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레길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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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길주 前 제주학생문화원장/수필가

나는 유명세를 타는, 그래서 사람들이 왁자지껄 모여드는 그런 산이나 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나 홀로 자연의 미성(微聲)에 귀 기울이며 내 안의 파고(波高)를 잠재울 수 있는 한적한 숲길이 좋다.
도심의 일상에서 사람에 치이며 살기도 버거운데, 이런 자연 속에서마저 인간이 내뱉는 소음에 시달릴 수는 없질 않은가.

 

간만에 호젓한 올레길을 걸었다. 한라산 시내줄기를 따라 흐르는 생태 숲길이다. 혼자인줄 알았는데 이곳저곳에서 도란도란 정겨운 소리가 들린다. 천상의 무릉도원도 아마 이런 풍광이리라. 따가운 햇살을 가려주는 크고 작은 나무들이 쑥쑥 솟아올라 하늘보기 하는 모습이며, 잎파랑이에서 내쏘는 반사광은 가히 황홀경이다. 간혹 오가는 이들의 기척에 숲의 고요도 한조각 파문을 그리며 여기가 현세임을 일깨울 뿐.

 

요즘 행복 찾기의 메가트렌드(Megatrends)는 ‘느림’이다. 앞만 보며 정신없이 달려온 삶들. 어느 날 문득 속도를 줄이고 주위를 둘러보면 모두가 낯섦이다. 내 정체성마저 가물거린다. 그러니 흔들리는 나를 바로 세우려고, 잃어버린 나를 다시 찾겠다며 산촌으로, 농촌으로 되돌아간다.

 

그러지 못하는 이들은 주말농장을 찾아 가족끼리 땀방울을 흘리거나 옥상 텃밭에서 초록의 생명을 키우며 가쁜 숨을 고르기도 하고. 그러다 오늘처럼 하늘이 고운 날은 홀로 아니면 짝지어 올레길을 걸으며 처연하리만치 제 정체성에 충실 하는 자연 속으로 빠져보기도 한다. 도심에서는 살 비빌 듯 스쳐 지나도 본체만체 하던 사람들도 이 한적한 올레길에서는 낯선 이들끼리 웃는 낯을 맞대며 인사말을 건네고.
“좋은 하루 되십시오” “행복하십시오”

 

느림은 여유다. 그 여유가 삶에 쫓기는 생활인을 속박을 풀어헤친 느긋한 자연인으로 탈바꿈시키는 모양이다. 순박한 본성이 내 안에 차오르며 경박함을 밀어낸다.
주위가 선경(仙境)으로 다가오고 오가는 이들의 면면도 친숙함으로 내 안에 든다.

 

숲을 요리조리 엮어 이은 나뭇가지엔 이름 모를 산새들이 사랑 놀음이다. 저들은 제 피붙이를 먹여 살릴 양식 쌓기에 어리석은 땀방울을 흘리지 않으니 주린 배만 채워지면 오직 제 생에 충실할 따름이다.

 

그러고 보면 자연의 어느 것 하나 인간의 우매한 탐욕을 닮은 게 없으니 이곳에서는 그 무엇이 훼방하지 않은 한 모든 것들의 삶이 평형을 유지할 수 있음이다.

 

내 생은 내 생이고, 네 생은 네 생일뿐. 제 각기 제 생의 흐름대로 살아가는, 서로가 방해하지도 방해받지도 않는 그런 삶을 이어갈 수 있음이 아닌가.

 

내가 사는 이 사회의 삶의 양태는 치열함을 넘어 으스스한 공포감마저 든다. 제 입신과 양명을 위한 살벌한 투쟁, 자식을 위한다는 그럴듯한 명분의 가학적 행태들, 대대손손 먹여 살릴 재물 쌓기에 이전투구다. 그런가 하면 하릴없는 이들은 네 편 내 편으로 이 사회를 갈라놓고 허망한 논쟁 꺼리를 만들며 갈등 키우기에 골몰하고. 이런 수라장 같은 삶의 둥지에 헐벗고 굶주림, 눈꼴사나운 사치와 낭비가 아슬아슬하게 공존하니 이 또한 아이러니가 아닌가. 그런데도 오직 더 빨리, 더 높이, 더 많이, 허기를 채우겠다는 아우성만 높아만 갈 뿐이니….

 

이런 청량한 올레길이라도 간간이 걸으며 제 안에 버겁게 품어 안은 욕망의 자루들을 하나 둘 비우고, 삶의 속도를 줄여보는 건 어떨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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