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내가 기억하는 사람들, 나를 기억해주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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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인 못지않은 제주사랑 일궈 한평생 영예로워"
먼저 알아보고 인사해주는 도민 고마워
세상과 이별한 그들에게 늘 감사하는 삶

내 고향은 강원도 김화인데 내 고향을 제주도로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실제 내 고향은 이북에 있어 고향을 떠난 후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제주도를 내 고향으로 생각하고 50년 전 제주도지사를 했던 것을 단 한 번도 잊은 적이 없고 영광스럽고 명예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제주도지사로서 명예를 지키고자 애써왔다고 자부한다.내 아내 역시 초대 제주도걸스카웃연맹회장을 지냈던 인연으로 아직까지 50년간 제주걸스카웃과 인연을 이어온 명예 제주도민이다.

 

비록 서울에 살고 있지만 제주걸스카웃을 함께 했던 동료 후배들과 함께 서울에서 제주걸스카웃 후원회를 만들어 여태껏 활동하고 있다.

 

또 내 아이들 중 둘째와 셋째는 제주도에서 초등학교를 다녔고 막내는 내가 제주도지사직에 있을 때 제주도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실질적인 고향이 제주도이다.

 

우리 가족 모두 제주도와의 인연을 소중하게 여기는 제주사람인 셈이다.

 

고맙게도 아직까지도 나를 제주도지사로, 제주도 사람으로 기억해주는 이들이 많다.

 

내가 제주도지사직에서 떠난 한 참 후의 일이다.

 

내가 일본 도쿄에 갈 일이 있어 전에 친하게 지냈던 제주출신 안재호 오사카 제주도민회장과 아사쿠사의 한 술집에 단 둘이 간 적이 있었다.

 

한국 사람이 운영하던 곳이었는데 한국여자들이 한복 입고 시중들었는데 어떤 30대 여자가 나를 알아봤다.

 

그 여자 분이 내게 ‘김영관 제주도지사님 아닙니까?’하고 물었다.

 

나는 다소 부끄러워서 ‘아닌데요, 누굴 찾으십니까?’하고 시치미를 떼고 부정을 했다.

 

그러자 그 여자 분이 ‘정말 똑 같이 생겼는데....’하고 실망한 표정이 역력했다.

 

그 모습을 본 안 회장이 우리 둘이만 몰래 간 것인데 우스워 죽겠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그 후로 너무 미안해서 다음에 만나면 사과를 해야지 하고 생각했지만 그 후로 간 적이 없어 사과를 하지 못했다. 지금이라고 그 여자 분에게 죄송하다고 전하고 싶다.

 

또 언제가 서울의 길거리에서 젊은이들과 마주친 적이 있었는데 그 젊은이들이 '지사님 아니십니까? 저는 오현고 출신입니다‘하고 인사를 해왔다.

 

제주출신 젊은 청년들이 나를 알아보고 이렇게 인사를 하는 경우가 참 많았다.

 

그때 마다 그들은 내게 ‘제주도를 위해 일을 많이 해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하고 인사를 하곤 했다.

 

나를 알아보고는 인사를 하는 이들은 모두가 평범한 제주도출신들이었다.

 

나로서는 알 길이 없는 이들인데도 나를 알아보고는 먼저 다가와 인사를 건네는 것이었다.

 

그리고 김인종 경호처장과 전화통화할 일이 있어 김 처장의 집에 전화를 걸었는데 김 처장의 부인이 전화를 받고는 나를 알아보고 초등학교때 나로부터 상을 받은 적이 있다고 인사를 하기도 했다.

 

나는 현재도 서울제주도민회 고문으로 있다.

 

서울제주도민회는 무슨 특별한 행사 때마다 나를 불러주고 기억해준다.

 

무엇보다도 내가 특별히 고맙게 생각하는 것은 지사직을 떠나 해군참모종장으로 재직중이던 1967년 봄에 나를 위해 5.16도로 중간지점인 성판악에 33만 도민의 이름으로 송덕비를 세워준 일이다.

 

나는 이를 보고 제주도를 위해 영원히 잊지 말고 열심히 일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나로서는 참으로 영예로운 일이다.

 

내 나이 이제 미수(米壽.88세) 바라보고 있다. 내가 제주도지사에 임명됐을 때로부터 50년이 지났다.

 

나와 함께 제주도개발에 청춘을 함께 보낸 많은 이들이 이 세상을 떠났다.

 

그들을 생각할 때 마다 고맙고 감사한 마음에 울컥해진다.

 

오래전 김한준 국장(현 김대성 제주일보 회장과 김대우 사장의 선친)과 함께 5.16도로공사를 책임지고 궂은일을 도맡아 했던 홍성림 과장이 작고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눈물이 났었다.

 

내가 홍 과장이 수고했던 것을 가장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홍 과장은 맏은 일에 대해 참으로 성실하고 책임감이 누구보다 높았고 나의 손길이 미처 닫지 못하던 조그만 일까지 세세하게 챙겼던 사람이다.

 

초대 국립 제주대 학장을 했던 문종철 학장은 교육부 장관의 자격을 충분히 갖춘 분이다.

 

일본 교토제국대출신의 학력과 실력은 물론이거니와 그의 인품은 누구도 함부로 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았다.

 

문 학장이 있었기에 제주도 개발을 이끌 수 있는 수 많은 인재들을 길러낼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제주도 교육계와 여성계에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분이 최정숙 신성여교 교장이다.

 

높은 도덕성과 실력을 겸비해 많은 제주도민들의 존경을 받던 분으로 제주도 여성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또 양치종 교육감은 당시 내가 제주교육 모든 것을 맡길 수 있을 정도로 뛰어난 실력자였다.

 

고봉식 교육감 역시 당시 오현고에 재직중 관현악단 부활에 절대적인 공을 세운 분이다.

 

공무원 중에는 김한준 국장이 있었는데 5.16도로 등 제주도개발에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분이다.

 

김 국장은 후에 그 능력을 인정받다 박정희 대통령에 의해 발탁돼 부산시의 중구청장과 영도구청장을 지냈다.

 

제주 지방 공무원 출신으로 대도시의 국장급 이상의 직으로 발탁된 이는 내가 기억하기론 김 국장이 유일하다.

 

공무원 중에는 이군보 전 제주도지사, 강경주 부지사, 부윤경 남제주군수, 현치방 과장, 윤한정 과장, 김재호 과장, 김인탁 제주시장, 홍순만 문화공보실장 등이 있다. 언론계에는 강우준 제주신문사장과 고정일. 최현식 제주신문국장 등이 있다.

 

제주지방법원장을 지낸 김영길 법원장 역시 내가 도지사직을 수행할 때 믿고 의지했던 분 중 한 분이다.

 

나와는 같은 종친에다가 같은 항렬이라는 점 때문에 특별히 친하게 지낼 수 있었다.

 

또 대한적십자사 제주도지사장을 지낸 김영호지사장, 홍종언 대한상공회의소 제주회장, 내 후임으로 제주도지사를 지낸 강우준 제주신문사장은 제주도 개발에 있어 관과 민이 하나로 되게끔 여론을 이끈 공로가 매우 높다.

 

제주지역 원로로 박충훈 상공부장관의 부친인 박종실씨, 양치종 교육과장의 부친인 양홍기변호사, 감귤산업진흥의 제1공로자인 강창학씨 등이 있다.

 

그리고 지금도 생존하고 있는 분으로 장시영 원장이 있다.

 

장 원장은 내가 제주도지사를 하기 전부터 인연을 맺어온 분으로 나와는 가장 가까운 지인으로 아직까지 교분을 이어오고 있다.

 

장 원장은 의사로서 제주도민들로부터 높은 신망을 얻고 있었는데 내가 그분과 인연을 맺은 것은 행운이었다.

 

제주출신 재일교포로 김평진 회장과 안재호 회장이 있는데 해방 후 단절됐던 제주도와 제주출신 재일동포사회의 유대를 강화한 공로자들이자 제주개발을 이끈 분들이다.

 

그 외에도 미스 탐라 출신으로 서울의 중앙방송국의 아나운서로 이름을 날린 고려진씨도 있다.

 

내가 기억하는 많은 분들이 지금은 세상과 이별했지만 나는 여전히 그들을 내 마음속에 함께 하고 있고 늘 그분들게 감사하며 살고 있다.
<정리=강영진 정치부장>yjkang@jej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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