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한라산 횡단도로(5.16도로) 개통②
37.한라산 횡단도로(5.16도로) 개통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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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산 횡단도로 개통은 제주개발의 시발점"
김한준 국장, 청와대서 박정희 대통령 친필받아 표시석 세워
김 국장, 홍성림 건설과장 등 공무원들의 헌신적 노력의 산물

나는 제주시에서 한라산 횡단도로 포장 준공 기념사를 마치자마자 마이크로 버스를 타고 서귀포로 향했는데 예정시간보다 10분 늦게 도착했다.

 

그러나 나는 이를 통해 횡단도로 개통 전에는 5시간 정도 걸리던 제주시~서귀포간 거리를 1시간으로 단축시켰음을 보여줬으며 제주도민들의 생활시계를 바꿔놓을 수 있었다.

 

서귀포는 지역 전체가 온통 축제분위기였다. 극장은 하루 동안 주민들을 무료입장시켰고 술집들은 손님들에게 술값을 20%나 할인해줬다.

 

나는 기념식이 끝나자 서귀포 주민들과 함께 대기하고 있던 택시와 트럭, 마이크로버스 등을 나눠 타고 제주시에서 출발한 주민들과 조우하기 위해 단풍이 최절정에 오른 수악교로 향했다.

 

한라산 횡단도로 개통의 축하연이 수악교 북쪽 1㎞지점에 있는 잔디밭에서 열렸다. 제주시와 서귀포에서 각각 올라온 양쪽의 주민들은 ‘한라산 허리에 사람이 둥실망실/ 서귀포 제주에 자동차 둥실망실/에헤라....’제주민요인 둥그레 당실의 가사를 바꿔 부르면서 준비해간 도시락으로 잔치를 벌였다.

 

이날 제주도청에서는 행사참석자가 300명 정도 될 것으로 예상하고 도시락을 준비했다가 사람들이 대거 몰려드는 바람에 도시락이 바닥날 정도로 대성황을 이뤘다.

 

나는 한라산 횡단도로 포장 개통이 제주도개발의 상징이자 시작점으로 본다.

 

일주도로가 제주도 전역을 1일 생활권으로 만들었다면 한라산 횡단도로는 한라산을 중심으로 남북을 잇는 대동맥의 기능과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한라산 횡단도로는 또 한라산과 주변의 빼어난 풍광을 보여줌으로써 전국 최고의 관광도로이자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훌륭해 자랑할 만하고 우리나라 최초의 산악도로라는 역사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또 제주의 관광 및 산업발전에 있어서 역사적 전환점을 이룬 대사건이었다.

 

비록 내가 제주도 개발의 시작으로 한라산 횡단도로 포장을 구상하고 중앙정부의 관료들의 거센 반대를 무릅쓰고 실천에 옮길 수 있었던 것은 이 모든 과정을 박정희 최고회의 의장과 함께 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으로 본다.

 

박 의장은 한라산 횡단도로 포장 개통을 ‘한라산의 기적’을 이룰 시작으로 보았듯이 나 역시 제주도 개발의 서막을 열었다고 생각한다.

 

또한 한라산 횡단도로 포장의 정치적 기술적으로 험난한 과정을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공사현장을 총 감독했던 김한준 산업개발국장과 홍성림 과장을 비롯한 제주도청의 공무원들의 헌신적인 노력의 결과였다. 그리고 한라산 횡단도로는 혁명정부의 의지로 이뤄졌다는 도민들의 뜻을 모아 5·16도로로 명명됐고 지금은 5·16이 많이 퇴색됐지만 전국에서 유일하게 5·16명칭이 살아남은 곳도 5·16도로가 유일하다.

 

당시 한라산 횡단도로의 도로명을 정하려고 회의를 하고 의견을 수렴한 적이 있었는데 그중에 박정희 최고회의 의장의 이름을 딴 정희도로가 가장 많았고 내 이름을 따 영관도로로 하자는 의견도 있었다. 그러나 혁명정부의 의지와 뜻이 반영돼 이룩된 만큼 5·16도로로 하자는 제안에 모두가 찬성했고 지금 생각해 보면 결과적으로 도로 이름을 잘 지었다고 생각한다. 한 때 5·16도로명을 놓고 제주도 일부에서는 도로명을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던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도로 이름을 다른 것으로 바꾼다고 그동안 불려졌던 5·16도로의 이름이 바뀌지도 않고 실제 5·16이후 들어선 혁명정부의 뜻에 따라 이뤄진 만큼 바꿀 필요가 없다는 여론이 대세를 이뤄 지금의 5·16도로 이름을 유지하게 됐다.

 

한라산 동쪽을 관통, 제주시와 서귀포를 횡단도로가 5·16도로로 불리게 것은 5·16 이후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현재 제주시 산천단에 위치한 춘강 사회복지법인 맞은 편 도로변에 5·16도로명비가 세워져 있다.

 

5·16도로명비는 한라산 횡단도로 포장 개통이 완료된 이후인 1967년 3월에 건립된 것으로 알고 있다.

 

이 비는 5·16도로 건설 기간을 획기적으로 단축한 공로를 인정받아 제주도 산업개발국장에서 총무국장으로 영전한 김한준 국장이 박정희 대통령의 초청으로 청와대를 방문해 박 대통령으로부터 친필 휘호를 받아와 높이 2m 정도의 자연석에 음각해 세운 것이다. 박대통령은 이날 김국장에게 만찬을 베풀며 그간의 노고를 치하했다.

 

이 비의 앞면에는 ‘五一六道路’, 뒷면에는 ‘題子 朴正熙 大統領 閣下 西紀 1967年 3月 建立’이라고 표기돼 있다.

 

또 5·16도로 건설을 계획했던 나를 잊지 않은 제주도민들이 나를 위해 공적비를 고맙게도 세워줬다.

 

이 공적비는 내가 도지사에서 물러난 한참 후인 1967년에 만들어 졌는데 이 도로에서 최고 높은 해발 750m 성판악 입구에 세워져 있다. 당시 나는 해군참모총장으로 재직 중이었는데 공적비 제막식은 1967년 4월 15일에 열렸고 정우식 제주도지사가 나를 초청해 참석했었다.

 

나는 제주도를 영원히 잊지 말고 열심히 일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였고 내게는 영예로운 일이었다. 공적비 글은 제주대 양중해 교수가 쓴 것으로 알고 있는데 제주도 개발이 머리에 떠오를 수 있도록 잘썼다. 비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한라산 산록의 기적을 다짐하던 그대, 열을 모아 손을 붙인 1962년 3월 24일 백리 가파른 산을 뚫어 잠자던 들판에 생명을 불어 넣은 아! 그대는 이 땅을 연 개척자! 밀물처럼 일어오는 이 길의 감동과 함께 우리는 그대의 위엄을 영원히 추모하리라! 33만 도민의 이름으로 이 비를 세우다.’

 

나와함께 5·16도로 개통에 함께 했던 김한준 국장은 박정희 대통령으로부터 두터운 신임을 받았다.

 

당시 제주지사는 내무부 고위간부 혹은 군출신이 거쳐가는 것이 관례였기 때문에 김한준 국장은 제주시장 재직 중에 박 대통령의 지시로 제주출신으로는 처음으로 한국 제2의 도시인 부산광역시 산업국장으로 영전했다.

 

이후 김 국장은 재무국장, 영도구청장, 동구청장, 서구청장, 중구청장을 역임한 후 정년퇴임했다. 김 국장은 제주일보 김대성 회장(한국신문윤리위원회 이사장)과 김대우 사장의 선친이다.
정리=강영진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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