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그리고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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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12월. 한해가 저물어 간다.
서두르지 않으면서 멈추지 않는 시간에 시작과 끝이 따로 있겠는가.
사람들은 이 유유한 시간의 흐름을 구분하여 1년을 만들고 또 12달로 나누었다.

흐르는 시간에 마디마디를 만들어 매듭을 짓게 한 것은 무슨 의미일까.
아마 스스로를 돌아보는 자기 성찰의 시간을 갖자는 뜻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진짜 속뜻은 한해동안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많은 잘못을 저질러 놓고는 새해를 전기 삼아 새롭게 다시 태어나, 새 소망을 기약하는 명분으로 삼으려 만들었을 것 같다.
새해 아침 설날을 원단(元旦) 혹은 정단(正旦)이라고 하는 것도 그런 의미가 있어서일 것이다.

▲동서고금을 통해 사람들은 새해는 원점에서 다시 시작한다고 상정했던 것 같다.
원점이기에 과거의 허물이나 잘못에 구속되지 않는다고 애써 자위하려 했다.

또 그동안의 좌절이나 질곡에서 벗어나 다시 희망을 품을 수도 있고 다시 일어설 수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묵은 해를 보내며 새해를 서로 축하한다.
송구영신(送舊迎新)의 의례는 이렇게 생겨났다.
부모나 친지, 스승이나 선배를 찾아 지난 한 해 소홀했음을 사과하고 새해 소망을 담아 새 인사를 드리는 것이다.
정 여의치 않을 때는 편지를 써 보냈는데 이것이 연하장의 기원이다.

▲남에게 보내는 글만 편지가 아니다.
자기가 자기 자신에게 보내는 편지도 훌륭한 편지가 된다.
고려 중엽의 문신이었던 이규보(李奎報)는 훗날 ‘동국(東國)의 문종(文宗)’이라는 찬사를 들은 문호다.

그는 관운이 뒤따르지 않아 40세가 넘도록 한림원(翰林院) 임시직으로 떠돌아다니는 자신이 무척 서럽고 억울했다.

그런 그가 자신을 위안하기 위해 자기 자신에게 위문편지를 쓰곤 했다.
편지명이 ‘선인을 대신하여 나에게 부치는 편지(代仙人寄予書)’. 보내는 사람은 신선(神仙)이고 받는 사람은 자신이었다.

▲세밑이면 누구나 무엇인가 허전하고 마음 한 구석이 텅빈듯 누구에겐가 편지를 쓰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럴 때 편지를 쓰자. 편지를 기다릴 것이 아니라 먼저 편지를 쓰자.
이메일이라도 좋을 것이다.

요즘 날씨처럼 스산한 마음으로 지친 하루를 보낼 때, 문득 책상에 놓여 있는 편지는 그 무슨 선물보다도 큰 기쁨이 될 것이 틀림없으니 말이다.
보고 싶은 사람, 만나고 싶은 사람들에게 ‘선인을 대신하여’ 먼저 편지를 써보내 볼 만한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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