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헤치고…부수고…날림보수까지 옛 등대
파헤치고…부수고…날림보수까지 옛 등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페이스북
  • 제주의뉴스
  • 제주여행
  • 네이버포스트
  • 카카오채널

제주의 해양생활 유적인 ‘도대불’이 도로 개설과 다리 공사로 사라지고 있다.
‘도대불’은 어촌에 전기가 보급되기 전 조업하는 어부들의 생명을 밝혀주던 민간 등대로, 현대 등대의 역사를 밝혀주는 해양유적으로서 그 보존방안이 마련돼야 할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보존 실태
1997년 발간된 ‘제주의 도대불’(이덕희 저)에 따르면 17곳에 도대불의 시설물이나 터가 남아 있었다. 하지만 5년이 지난 올해 12월 현재 제주섬에 시설물과 터를 확인할 수 있는 곳은 12곳뿐이다. 그마나 온전한 도대불은 북제주군 구좌읍 김녕리, 조천읍 북촌리, 한경면 고산리, 서귀포시 보목동.대포동, 제주시 용담동 정도에 불과하다. 대부분 도대불 굽만 있고 자취를 감춰버렸다.

도대불을 훼손시킨 주범은 해안도로 개설이나 다리 공사였다.
조천면 신촌리의 도대불은 마을 포구의 동.서 방파제를 잇는 ‘큰물교’를 지난해 말 준공하면서 도대불 굽만 남겨둔 채 밀어버렸다. 병 모양으로 된 안덕면 대평리의 도대불은 방파제 해안도로를 내면서 자취를 감췄다. 그 자리엔 전봇대가 서 있다.

행정당국이 문화재보수공사를 하면서 훼손한 경우도 있다.
한경면 두모리의 도대불이 대표적인 경우. 이 도대불은 해양방어유적으로서 ‘연대(煙臺.제주도기념물 23호)’가 기능을 다해 연대 위에 도대불을 세운 형태로 두모포구의 자랑거리였다. 지난달 초 두모연대 보수공사를 하면서 포클레인으로 밀어버렸다.

애월읍 구엄리의 도대불은 돌탑 위에 철탑을 세워 등불을 밝혔던 첨단 도대불. 이젠 도대불의 발달과정을 밝혀주는 이 도대불은 철탑이 철거된 채 굽만 남아 있다.

▲보존대책
이와 관련해 학계 일각에서는 “도대불의 역사가 100여 년 안팎이지만 제주의 해양사의 일부를 밝히는 유적일 뿐 아니라 제주를 대표하는 돌문화유산으로 보호 가치가 있다”며 “옛 등대임을 알리는 안내판을 설치하고 보존 상태가 양호한 도대불을 문화재로 지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근대문화유산’ 등록제도는 개화기에서 해방 전후까지 격동기에 지어진 근대 건축.기념물을 문화재 후보군으로 지정해 보호하는 작업으로, 도대불의 경우 충분한 지정 가치가 있다는 게 학계의 설명이다.

한편 제주도는 이달까지 제주의 포구.원.도대불.방사탑 등 민속유적에 대한 실태조사를 벌이고 있다.

▲제주 도대불
‘도대불’의 어원은 ‘길을 밝히는 불’이라는 의미에서 ‘도대(道臺)불’, 또는 등대의 일본음인 ‘도두다이’에서 왔다고 추정되나 정설은 아니다. 제주에서는 1906년 우도 등대의 점등된 게 현대 등대 역사의 시작이다. 100여 년 안팎의 역사유적이지만 조업 나간 어부의 길잡이 역할과 해상방어의 기능을 함께 했다. 모양과 위치를 보아 마을 액을 막는 ‘방사’의 기능도 겸한 것으로 알려진다. 해상방어 요지에 자리하고 있으며 지금도 해안초소가 들어선 곳이 많다.

도대불은 마을마다 형태가 다르다. ‘방사탑(防邪塔)’ 형태(용담동.신촌), 피라미드 형태(김녕), 첨성대 형태(대포), 사다리꼴 형태(보목), 병 형태(대평), 원통 형태(귀덕) 등으로 마을의 개성을 드러낸다. 도대불은 조업하러 가는 어부들이 켰고, 배가 들어오면 껐다고 한다. ‘솔칵’으로 불을 지폈거나 생선기름을 이용한 호롱불, 석유 등피불을 사용했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