역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국가 전체의 이해와 안보와도 직결된 문제였기 때문이었다.

 

제주도에서는 여러 전문가와 여러번 대책회의를 열고 논의한 결과 자유항 개방은 외국물자의 교역중계를 담당하는 국제시장으로 조성하는 것과 우방국가의 자유로운 투자유치를 위해 제주도의 풍부한 농·수산물과 한라산을 관광자원으로 개발해 나간다는 원칙을 일단 수립했다.

 

그러나 방대한 자유항 개방계획을 지방자치단체에서 다루기에는 정보와 전문적 능력면에서 역부족임을 실감해 정부에서 자유항 문제를 전담해주거나 전문가의 지원을 요구하는 선에서 나의 도지사 임기를 마무리 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세계적 추세는 바다를 통해 발전하는 흐름이 조성됐고 바다의 중요성이 커졌고 우리나라의 입장에서는 제주도의 역할이 어느 때 보다 필요했었다.

 

그러나 그로부터 40여 년인 2000년 제주국제자유도시가 정부차원에서 추진되고 가시적 성과를 나타내고 있어 내 생각이 틀리지 않았음을 다시 확인하고 있다. 내가 50년 전 도지사에 부임하면서 제주도를 하와이 홍콩 같은 지역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구상과 생각이 이제 제주국제자유도시로 정리되고 발전되고 있음에 흐믓하고 기쁘기 그지 없다.
정리=강영진 정치부장yjkang@jej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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