꺼삐딴 리
꺼삐딴 리
  • 김홍철
  • 승인 2002.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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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을 한 달여 앞둔 정치권의 이합집산은 탈당과 입당으로 그야말로 점입가경이다. 지난달 14일 충청권 출신 두 의원 영입을 시작으로 세불리기에 나선 한나라당과 추가탈당.후보단일화로 격량에 휩싸인 민주당, 이달 초 중앙당 창당대회를 가진 국민통합21 등 속내만 다를 뿐 집권이라는 목표 아래 영일이 없다.

386세대의 리더격이었던 김민석 의원의 탈당과 국민통합21 합류는 한국 정치의 비정한 단면을 던지며 충격을 줬고, 급기야 이달 초 민주당내 ‘후보단일화협의회’(후단협) 소속의원 등 11명이 당을 떠났다.

이어 연이은 탈당으로 무소속 의원은 20명 이상으로 늘어 대선을 앞둔 정치권의 ‘헤쳐모여’는 불 보듯 뻔해졌다.

후보단일화, 중부권 신당론 등 격량의 정치 파동의 예고 드라마는 의원들의 탈당으로 점화, 대선이라는 풍경 아래 배신과 변절의 계절이 도래했다는 뜻으로 귀결된다.

당(黨)이 같은 정치이념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헤쳐 모여”하면 우리 정치사에서는 언제고 어느 때고 당은 생겨났다. 3김 정치의 잘못된 전형을 또다시 답습하려는 정치권은 국민들로부터 외면 당하고 있다. 비록 탈당은 않았지만 권력의 양지를 향해 여기저기 기웃거리는 의원에서부터 새로운 양지를 좇아 보따리를 싸는 지도층 인사들의 변신은 물론 어제오늘 일만은 아니다.

세상에 변절의 귀재, 처세의 달인은 많지만 우리는 하나의 전형을 전광용의 소설 ‘꺼삐딴 리’에서 찾아볼 수 있다.

주인공 이인국은 일제강점기 대학을 나온 외과의사로 ‘국어상용가(國語常用家)’로 지정받은 황국신민이다. 이인국은 친일.친소.친미로 이어지는 변절의 과정에서 도덕적 기준이나 인간적 신념에 관계없이 그에게 안일한 삶을 주는 일이라면 무슨 일이든 한다.

일제 때 잠꼬대까지 일본말을 한 덕에 ‘국어상용가’라는 액자까지 달았던 그는 독립운동가의 입원을 거절할 정도로 주의의 정세변화에 민감하다. 일제시대에 내선일체(內鮮一體)에 앞장서고, 자식들의 모스크바 유학에 열을 올리고, 미국 유학에 조바심하는 식민지 근성의 단적인 표본이다.

해방 후 친일파, 민족반역자로 구속되었을 때도 그는 살아갈 방법을 궁리했다. 옥중에서 초보 노어책을 거의 암송, 소련군 장교와 소통하는 계기가 된다. 소련장교의 혹을 수술한 그는 자유의 몸이 되고 이러한 이인국의 남다른 처세술은 6.25가 일어나 월남한 후에도 빛을 발한다.

1.4후퇴 때 왕진가방 하나 들고 월남한 그는 서울 도심지에 병원을 차리고 원장 자리에 오른다. 돈이 없어 보이는 환자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받지 않았으며 출세를 위해 미국과 관계를 맺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이인국. “그 사마귀 같은 일본놈들 틈에서도 살았고, 닥싸귀 같은 로스케 속에서도 살아났는데 양키라고 다를까…. 나라가 바뀌었으면 바뀌구 아직 이인국이 살 구멍은 막히지 않았다.”

이 같은 이인국의 독백은 변절과 탈당으로 이어지는 의원들의 탈당의 변(辯)과 너무나 닮아 있다. ‘거스를 수 없는 역사의 대세’ ‘선택의 시기를 앞당겼다’는 탈당의 이유들은 또 다른 이인국의 궤변이 아닌가.

일제강점기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이인국과 비슷한 인물들이 수도 없이 명멸했다. 권력에 대한 끊임없는 아부, 그러면서도 국민 위에서 군림하는 군상(群像)들, 위선과 배신 속에서 자기의 안일만을 생각하며 시류에 따라 처신했던 사람들. 카멜레온처럼 변신하면서 지조는 헌신짝처럼 던져버리고 신념보다 이해(利害)에 집착하면서 살아온 그들이 바로 ‘꺼삐딴 리’다.

시인 조지훈은 일찍이 그의 지조론을 통해 “지조가 없는 지도자는 믿을 수 없고, 믿을 수 없는 지도자는 따를 수 없다”라고 갈파했다.

자신의 명리만을 위해 동지와 지지자와 추종자를 하루아침에 함정에 빠뜨리고 달아나는 지조없는 지도자의 무절제와 배신 앞에 던진 그의 일갈은 대선을 앞둔 작금의 어지러운 정치판에 한줄기 폭포수와도 같은 메시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