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24시 - 제주축산물공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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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칫 거부감을 줄까봐 도축장 대신 ‘공판장’으로 불리는 곳. 불과 100년 전 ‘백정’으로 불리며 천시받기도 했지만 21세기의 도축장은 천지개벽했다.

모든 공정은 자동화되었고 일과를 끝낸 직원들은 뜨거운 물에 말끔히 샤워를 한 후 늘씬한 자동차를 몰고 퇴근한다. 이곳도 우리 이웃들이 구슬땀을 흘리는 생생한 삶의 현장이며 소중한 일터다.

20일 오전 7시 북제주군 애월읍 어음리 제주축산물공판장. 트럭의 굉음과 1000여 마리의 돼지들이 꽥꽥대는 울음소리가 조용한 새벽 하늘 멀리 메아리쳤다.

동이 트기도 전부터 도내 곳곳의 양돈장에서는 돼지를 싣고온 트럭 기사들은 새벽의 피곤함을 쫓기 위해 담배를 꺼내 물고, 도축장 안에 직원들은 날이 바짝 선 칼을 들고 임전 태세에 들어갔다.

새벽의 차가운 기운이 감도는 가운데 돼지를 가둔 계류장 첫 번째 두 번째 문이 차례대로 열린 순간 ‘돼지 몰이’가 시작됐다.

몰이꾼으로 나선 직원 3명이 100여 마리의 돼지들을 좁은 통로로 서서히 몰아넣기 시작하자 군집 성향이 강한 돼지들은 서로 경쟁하듯 앞으로 내달았다.

통로 30m 전방부터는 한 마리가 들어갈 공간밖에 없다. 뒤에서 계속 밀어대는 돼지들로 인해 최전방에 선 돼지들부터 천당에 들어갈 최후의 순간을 맞이하게 됐다.

경력 15년의 도축장 작업반장 이병주씨(43.가명)가 “작업 시작”이라고 외치자 각자 역할이 다른 40명의 직원들이 작업대 앞에 늘어섰다.

이 반장을 비롯한 직원들은 이름을 밝히기를 상당히 꺼려했는데, 다른 지방보다 제주도 정서가 유독 이들의 일에 대해 색안경을 끼고 보기 때문이라고 이 반장은 양미간을 찌푸렸다.

그러나 이들 모두 축협 직원이며 샐러리맨들이다. 다시 보면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며 이 일을 천직으로 삼고 구슬땀을 흘리는 건장한 사나이들이다.

한 줄 통로에서 발광을 하며 꽥꽥거리던 돼지들이 295V 전압이 흐르는 전살기를 목 양쪽에 갖다대자 순식간에 편안한 잠에 푹 빠졌다.

기절한 돼지들이 컨베이어 벨트에 의해 한 마리씩 들어오자 40대 후반의 한 직원이 능숙한 솜씨로 ‘방혈’을 했다. 돼지 목의 경정맥을 정확히 잘라야 온 몸의 피를 빼낼 수 있다.

1차 세척 후 섭씨 59도의 물로 6분간 몸을 씻겨내는 ‘탕박’을 거친 다음 약간의 화상을 입은 돼지들을 일명 ‘스크래퍼’로 온 몸에 밀착해 문지르기 시작한다. 이는 일명 ‘때밀이 작업’으로 이 때 털이 제거된다.

건조과정과 함께 털을 털어낸 후 잔털까지 확실히 제거하기 위해 화염방사기로 돼지 온 몸을 살짝 달궈 놓는다. 이들의 말처럼 ‘그슬린다’가 더 적절한 표현이다.

이러한 모든 과정은 기계가 순식간에 해치우기 때문에 이를 따라가는 직원들의 손길도 바빠진다. 다만 특정 부위의 절개와 적출은 수작업으로 이뤄지며 고도의 기술을 요한다.

마지막 공정으로 내장을 적출하고 돼지를 세로로 2분할한 후 지육검사에 이은 최종 세척을 마무리하면 등급 판정을 매기게 된다.

이어 한겨울에도 섭씨 0~5도의 일정한 온도가 유지되는 예냉실에 들어간 돼지고기는 경매를 거쳐 출고된다.

우리 식탁에 돼지고기가 오르기까지는 도축장에서 25가지의 공정을 거쳐야 한다. 도축장내의 직원 40명은 시끄러운 돼지 소리가 나는 작업장에서, 또는 섭씨 0도의 예냉실에서 묵묵히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할 뿐이다.

쌀쌀한 날씨 속에 작업에 들어간 직원들은 오후 4시 하루 작업을 끝낸 후 샤워를 하고 정문을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영락없는 샐러리맨들이다.

20년을 여기서 근무한 양기혁 관리과장은 “불과 10년 전만 하더라도 기계화.자동화가 안 돼 쇠망치로 돼지를 기절시키고 칼 한 자루로 모든 일을 해냈다”며 “그런 세월은 지났지만 이곳의 직원들은 앞으로도 우리 사회가 필요로 하는 장인들이다”고 목소리에 힘을 줬다.

공판장 직원이면서 수의사인 고성지씨는 “지금은 중단됐지만 과거 제주산 돼지고기가 일본으로 수출될 수 있었던 것은 여기 직원들이 오감은 물론 육감까지 동원해 조금이라도 문제가 있는 돼지고기를 발견해냈기 때문이다”고 말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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