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리는 시누이’가 돼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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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누가 제주의 천연 예찬에 인색할손가/ 그 누가 탐라 문화 옹호에 등 돌릴손가/ 저 박수 사태 들어라/ 저 갈채 범람 뛰어들어라/ 마침내 제주는 세계의 제주로 공인되었느니라/ 제주가 세계의 명예인 제주로/ 둥기둥기 무등탔느니라/ 이로부터 제주는 또 하나의 제주가 되었느니라(…)// 허나 제주는 자신의 평화가/ 동방의 평화와 함께 있는 곳/ 제주는 세계의 형제자매가 모여드는 곳/ 또 하나의 자아와/ 또 하나의 세계를 낳는 곳/ 그 어떤 제국도 야망도 넘나들지 못하는 곳/ 또 하나의 세계를/ 세계가 선택하는 곳(…)// 제주는 아 제주! 아닐손가/ 아 제주여! 아 제주여!/ 오늘의 잔치로 오늘 이후의 제주 운명으로 나아감이여.”

대한민국 대표시인 고은 선생이 본보에 보낸 축시 ‘또 하나의 제주를 간다’의 일부다.

지난 12일 새벽 제주는 그렇게 세계로부터 공인을 받았다. 그리하여 둥기둥기 무등을 타면서 제주는 세계의 명예가, 보물섬이 됐다. 그 후 2주가 흐르면서 제주사회는 아주 빨리 식었다. 어디에서도 7대 경관에 선정될 수 있도록 힘을 모으자고 외쳤던 열정의 잔상을 찾기 어렵다. 흡사 파장 분위기다.

고사리손 유치원생으로부터 팔순을 넘긴 촌로에 이르기까지, 성금의 많고 적음에 관계없이 전화기탁을 위해 대열을 이룬 기억이 새삼스러울 정도다.

평창의 동계올림픽 유치에 비교하면서 동참을 호소했던 유치위원회와 제주도, 각급 기관·단체들도 너나할 것 없이 조용하다. 마치 피로가 쌓여 꿈쩍도 못하는 형상이라고 할까. 그럴 만도 하다. 자발적인 전화투표 기탁이라고는 하지만 다른 지역에 비해 촘촘한 네트워크로 이뤄진 지역사회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할 수 밖에 없다. 그렇게 한 것이 60억원에 가깝다고 하니 만만한 규모가 아니다. 웬만한 기업과 단체는 이 대열에 합류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공직사회도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았다는 것이 중론이다. 그렇게 해서 이뤄낸 것이 세계 7대 자연경관이다.

그런데, 고대하던 결과를 만들어낸 이후 7대 경관은 도민사회의 얘깃거리에서 확 사라졌다. 무엇보다 제주도 당국의 후속 움직임이 맥이 없다. 이렇다 할 로드맵을 내놓지 못하면서 올 한 해 제주사회의 가장 큰 이슈였다는 것이 이상할 정도다. 더 이해할 수 없는 것은 7대 경관 선정 과정에 대한 논란이 여전히 지속되면서 이에 대한 해명에 급급한 모습이다.

유치위원회와 제주도 당국이 이에 말려드는 형국이다. 이제 와서 7대 경관 선정에 대해 딴지를 걸면, 도민들의 열정은 무엇이 되는가. 제주도의 브랜드 가치와 대한민국의 국격(國格)은 웃음거리로 추락해야 하는가.

7대 경관 선정의 큰 의미 중 하나는 도민통합을 위한 에너지를 모으는 역할을 했다는 점이다. 썩 깔끔했다고 할 순 없지만, 모처럼 한 목소리를 낸 것은 사실 이다.

다시 돌아갈 순 없는 노릇이다. 말 하기 좋다고 경쟁적으로 이것 꺼내고, 저것 쑤셔대는 모습을 보는 도민들만 혼란스럽다. 의혹은 해소해야 하지만, 분위기에 편승해 한건주의로 던져보는 말들이 도민들의 자괴감을 불러 일으키는 것은 아닌지 숙고해 볼 일이다.

‘때리는 시어미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고 했다.

이런 일련의 흐름은 ‘선정 운동’ 단계를 넘어서는 국면 전환이 매끄럽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선정 이후’를 견인할 전략이 부재한 탓이라는 얘기다.

도민의 헌신과 열정을 올곧게 담아 제주의 비전으로 승화시킬 지혜를 모으기에도 시간은 많지 않다.

신정익 / 편집부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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