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내가 기억하는 사람들...잊을 수 없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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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료들 도움으로 민심 헤어리고 소통하는 법 배워
공적 업무 외에 정성껏 도왔던 보좌진들 생각나
제주개발 관심 아끼지 않은 중앙 인사에 고마움

내가 행정에 아무런 지식과 경험이 없음에도 제주도지사직을 별 문제없이 마칠 수 있었던 데에는 보좌관과 부관들의 공적, 사적인 지원과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나의 부하들에 대한 고마움을 잊을 수 없다.

 

제주도지사에 내가 처음 부임할 때 제주도로 같이 온 보좌관은 이호경 소령이었다.

 

이 보좌관은 해사 4기 출신으로 나중에 대령으로 예편했고 이미 작고했다.

 

또 다른 부관은 이겸우 대위였는데 그는 제주출신으로 오현고 1회 졸업생이자 해군사관학교 11기 후배였다.

 

특히 이 대위는 고향이 제주여서 내가 특별히 부관으로 삼았는데 나와 내 가족들이 제주도에 적응하는데 많은 도움을 줬다.

 

제주도의 민심을 헤아리는데, 도정을 수행하는데 도민과 소통하는 방법 등 그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이 대위는 이후 대령으로 예편했고 군을 나와서는 세무사자격증을 취득해 서울에서 세무사 이겸우 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다.

 

나는 지금도 이 대위와 교류하며 한가족처럼 가까이 지내고 있다.

 

특히 이 대위는 오현고 1회출신이어서 오현고 서울동문회가 열릴 때면 나를 초청해 제주도지사로 대우해오고 있다.

 

이 대위 후임 부관으로는 김동탁 대위가 있었다.

 

김 대위는 해사 12기 출신으로 소장으로 예편했다.

 

이들 보좌관과 부관은 현역 군인으로 도정 최고책임자인 나를 24시간 보좌하느라 이중으로 수고가 많았는데 공식적인 업무외에도 나의 개인적인 일까지도 도와야 했기 때문이다.

 

5.16도로 준공식 참석한 이는 함대사령관를 대신해 1전단 사령관이 참석했다.

 

그들이 있었기에 나는 제주도 개발에 전념할 수 있었고 그렇기에 그들을 잊을 수 없다.

 

내가 도지사에 부임해 처음으로 제주도 개발계획을 수립하는데 물심양면 도움을 아끼지 않은 군사정부 초대 내무장관인 한신장군이 있다.

 

한신 장관은 5.16이후 한 달 만인 1961년 6월22일 가장 먼저 제주도를 방문해 내가 구상하던 제주개발 방향에 공감을 표시한데 이어 한라산 횡단도로 개설포장사업을 처음으로 지지해준 분이였고 제주도에서 처음으로 도로포장공사 예산을 지원해줬다.

 

한신 장관은 박정희 대통령과 여러 면에서 닮은 점이 많아 군내부에서 많은 존경을 받은 분이다.

 

나와 국방대학원 동기생인 한신 장관은 군사정부시절 내무부장관가 감사원장을 지냈고 민정이양 후 군에 복귀해 합참의장을 거쳐 대장으로 예편했다.

 

또 한신 장관과 함께 제주도를 방문한 장경순 농림부장관은 4.3이재민 원주지 복귀사업을 추진할 때 영농자금 등 안정적인 정착을 위해 많은 도움을 줬다.

 

장 장관은 당시 국영호텔인 서귀포관광호텔을 운영하던 한재길 사장과는 일본에서 대학을 다니며 같이 유도를 했던 친구사이기도 했다.

 

4.3이재민 원주지 복귀사업에는 당시 송요찬 내각수반의 역할도 컸다.

 

송 수반은 4.3당시 제9연대장으로 진압작전에 참여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이 사업 지원에 머뭇거리고 주춤했지만 내가 “제주도민들이 송 수반을 다 기억하는데 모른채 할 것이냐”고 밀어붙이자 웃으며 승낙했다.

 

한신 장관 후임으로 내무부장관이 된 박경원 소장은 나와는 국방대학원 동기생으로 4.3이재민 원주지 복귀사업 준공식 때는 직접 제주도로 내려와 축하하기도 했다.

 

도립 제주대학을 국립대학으로 승격하는데 있어 당시 문교부장관이던 문희석 해병대 대령을 빼놓을 수 없다.

 

문 장관은 나의 군 후배로 나 처럼 5.16모의과정에 참여하지 않았으나 주위의 추대로 장관에 임명된 케이스로 일본 동지사대와 서울대를 졸업하고 중앙대조교수, 국방대학원 교수를 지낸 학구파였으며 건국대 총장까지 지냈다.

 

내 요청으로 제주도로 직접 내려온 문 장관은 제주대학에서 “무언가 도와야겠다는 마음으로 왔는데 도립 제주대를 전국에서 제일 먼저 국립대로 승격 시켜야겠다”고 국립대 승격을 적극 도왔다.

 

제주대 국립승격결정은 5.16이후 3개월이 채 되지 않은 1961년 8월10일의 국가재건최고회의에서 만장일치로 이뤄졌다.

 

5.16을 주도한 김종필 중앙정보부장은 박정희 최고회의 의장이 처음 제주도를 초도순시할 때 동행했을 때 내가 처음 인연을 맺었는데 이후 제주도 개발에 있어 최대 후원자 역할을 했다.

 

특히 김 부장의 비서실장인 고재일씨는 제주도 출신이어서 내가 서울출장 때 그를 통하면 언제든지 김 부장을 만나 제주도 지원을 부탁할 수 있었다.

 

고재일 중앙정보부장 비서실장은 민정 이양이후 청와대 총무비서관을 거쳐 건설부장관까지 지냈다.
아울러 지금은 고인이 된 김형욱 최고위원(이후 중앙정보부장)은 제주도 위원이라고 할 정도로 국가재건최고회의내 제주도 후원자역할을 다 해줬다.

 

이와함께 제주도 개발 사업에 있어 가장 중요한 문제 중 하나가 중장비를 육지에서 제주도로 운송하는 문제였다.

 

이 문제를 간단하게 해결한 것이 바로 해군LST함정이었는데 이 함정을 자유롭게 쓸 수 있도록 도와준 이가 바로 당시 이성호 해군참모총장이다.

 

이 총장은 내가 도지사로 임명됐을 때 군에 남게 해달라고 요청하자 “아무소리 말고 그냥 도지사로 내려가라”면서 “도지사로 부임하면 무엇이든지 돕겠다”고 내게 약속했었다.

 

이 총장은 지금도 나를 보면 당시 얘기를 꺼낸다.

 

제주도와 육지 간 연계교통망을 확충하는 데는 당시 국가재건최고회의 최고위원이던 김윤근 교체위원장이 있다.

 

나의 해군사관학교 동기생인 김 위원장은 제주와 육지간 항공기운항을 정기화하고 매일 운항하는데 많은 역할을 한데 이어 큰 규모의 선박이 제주-육지간 노선에 투입되도록 힘을 써줬다.

 

5.16도로 포장사업은 박정희 최고회의 의장이 직접 관심 갖고 지원하는 사업인 만큼 내로라하는 중앙의 요인들이 현장을 찾아 관심을 나타내며 너도나도 지원에 나섰다.

 

이주일 최고회의 부의장, 김동하 최고위원, 김현철 내각수반 등이 있다.

 

특히 김현철 내각수반의 부인은 제주도를 너무 좋아해서 미국과 일본에서 손님이 오면 꼭 제주도로 데려와서 제주관광을 시켜주며 제주도의 아름다운 자연과 민속문화를 알리는데 적극적인 역할을 했으며 강창학씨가 운영하던 감귤원은 단골 관람장소였다.

 

이외에 박병권 국방부장관, 나와는 국방대 동기생이었던 정래혁 상공장관과 윤태일 최고위원(서울시장), 오원선 보사부장관, 박정희 의장이 진해에 있는 육군대학에서 같이 교육을 받으며 나와 인연을 맺었던 최주종 최고위원 등이 있다.

 

제주도를 알리는데는 문화 예술계 인사들이 한몫을 톡톡히 했다.

 

소설가인 최정희 여사와 손소희 여사, 정비석과 김동리씨는 서울의 문인들을 상대로 제주도의 아름다운 풍광과 발전소식을 알리는 소식통들이었다.

 

배우로는 김진규, 김승호씨가 있고 악단을 운영하던 이봉조씨는 제주도에 왔다가 기상이 악화돼 제주에 며칠 더 체류하는 상황이었는데 내가 체류비를 지원해주면서 특별한 인연을 맺었다.

 

이들 유명인사들은 제주도방문 자체가 전국의 뉴스였고 제주도를 알리는 중요한 수단이었던 셈이다.

 

이와함께 내가 잊을 수 없는 이는 박충훈 상공부장관의 형제들이다.

 

당시 제주도립병원장을 지냈던 박영훈씨, 방송국을 운영하던 박태훈씨가 있다.
<정리=강영진 정치부장>yjkang@jej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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