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전선과 강화 전적지 시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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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아침에 해가 떠서 저녁에 지고 나면, 다시는 되돌아올 수 없는 하루해는 간다. 이처럼 날이 가고 달이 가면서 계절은 바뀌어 낙엽과 함께 가을이 가고 겨울은 찾아와 계절은 변하고 세월은 흘렀지만 남과 북을 가로지른 휴전선 155마일의 철책은 반세기가 지났는 데도 철거될 줄 모르누나!

뜬구름은 바람을 타고 남과 북을 왕래하고 날짐승도 떼를 지어 활개치며 북녘땅을 오가는데 한겨레 한핏줄인 남북한 동포들은 반세기가 지나도록 발길이 묶였는고, 우리 제주도 제2건국 범국민 추진위원과 신지식인단 일행은 휴전선 너머로 북녘땅을 바라보며 한숨이 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나라 판문점은 6.25 이전에는 일개 주막거리에 불과했다. 그러던 곳이 6.25 이후 휴전회담 장소가 되면서 일약 세계인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명소가 되었으며 이곳 비무장지대에는 대한민국의 최북단에 위치한 대성동 자유의 마을이 있고 맞은편에는 주민들이 살지도 않는 위장된 기정동선전마을이 보이는데 이곳 중심부에는 높이가 160m나 되는 세계에서 제일 높은 인공기 게양대가 시설되어 있다. 대성동 마을은 대한민국의 최남단에 위치한 남제주군 남원읍 대성동 마을과 자매결연된 마을이기에 더더욱 관심을 갖고 보지 않을 수 없었다.

10월의 마지막 날인 31일 저녁 견학 일정 첫날을 마친 우리 일행은 강화안보수련원에서 1박을 하고 이튿날 아침 강화 전적지로 향하여 처음 닿은 곳이 강화군 불은면 덕성리에 위치한 덕진진 전적지였다.

이 덕진진은 사적 226호로 지정되어 있고 조선시대 강화해협을 지키는 요충지로 숙종 5년(1679년)에 설치되었고 1866년 병인양요 때는 양헌수 장군이 정족산성에서 프랑스군을 격퇴하고 강화군을 회복한 그 공적으로 세워진 전공비를 보았을 때 너무도 큰 감명을 받아 전공비 앞에서 잠시 묵념을 올리며 양 장군을 흠모해 보았다.

강화도는 우리나라 서울과 인접한 섬으로써 고려시대 이후 여러 차례의 외침으로부터 나라를 지켜온 국난국복의 현장으로써 그 전적비는 역사의 교훈으로 길이 빛날 것이요 강화도의 아름다운 경관은 세계적인 관광명소로 각광을 받게 될 것이며 강화의 역사관은 개국시원에 단군성조의 유품전시와 강화문화에는 팔만대장경을 비롯한 고전문화 유품과 강화 전쟁사가 잘 정리되었으며 강화의 전쟁사에는 양 장군의 영상이 훤히 세워져 있어 돌아보는 사람들의 눈길을 끌게 했다.

이처럼 견학과 시찰은 견문을 넓혀 주기 때문에 비록 1박2일의 짧은 기간이었지만 우리 시찰단 일행이 얻은 것은 매우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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