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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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효상 건축가/이로재 대표

지난 9월 1일 개막된 광주디자인비엔날레가 이번 주말 막을 내린다. 디자인에 대한 새로운 개념을 소개하고 담론의 계기를 만들어 그 지평을 넓힘으로써, 디자인비엔날레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보여줬다는 유수한 해외언론들의 찬사가, 그간의 노력에 대한 좋은 위로가 됐다. 여러 전시 중에서도 광주폴리라는 이름으로 광주의 도심에 지은 작은 공공시설물이 이번 비엔날레의 성격을 단연코 부각시켰다고 했다.

 

이 광주폴리는 금번 디자인비엔날레의 주제인 ‘도가도비상도-디자인이 디자인이면 디자인이 아니다’와 연관해, 디자인과 장소의 관계를 설명하는 일환으로 기획된 전시였다. 장소와 연관된 디자인이라면 건축이 대표적일 수밖에 없는데, 작은 시설물을 실제로 완공하고 전시하며 이를 광주폴리라고 했다. 폴리(Folly)는 원래 ‘다소 우둔하고 우스꽝스러운 것’을 뜻한다. 지난 1980년대 중반 버나드 츄미가 파리의 라빌레트공원을 설계해 지은 35개의 시설물을 폴리라고 부른 이후, 건축용어로 자리 잡으면서 간단한 구조물이지만 문화적 기능을 수행하는 도시의 공공시설물로 알려지게 됐다.

 

광주는 문화수도라는 이름을 내세우며 문화와 관련된 많은 도시정책을 야심 차게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내가 비엔날레의 총감독직을 맡고 광주를 오가면서 본 도시모습은 이에 걸맞은 게 아니었다.

 

나는 사라진 광주의 읍성에 주목했다. 광주가 역사도시임을 밝혀주는 광주읍성은 1900년대 초 일제에 의해 도시 확장을 이유로 붕괴되고 말았다. 그러나 사라진 읍성은 도심 내 중요한 도로가 돼 그 존재의 사실이 남아있고, 읍성 안에는 여전한 옛길들이 있었다. 우리는 이 2.3㎞에 달하는 읍성길을 따라 읍성을 출입하는 문이 있던 자리와 모서리부분 10군데에 광주폴리를 짓기로 했다.

 

어느 곳은 작은 공원으로, 어느 곳은 작은 공연장 혹은 전시장, 또는 버스정류장이나 지하철역출입구를 겸하는 기능을 설정하고 세계유수의 건축가들을 초청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건축가들에게 이 작은 시설의 설계가 매력 있을 리가 없다. 보상도 턱없었다. 나는 이들을 찾아가 광주의 민주화 운동의 역사와 그 의미를 설명했고 건축가로서 이런 문화운동에 대한 참여의 의미를 강조하며 참가 동의를 받았다. 그리고 이들의 놀라운 헌신으로 마침내 개막일에 맞춰 완공하기에 이른 것이다. 물론 모두 뜻한 바대로 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벌써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을 안다. 수없이 많은 이들이 이 폴리를 보기 위해 방문하고 있는 것은 물론, 폴리 주변의 어느 가게는 이들을 맞기 위해 그 업종까지 바꿀 것을 생각하고 있다고 한다. 곳곳에서 공연과 집회가 벌어지는가 하면 어떤 곳은 저녁 무렵 주민들이 이 작은 시설에 모여 같이 음식을 나누며 공동체를 확인한다. 이런 움직임은 아마도 증폭하여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마치 수면에 던져진 작은 돌 하나가 파장을 만들며 주변으로 번지듯 이 폴리를 기점으로 주변은 주민 스스로에 의해 새로운 환경으로 바뀌어나갈 가능성이 짙다. 그래서 폴리를 문화적 거점이라고 한다.

 

도시를 재개발하기 위해 마스터플랜이라는 이름으로 기존의 환경을 싹쓸이하듯 지워 오래된 삶터를 유린하는 일은 이미 서양에서는 폐기된 방법인데도, 유독 우리의 땅에서는 정치권력과 자본권력의 야합으로 이 생소한 풍경 만들기가 성행되어왔다. 과거에 대한 기억 없이는 어떤 아름다움도 없다고 했다. 지속 가능한 삶이 역사를 기반으로 선다는 것을 알 때, 지금까지 전 국민을 도시의 유목민으로 몰아낸 기존 재개발은 폐기되어야 한다.

 

물론 광주폴리가 모든 도시문제에 대한 해답일 리 없다. 그러나 부인할 수 없는 소득이 있다. 모든 광주시민이 광주가 역사도시라는 것을 확인하면서 스스로 도심 재생에 나설 조짐이 보인 것이다. 역사를 인식하게 되면 미래가 보이는 법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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