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데이트 - 중고서적 전문점 김창삼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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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책 장사요? 돈을 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에요.”

제주시 광양로터리 근처에 17년째 자리를 지켜오고 있는 책밭서점 대표 김창삼씨(46)는 10년째 책과 동거하고 있다.

‘그저 책이 좋아서’ 시작한 일이었다.

“지금도 잊혀지지 않아요. 1985년 2월 마지막 날에 친구 이사를 도와주려다 허탕치고 버스에서 내렸죠. 그 때 ‘책 할인매장’이라는 플래카드를 보고는 무턱대고 들어갔는데….”

도서 정리도 채 끝내지 못한 도내 중고 서점 1호 ‘책밭서점’은 그를 첫 손님으로 맞이했다.

그 때 함석헌씨의 ‘씨올의 소리’를 포함해 몇 권의 책을 사며 돈이 모자라 쩔쩔맸던 한 젊은 청년은 이후 단골손님이 됐다.

당시 주인 언니를 도우며 그를 맞았던 29살의 아가씨는 지금 아내(임영주씨.46)가 됐고.

“‘참, 젊은 아가씨가 헌 책방에서 고생하네’라는 생각이 들었지요. 그런데…허 참….”

책의 성품을 닮았는지 사람 좋은 인상을 한 그는 ‘책방 출입’ 2년 만에 결혼을 하고 1992년부터 아내와 함께 본격적인 서점 운영을 맡았다.

‘단골’에서 ‘주인’으로 변신한 그의 행복한 책 수집은 그렇게 출발했다.

지금도 고서(古書)를 보면 가슴이 두근거린다는 그는 서울에 물건을 떼러 갔다가 먼지 풀풀 날리는 책 한 권만을 달랑 품에 안고 비행기를 타고 온 적도 숱했다.

현재 30여 평의 면적에 꽂힌 책은 2만여 권. 창고에 보관 중인 책까지 합하면 7만권이 넘는다.

가게 한 켠에 쌓여 있는 낡은 책들은 건들기만 해도 부서질 정도로 위태로워 보였지만 세월의 윤기를 잔뜩 머금은 탓인지 빛나 보였다.

“고서만 한 5000여 권 될 겁니다. 연도를 가늠하기 힘들 정도로 희귀한 책들도 더러 있구요.”

조선총독부에서 300권 한정판으로 찍은 청나라와 조선의 외교문서 자료집 ‘事大文軌’(사대문궤), 광개토대왕비 탁본이 실린 비문탁본집인 ‘조선금석총서’(상.하)도 그가 아끼는 책 중 하나다.

소화 11년(1936년)에 펴낸 ‘제승방략’(조선총독부.300부 한정판)도 ‘四七’(사칠)번째라는 직인이 선명했다.

그는 ‘朝鮮史料集眞’(조선사료집진.상.중.하)의 경우 시가로 200만원은 족히 넘는다고 귀띔했다.

“어떻게 알고 왔는지 여행객들도 찾아오기도 하고 심지어 신혼여행을 와서는 신부를 2시간이나 세워놓고 책을 보고 가는 사람도 봤어요.”

벌이가 괜챦냐는 질문에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싸다고 해서 헌 책을 사는 시대는 지났어요. 돈에 구애받지 말아야지, 돈을 벌겠다고 생각하면 도저히 할 수가 없어요.”

그는 중고책뿐만 아니라 새 책도 할인가격으로 되팔기도 한다.

동화책 등 어린이 도서는 가게에서 비교적 잘 팔리는 품목 중 하나.

“책에도 수명이 있어요. 대중적 인기를 끌었던 베스트셀러가 한 순간 뚝 끊어지면 창고에 재고 물량이 쌓이게 됩니다.”

결국 순식간에 폐지로 변한 책을 1t 트럭 두 대에 가득 싣고 내다버렸던 가슴 아픈 기억도 털어놨다.

그의 꿈은 제주 관련 자료를 모아 자료실 하나를 만드는 것.
사람들에게 옛 제주문화의 정취를 흠뻑 느낄 수 있도록 하고 싶다는 소박한 바람 때문이다.

현재 그가 모은 제주 관련 책은 1000여 권 정도.

“인터넷이 보급되면서 책 보는 사람들이 더 줄었어요. 함부로 버리지 말고 마을문고에라도 기증하는 마음을 가졌으면 합니다.”

문학 지망생, 대학 교수, 꿈 많은 학생, 자녀 손을 잡은 주부 등 모든 이들의 푸근한 안식처였던 책밭서점.

아직도 손님이 없을 땐 이 책 저 책 뒤적이는 그는 가게 안을 한 번 쭉 둘러보기만 해도 그냥 배가 부른단다.

“지금은 책을 소홀하게 생각하지만 언젠가는 ‘종이책’을 소중히 여기는 때가 반드시 다시 올 겁니다.”
책밭서점 (752)5126.


▲책밭서점은
1985년 2월 개점 당시 헌 책방은 전파상처럼 고물업으로 취급됐던 시절이었다.

김창삼.임영주씨 부부가 1992년 7월 1일자로 ‘도서신문 판매업’으로 공식 사업자등록을 받았다.

당시 5평에서 출발한 ‘책밭’은 네 차례 자리를 옮기면서 현재 30여 평 공간으로 변했다. 도서도 7000여 권에서 7만여 권으로 10배 늘어난 셈.

대부분 서점이 갖추고 있는 ‘인터넷’망도 없이 옛날 그대로 방식으로 책을 고르며 구수함을 느낀다.

고(古)미술을 좋아하는 이들 부부는 전통다기, 도자, 매듭, 비녀, 등잔 등 50여 종을 갖춰 가게 한켠에 자그마한 민예품 코너를 마련했다.

옛 교과서를 비롯해 참고서, 사전류, 각종 전공 서적과 다양한 문화예술잡지 등 말 그대로 ‘없는 것 빼고’는 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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