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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 월드컵 4강의 영웅 거스 히딩크 네덜란드 아인트호벤 감독이 한국에 왔다.

가는 곳마다 국민들에게서 열렬한 환영을 받은 히딩크의 인기가 전혀 수그러들지 않았음을 실감한다.

한국과 브라질 간 축구 경기를 관전하고 여러 행사를 하기 위해 한국을 다시 찾은 히딩크는 국민들로 하여금 월드컵 4강의 감격스런 순간들을 다시금 떠올리게 하면서 지난 6월의 뜨거웠던 현장으로 돌아가게 했다.

국민적 영웅이 된 히딩크의 인기는 언제까지 갈 것인가.
문득 히딩크가 월드컵이 끝난 후 네덜란드로 돌아가지 않고 한국에 남아 아시안게임 국가대표 감독을 맡았더라면 어떠했을까 생각해 본다.

월드컵 4강 신화가 달성됐을 때 그에 대한 국민적 성원은 가히 광적이었다.
그는 신격화될 정도로 절정의 인기를 누렸다.

국민들이나 축구협회 관계자들은 그에게 아시안게임 때까지 감독직을 계속 맡아 달라고 열망하고 애원했다.

허나 그는 절대적인 국민적 성원을 뒤로 한 채 ‘다시 오마’라는 말을 남기고 홀연히 네덜란드로 돌아갔다.

허면 그 뒤를 이은 사람은 누구였나.
히딩크에게는 미치지 못하지만 역시 월드컵 4강 신화에 혁혁한 공을 쌓은 박항서 월드컵팀 수석코치였다.

월드컵 4강 신화가 탄생하자 히딩크의 숨은 조력자이면서 대표팀의 맏형으로서 애쓰는 모습이 TV 광고로 나올 정도로 그에 대한 인기도 어느 누구 못지않았다.

그는 월드컵 4강의 영웅으로서 ‘히딩크의 적자(嫡子)’로서 국민적 지지를 받으며 아시안게임 국가대표 사령탑을 맡았다.

그 결말은 어떠했나.
아시안게임서 우승은커녕 4강에서 허무하게 무릎을 꿇은 책임을 지고 불과 몇 개월 만에 대표팀 사령탑에서 쫓겨났다.

어제의 화려한 영웅이 하루아침에 초라한 존재로 전락해버렸다.
반면에 히딩크는 여전히 국민적 인기를 누리고 있다.

어쩌면 히딩크는 박항서 전 감독과 같은 결과를 예측했는지도 모르겠다.
국민적 후광에 부응해 아시안게임까지 대표직 감독을 수행하더라도 월드컵 4강과 같은 신화는 한국 축구사에 더는 없을 것이고 금메달을 따지 못하면 오히려 정점에 달한 국민적 인기가 떨어질 수 있음을 그는 알았을 것 같다.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랄까.

현재의 결과를 놓고 본다면 물러서야 할 때를 정확히 알고 과감히 떠날 줄 알았던 그가 진정한 승부사였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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