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의 축(axis of ev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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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시인이자 비평가인 보들레르(Baudelaire)의 시집 ‘악의 꽃(Les Fleurs du Mal)’을 펼치면, “어리석음, 과오, 죄악, 탐욕이 우리 정신을 차지하고 괴롭히며…우릴 조종하는 끄나풀을 쥔 것은 악마인지고…”라는 시구를 만나게 된다.

그의 시에는 거지, 벼룩, 창녀, 독약, 뱀, 권태, 파괴, 송장 등의 단어들이 난무한다. 1857년 이 시집이 처음 나왔을 때 미풍양속을 해친다는 이유로 벌금과 함께 시 6편이 삭제 판결을 받았다.

보들레르의 문학적 가치가 제대로 평가받게 되는 것은 10여 년이 지난 후다. 그는 “명석한 분석력과 상상력으로 인간 심리의 심층을 탐구하고 고도의 비평정신을 추상적인 관능과 음악성이 넘치는 시에 결부했다”는 평가와 함께 상징주의 시의 선구자로 자리매김했다. 그는 인간 본성에 내재해 있는 악의 본질을 꿰뚫어 보면서 이를 역설적으로 찬미함으로써 ‘악의 시대’를 예고했는지도 모른다.

보들레르의 문학적 감수성에 영향을 받았는지, 아닌지는 확인할 길이 없지만 1983년 레이건 미국 대통령은 소련을 ‘악의 제국(evil empire)’으로 규정했다. 이는 결코 문학적 표현이 아니었다. 미국은 악의 제국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별들의 전쟁’에 나오는 우주무기를 현실화하기 위한 전략방위구상(SDI)에 착수했다. 미국과의 군비경쟁을 감당할 힘이 없는 ‘악의 제국’은 끝내 와해를 맞게 된다.

부시 미국 대통령은 2002년 연두교서에서 북한을 이란, 이라크와 더불어 세계 평화를 위협하는 ‘악의 축(axis of evil)’이라고 선언했다. 인민들을 굶기면서도 대량살상무기와 미사일을 비축하고 있다는 것이 이유다. 미국이 규정한 ‘악의 축’ 중에서도 북한이 맨 먼저 지목됐다.

미국이 ‘악’으로 규정한 북한의 지도자 김정일에 대해 김대중 대통령은 ‘식견있는 지도자’, ‘실용주의자’라고 불렀다. ‘식견있고 실용적인 지도자’가 절대 권력을 행사하는 나라가 ‘악의 축’이 될 수 있다는 것은 보들레르의 문학적 천재성으로도 풀기 어려운 수수께끼가 아닐까. 지난 3년 동안 북한의 핵개발 움직임을 포착했으면서도 이를 대통령에게 보고하지 않았다는 신건 국정원장의 국회 답변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궤변이다.

최고 통수권자로서 국가 안보에 관한 한 무한책임을 갖는 대통령이 국정원장의 보고 누락 때문에 북한 핵개발 움직임을 모른 채 대북사업을 추진해 왔다는 얘기가 되기 때문이다.

주요 산업시설을 방문한 북한 고위급 경제시찰단을 보는 우리의 심경은 더욱 착잡하기만 하다. 이번 시찰단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매제인 장성택 노동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 등 장관급이 4명이나 포함된 북한 정권의 실세 대표단이다.

북한 정권이 비밀리에 핵무기를 개발하고 있는 데도 그들이 보낸 대표단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전국 각지의 산업체와 관광지를 누비고 다니는 등 현실적 괴리를 풀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북한이 진정 우리를 화해와 협력의 대상으로 생각한다면 송이버섯이 아닌 핵 포기 선언을 선물로 가져왔어야 했다. 지금 상태가 계속되는 한 송이버섯은 핵폭발의 버섯구름을 연상시킬 따름이다.

북한의 핵에 대한 우려는 우리만의 관심사가 아니다. 한.미.일과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21개 회원국 정상들이 북한에 핵 포기를 촉구하면서 북한이 호응할 경우 얻게 될 ‘경제적 혜택’을 언급한 것도 핵과 경제 협력을 분리할 수 없다는 인식에 따른 것임을 북한은 유념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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