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수레와 큰 수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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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수철 한신대 교수/소설가

선거철이 되면 나는 인간의 본성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근래 들어 새로이 중요하게 부각되고 있는 진화심리학에 따르면, 인간은 철저히 이기적인 존재다. 우리가 어떤 상황에서 이타적인 행동을 하는 것도 사실은 좋은 평판을 얻어 장차 다른 곳에서 부수적인 이익을 얻으려 하는 것이라고 한다.

 심지어 부모가 자식들을 위해 희생적인 사랑을 베푸는 것도 따지고 보면 자식들이 생존할 수 있게 도움으로써 자신의 유전자가 계속 복제되게 하려는 바람의 결과라는 것이다. 요컨대 인간에게 비상호적 이타주의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그런데 우리가 늘 보다시피 선거에 나선 후보자들은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서 헌신하겠다고 공언한다. 우리는 그들의 말을 어디까지 믿을 수 있을까. 투표를 하는 것과 배우자를 선택하는 것 사이에는 흡사한 점이 있다. 진화심리학은 충실한 남편과 비열한 남자를 분명히 나눠놓고 있다. 여자들은 장기적 짝짓기 전략을 추구하는 남자와 단기적 짝짓기 전략을 추구하는 남자들을 구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여자는 미혼모가 될 위험에 처하게 되고, 그럴 경우 그녀와 자식들의 생존확률은 떨어지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남자들은 정조를 지키는 아내와 바람을 피우는 아내를 구별해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뻐꾸기처럼 자기 둥지 속에 다른 사람의 씨가 들어앉아 있는데도 그런 줄도 모르고 그 아이를 키우기 위해 시간과 노력을 바쳐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유권자들은 장기적으로 동행할 수 있는 충실한 남편과 절개를 믿을 수 있는 아내를 선택해야만 이용당하거나 기만당하는 일을 피할 수 있다. 그러나 이기심이 인간의 마음속에 깊이 뿌리박혀 있는 마당에 이는 실로 어려운 일이다.


물론 우리 주위에는 그런 이기적 본성을 경계하고 넘어서려는 사람들이 있다. 자신의 분야에서 나름의 소신을 가지고서 묵묵히 실천하고 수행하는 사람들이다.

 다시 진화심리학에 따르면, 인간의 머릿속에는 오직 자신의 생존만을 최우선의 목표로 생각하는 파충류 뇌라는 게 있는데, 부처의 가르침은 사실 그 파충류 뇌의 준동을 제어하려는 노력과 깊은 관계가 있다고 한다.


불가에는 소승과 대승이라는 개념이 있다. 말 그대로 ‘작은 수레’라는 뜻의 소승은 자기 한 개인의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사람이고, ‘큰 수레’라는 뜻의 대승은 자타가 함께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사람이다.

그리하여 가장 이상적인 것은 작은 수레에서 시작하여 큰 수레가 되는 것인데, 내 한 몸 기꺼이 버리겠다고 공약을 내세우는 정치가들 중에 그렇듯 각고의 수행을 거쳐 이상적인 수레에 이른 자가 얼마나 있을까.

또 불가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염소 수레, 사슴 수레와 구별하여 하얀 황소 수레가 곧 중생을 피안으로 이끄는 유일한 길이라고 하는데, 염소 수레, 사슴 수레가 하얀 황소 수레인 양 가장하고 나서서 세상을 어지럽히는 일이 지금도 수시로 벌어지고 있음을 아무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언젠가 어느 솔직한 후보자가 나서서 이런 연설을 해주기를 간절히 바라마지 않는다. 그렇다면 나는 주저 없이 그에게 한 표를 던질 것이다.


“저는 제가 누구보다 이기적인 인간임을 인정합니다. 욕심을 버리고 마음을 비우고자 애쓰지만 너무도 어렵습니다. 사실 제 지나온 삶도 간신히 구색을 갖추었을 뿐, 지리멸렬하기 짝이 없습니다.

이 자리에 선 것도 사실 남들 앞에 나서서 위세를 부리고 싶은 게 제 성향이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저는 염소 수레나 사슴 수레가 어울릴 뿐, 감히 하얀 황소의 수레는 엄두도 내지 못합니다.

하지만 장차 저 자신을 감시하고 통제하는 시스템을 가동시켜서 여러분께 누를 끼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낙선하면 결과에 승복하겠지만 마음속으로 분노와 적개심을 느낄 것입니다.

그러니 저라는 한 인물 살려주시는 셈치고 저를 뽑아주십시오. 어차피 누가 되든 거기서 거기가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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