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짐승 저런 짐승(15)
이런 짐승 저런 짐승(15)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페이스북
  • 제주의뉴스
  • 제주여행
  • 네이버포스트
  • 카카오채널

명포수와 야수
산사에서 불곰이 나간 지 사나흘쯤 되었을 무렵 밤중에 소리가 들렸다. 우엉 우엉하는 범의 포효였다.

꽤 가까웠으나 주지스님은 염불을 계속하고 있었다.
크게 염려할 것 없었다. 범은 매년 그맘때 돌아오게 되어 있었다.
그 곳의 범은 몇 백㎢나 되는 광대한 영토를 갖고 있었으며 한 군데에 머물지 않았다. 특히 겨울철에는 먹이를 찾아 이산 저산을 돌아다녔으며 산사가 있는 곳에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나 범은 매년 초봄에는 산사 주변에 나타났다. 먹이가 되는 멧돼지, 사슴, 노루 등이 은신처에서 나와 돌아다니기 때문이었다.

범은 산날을 타고 그 곳에 도착하면 포효를 했다. 자신이 돌아왔다는 선언이었고 자기 영토에 있는 침입자들에게 빨리 나가라는 경고였다.
다음날 정오께 약초꾼 두 사람이 산사에 뛰어들어왔다. 창백한 얼굴이었으며 벌벌 떨고 있었다.
“스님, 멧돼지가 죽어있었습니다. 한쪽 귀가 잘린 그 늙은 멧돼지의 배가 갈라져 죽어있었습니다.”

주지스님도 그 늙은 멧돼지를 알고 있었다. 황소만한 멧돼지였으며 산골 사람들은 그놈을 산지기로 알고 있었다. 그 늙은 멧돼지는 한쪽 귀가 크게 찢겨진 채 있었는데 그건 몇 년 전 표범과 싸우다가 입은 상처였다. 산지기와 싸웠던 표범은 아랫배가 찢겨져 죽었다.

“산지기는 콧등에도 큰 상처가 있었습니다.”
누가 산지기를 죽였는지도 알 만했다. 황소만한 멧돼지의 콧등을 물고 쓰러트린 다음 배를 갈라 죽인 짐승은 범 외에는 없다. 그곳 일대를 다스리는 대왕범만이 그런 짓을 할 수 있었다.

약초꾼들은 멧돼지의 사체을 보자 바로 산사로 뛰어들어왔다. 탐스러웠던 멧돼지 고기 몇 점을 떼어낼 용기도 없었다.
약초꾼들은 아직도 겁을 먹고 범이 사라질 때까지 산사에 머물게 해달라고 애원했다. 마침 주지는 며칠 후에 시주를 받으려고 산사에서 내려갈 생각이었으므로 약초꾼들을 그때 데리고 가기로 했다.

대왕범은 그 곳에서 떠나지 않았다. 범은 매일밤 포효를 하고 있었다. 신경질적인 포효였으며 무엇인가 마음에 들지 않은 것이 있는 것 같았다. 자기 영토에 다른 범이나 표범 따위가 들어와 있는지도 몰랐다. 사냥꾼들이 돌아다니는지도 몰랐다.
주지스님은 그래도 나흘 후에 예정대로 산사에서 떠났다. 젊은 무술승 한 사람과 나무꾼 두 사람이 따라갔다.

주지스님은 출발한 지 몇 시간도 되지 않아 범의 발자국을 발견했다. 눈이 녹은 땅 위에 뚜렷하게 찍혀 있었는데 엄청난 크기였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