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짐승 저런 짐승(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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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포수와 야수
흑염소를 물고 간 짐승에 대해서 말이 많았다. 그 일대 짐승을 잘 아는 포수가 현장을 조사하더니 모르겠다고 말했다. 도대체 정체를 알 수 없고 괴물이라는 말이었다.

우선 그 괴물이 우리 안으로 들어온 방법이 특이했다. 범, 표범, 늑대 같으면 우리의 방책을 타넘고 들어왔고 곰인 것 같으면 앞발로 방책을 때려부쉈는데 그 괴물은 방책 밑에 지하터널을 파고 들어왔다. 꽤 큰 터널이었으며 괴물은 어렵지 않게 그 터널로 염소를 끌고 나갔다.

어떤 짐승이길래 그런 토목공사를 할 수 있었을까. 우선 곰을 생각할 수 있었으나 곰은 아닌 것 같았다. 그 터널은 곰이 통과할 수 있을 정도로는 넓지 않았다. 그리고 곰은 그렇게 능숙하게 땅을 파지 못했다.

다음 오소리에게 혐의가 갔다. 오소리는 족제비과의 짐승이었는데 땅 파기의 명수였다. 오소리 같으면 그런 터널을 팔 수 있었다.
현장에 남아있던 발자국도 오소리와 비슷했고 떨어져 있는 길고 거친 털도 오소리의 것과 같았다.

그러나 모두가 범인이 오소리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족제비 종류의 짐승이 다 그렇듯 오소리도 성미가 사나운 짐승이었으나 마을 안에 들어와 우리 안에 있던 흑염소를 물고 갈 정도로 대담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런 능력도 없었다. 오소리는 몸길이가 고작 70㎝밖에 안 되는 작은 짐승이었고 잡식성이고 추위를 싫어했다. 그런 오소리가 어떻게 검은 염소 사냥을 하겠는가. 검은 염소도 날카로운 뿔이 있고 성질이 사나웠으며 그렇게 맥없이 오소리에게 당할 짐승이 아니었다.

또 하나 범인이 오소리가 아니라는 증거가 남아 있었다. 죽은 흑염소의 시체는 그 반쯤이 없었다. 내장과 뒷다리 그리고 갈비뼈의 일부가 없었다. 모두 약 15㎏나 되었다. 몸무게가 10㎏밖에 안되는 오소리는 한꺼번에 그렇게 많이 먹을 수 없었다.
“그렇다면 그건 오소리가 아니지.”

사냥꾼들의 말을 듣고 있던 주지스님이 말했다. 그 산사에서 20여 년 동안이나 살고 있던 주지는 누구보다도 산짐승들을 알고 있었다. 주지스님은 사냥꾼들이 괴물의 정체를 묻자 한참 동안 생각을 하고 있었다.

“염소의 아랫배가 찢겨져 있었다는 말이지. 이빨로 뜯겨진 것이 아니라 발톱으로 찢겨졌다는 말이군.”
“괴물의 발자국이 오소리와 비슷하다고 말했는가?”
“아니지요. 모양이 그렇다는 것이지 크기는 전혀 달랐습니다. 오소리의 발자국보다 열배나 큰 엄청난 발자국이었습니다.”
주지스님이 한참 후에 말했다.
“그건 담비야. 족제비의 괴물이라는 담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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