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조 원시림의 봄(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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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포수와 야수
북극지방에는 봄이란 것이 없다. 6월에서 8월까지는 여름이고 나머지는 겨울이다.

그러나 이곳 극동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북쪽 라조 원시림에는 봄 또는 봄과 비슷한 계절이 있다. 고작 보름 정도의 짧은 기간이지만 어둡고 추운 겨울이 밝고 더운 여름으로 돌변해가는 계절이 있다.

그 짧은 기간에 극적이고 격렬한 변화가 일어난다.

겨우내 어디 간지도 알 수 없던 태양이 쑥스러운 듯 상공에 나타나자 두껍게 대지를 덮고 있던 얼음과 눈이 부드득부드득 소리를 내면서 깨어지고 그 안에서 파릇파릇한 싹이 돋아난다.

그러면 큰일이 벌어진다. 모든 것들이 ‘봄이다, 봄’이라고 외치면서 한꺼번에 움직인다.

라조 원시림에 그런 계절이 오면 삼림 감독관 나조로프는 긴장한다. 그에게는 그런 봄을 축복해 줄 마음의 여유가 없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겨우내 죽은 듯이 움직이지 않던 생물들이 갑자기 깨어나고, 깨어나자마자 피투성이 싸움을 벌이기 때문이었다.

가장 먼저 움직이는 것은 밀렵자들이었다. 라조 원시림은 1930년부터 자연보호지구로 지정돼 삼림 감독관들이 밀렵자들과 싸움을 해왔는데 봄이 되면 삼림에는 피가 뿌려지고 비린내가 떠돈다.

1939년 봄에는 특히 그랬다. 그 해는 봄이 이상하게 빨랐다.
그 해는 무척 추운 겨울이었는데 갑자기 추위가 멈추고 봄이 들이닥쳤다.

나조로프는 당황했다. 그는 면적이 2000㎢나 되는 광대한 라조 원시림의 동남쪽 지역을 담당하고 있었는데, 그 지역에서는 수십 마리나 되는 시베리아 대호들이 영토를 다투고 있었다.

겨울 동안 굶주린 멧돼지, 사슴, 노루 등 초식동물들이 연한 싹을 뜯으려고 돌아다녔는데 역시 굶주린 범들이 그들을 덮쳤다.

그리고 밀렵자들이 그런 범을 노리고 날뛰기 시작한다.
범의 화사한 가죽은 거래가 금지되자 그 값이 몇 배나 더 뛰었고, 밀렵자들은 일확천금을 노렸다. 그들도 목숨을 걸고 범사냥을 했다.

“서피린이 왜 돌아오지 않나?”
삼림 감독관 사무실에는 나조로프를 포함해 여섯 명의 단속대원들이 있었는데 밀렵단속 순찰을 나갔던 다른 대원들은 돌아왔으나 서피린과 그의 짝이 돌아오지 않았다. 순찰 나간 지 사흘이 되었는 데도 소식이 없었다.

나조로프가 서피린을 내버려두고 다른 대원들과 개들을 데리고 순찰에 나서려고 했을 때 서피린의 짝이었던 쭈그미족 사라라가 달려왔다. 서피린이 죽었다는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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