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짐승 저런 짐승(16)
이런 짐승 저런 짐승(16)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페이스북
  • 제주의뉴스
  • 제주여행
  • 네이버포스트
  • 카카오채널

명포수와 야수
“좀 서둘러야만 되겠어.”

날이 어두워지기 전에 밤나무숲 안에 있는 숯꾼영감의 토굴까지 가야만 했다.
날이 어두워지면 밤짐승들이 설친다. 범뿐만 아니라 표범, 곰, 늑대들도 먹이사냥을 하게 되고 사람도 그 사냥감이 될 수 있었다. 그 곳 짐승들은 낮에는 사람들에게 덤벼들지 않지만 밤이 되면 달라진다. 악마처럼 사람을 덮치는 짐승들이 있었다.
“스님, 저기를 보세요.”

무술승이 말했다. 무술승은 용감한 젊은이였는데 그런 그도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저쪽 산마루에 얼룩덜룩한 무늬가 걸려 있었다. 범은 석양을 등에 업고 우뚝 서 있었다.
과연 뭇짐승들의 왕답게 웅장했다.

“그대로 가. 범을 보지 말고 천천히 걸어가.”
주지스님이 조용하게 말했다. 범을 보자 반사적으로 도망가려던 나무꾼들도 멈췄다. 그들은 공포에 질려 있었다. 범이 등 뒤에서 덮칠 것 같았으나 스님이 뒤에서 천천히 따라오고 있었다. 부처님처럼 믿음직한 스님이었다.
사실 주지스님과 그 왕범 사이에는 일종의 불가침조약이 맺어져 있었다. 10년 가까이 그 산림에서 살고 있던 스님과 범은 과거 서너 번쯤 만난 일이 있었으나 아무런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몇 년 전에는 스님이 어느 산마루를 넘어서자 바로 앞 바위 위에 범이 있었다. 그때는 스님도 놀랐지만 범도 놀랐다. 범은 반사적으로 뒷발에 힘을 주고 일어서려고 했다. 긴 꼬리가 뻣뻣하게 섰다. 먹이를 덮칠 때의 버릇이었다.
거리는 불과 열서너 발쯤 되었다. 범으로서는 단 한 번에 뛰어넘을 수 있는 거리였다.

“어험.”
스님이 헛기침을 했다. 그리고 범의 시선과 마주치고 있던 눈을 돌렸다. 스님은 먼 산을 보면서 천천히 걸어갔다. 범에게는 관심이 없는 것 같았다.
그게 스님과 범과의 인사법이었다. 범이 긴장을 풀었다. 범은 꼬리를 내리고 옆으로 누웠다. 범도 스님에게 관심이 없다는 태도였다.

스님은 그때도 젊은승과 나무꾼들을 데리고 범의 존재를 무시하고 산 아래쪽으로 내려갔다. 스님은 날이 어두워지고 있을 때 산 중복에 희미한 불빛을 발견했다. 숯꾼영감의 토굴집이었다.
“어서 오십시오 스님.”

나무꾼 영감은 벌써 발자국 소리를 듣고 밖으로 나와 있었다. 첩첩산중에서 혼자 사는 그 영감의 귀는 토끼처럼 예민했다. 코도 늑대처럼 냄새를 잘 맡았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