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 보면서 넓은 길로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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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수학능력시험이 끝났다. 대입정보기관에서는 어느 대학 무슨 학과를 가기 위해서는 성적이 몇 점대가 되어야 한다고 예언하고 있고, 수험생과 학부모들은 성적 발표 날짜를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성적을 발표하는 날에는 전국 1등에서 60만등까지 순위가 매겨지리라.

그러나 수학능력시험 성적이 문자 그대로 대학에서 공부를 잘 할 수 있는지를 측정하지는 못한다. 오로지 수능시험 때문에 고등학교에서 진을 다 빼서 대학에 가서 공부할 의욕을 잃게 되는 경우라면 더욱 그렇다. 공부다운 공부, 즉 학문은 대학에서 비로소 시작되는데 이미 공부에 질려버려 대학에서 진정한 학문의 기쁨을 만끽하지 못하는 것은 대단히 안타까운 일이다.

그리고 수능시험 성적이 그 학생의 모든 능력을 나타내는 것도 아니다. 어느 철학 교수님이 하시던 말씀이 생각난다. 만일 장자(莊子)가 수능시험 문제를 낸다면, 60만명 모두가 일등 하는 문제를 낼 거라고. 공부는 못해도 노래를 잘 부를 수 있으며, 그림은 못 그려도 운동은 잘 할 수 있고, 다른 능력은 없어도 인간성 하나는 끝내줄 수 있다. 그런데도 수능 점수 하나로 모두를 일렬로 세우는 것은 이만저만 비합리적인 게 아니다.

우리나라의 교육제도와 사회구조를 탓하기 전에, 우리가 거기에 놀아나지 말아야 한다.

우선 대학에 지원하는 경우 점수에 맞춰 학교와 학과를 선택하지 말고,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고, 가장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학과를 선택하자. 수능 점수가 아까워서 적성에 맞지 않는 학과를 선택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그리고 지금 잘 나가는 학과보다는 앞으로 어떤 학과가 잘 나갈지를 신중하게 생각해서 선택하자.

미래는 지금과는 너무나 다른 세상이 될 것이다. 대부분 전문가들은 문화가 경제의 주축이 되는 시기가 될 것이라고 한다. 미국의 사회 비평가 리프킨(J. Rifkin)은 ‘접속의 시대’에서 산업생산시대는 가고 문화 생산의 시대가 올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다.

앞으로는 시장보다는 네트워크가, 물적 재산보다는 지적 재산이, 소유보다는 접속이, 재산 교환보다는 문화 체험이 더 진가를 발휘하게 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상품과 서비스를 파는 사업보다는 문화 체험을 파는 사업이 더 각광받게 된다는 것이다.

분명 미래는 하드웨어보다는 소프트웨어가, 그리고 소프트웨어보다는 거기에 담길 내용(contents)과 의미(concept)가 더 중요하게 될 것이다. 아무리 초고속 인터넷을 개설하고 그럴 듯한 홈페이지의 틀을 만들어도 거기에 담길 내용이 없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그렇다면 무엇으로 거기를 채울 것인가. 문화야말로 채워질 내용이요 의미이다. 다시 말해 문화 자체가 최고의 상품이 된다는 것이다.

지금 당장은 컴퓨터와 소프트웨어를 만들고, 외국어 능력을 쌓는 게 급선무일지 모른다.

그러나 컴퓨터와 외국어는 내용과 의미를 담는 그릇일 뿐이다. 궁극적으로 그 그릇에 내용과 의미를 채우기 위해서는 고도의 인문학적 상상력과 축적물이 필요하다. 따라서 문화의 시대에는 지금 홀대받는 철학, 문학, 역사와 같은 인문학이 가장 각광받게 될 것이다.

수험생들이여, 눈앞에 보이는 좁은 길을 택하기보다는 멀리 보면서 넓은 길로 가라. 그리고 진짜 공부는 대학에서 한다는 것을 잊지 말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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