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8년 제자의 간청으로 선생님 내외가 여름방학에 이 고장 서귀포에 찾아왔다. 선생님은 이 고장의 아름다운 경관을 둘러보고 고향인 원산의 명사십리도 아름답지만 서귀포의 경치도 빼어나게 아름답다고 감탄했다.
선생님은 유년시절 바다에서 헤엄치고 모래밭에서 뒹굴며 자랐기에 바다를 좋아하고 6.25 피란 시절 부산 앞 섬에 놀러갔다가 동요 ‘섬집아기’를 작사했다고 말했다. 그 당시 서귀포 초등학교에서 보이는 경치는 파란 논과 밭, 초가 몇 채, 운동장같이 넓은 바다, 그 위에 떠 있는 섬, 조금 걸어가면 자구리 해안에서 어린이들이 알몸으로 헤엄치는 모습, 휘파람 불며 잠수하는 해녀들의 모습 등으로 이것들을 보고는 과연 이 고장 분위기가 ‘섬집아기’의 내용과 같다는 제자의 편지에 동감했다. 현재는 논밭이 없어지고 연립주택들이 조망권을 방해하여 그 옛날 아름다운 경치가 아니다.
선생님은 환갑이 되면 다시 오겠노라고 약속하고 상경했는데 이듬해 광주에서 열린 세미나에 참석했다가 고혈압으로 쓰러져 49세에 타계했다.
제자에게는 큰 슬픔이었는데 그때의 모습과 말씀이 잊히지 않고 있던 참에 작곡자 이홍렬 선생님(작사자와 같은 고향 선배)의 아들인 이영조 교수의 착상으로 노래비가 세워진다 하니 한없이 고맙게 생각한다.
올해에는 온 국민이 ‘대한민국’을 외쳤고 제주도는 국제화를 부르짖는 마당에 도민들이 넓은 아량으로 이를 포용하면 감사하겠다. 가장 애틋하고 자연친화적인 노래가 사랑하는 내 고장 제주도에서 울려퍼지기를 두 손 모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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