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루괴담(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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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포수와 야수
피리영감의 피가 뿌려졌다. 그가 죽인 수백 마리의 노루들처럼 영감도 피를 뿌리면서 죽어갔다.

“잡아. 저 놈을 꼭 잡아. 그리고 금화를 찾아와.”

피리영감은 그렇게 중얼거렸으나 이내 숨이 끊어졌다. 정 서방 형제가 영감을 안아 일으켰으나 영감은 빨리 암살자를 추격하라고 손짓하면서 죽었다.

정 서방 형제가 큰소리로 다른 사람들을 불러 피리영감을 봐주라고 부탁하고 자기들은 암살자를 추격했다.

암살자의 거동은 빨랐다. 그는 산에서 내려가려고 했다. 높지 않은 산이었기 때문에 쉽게 장안으로 가는 큰길을 찾을 것 같았다.

그러나 날이 아직 밝지 않아 암살자는 대충 방향을 잡고 어둠을 뚫고 갔다. 그는 그동안 궁중에서 나온 마님을 경호하고 있었기 때문에 산세를 대충 알고 있었다. 그는 마님의 지시에 의해 마님과 하룻밤을 지낸 화전민 총각을 죽였다. 뒤를 미행하다가 등뒤에서 덮쳐 칼로 찔러 죽였다. 그리고 그 시신을 늑대들이 살고 있는 바위산에 버렸다.

늑대의 예민한 코가 그 시신의 냄새를 맡았다. 늑대들은 시신을 뜯어먹었다.

암살자의 거기까지의 행동은 마님의 지시에 의한 것이었으나 그후부터는 그렇지 않았다. 총각을 죽이고 그가 갖고 있던 은화를 뺏은 칼잡이에게 욕심이 생겼다. 그는 피리영감이 마님한테서 받은 금화들을 빼앗기로 했다.

그 돈을 빼앗아 멀리 함경도로 도망을 가버리면 된다. 그 돈이면 그 곳에서 편안하게 살 수 있었다.

칼잡이는 자기의 계획이 성공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칼을 잘 썼으나 산은 잘 몰랐다.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은 산에서 내려올 수가 없었다.

정 서방 형제의 신속한 행동으로 열서너 명의 활꾼들이 산을 포위했다. 그들은 마치 짐승의 몰이사냥을 하듯 산의 요소요소를 지키고 있었다.

정 서방 형제는 횃불을 들고 칼잡이의 발자국을 추적했다. 칼잡이는 그 추적을 피하려고 이리 뛰고 저리 뛰었으나 산에서 내려오지 못했다. 칼잡이는 도리어 산 위쪽으로 도망가고 있었다.

날이 밝고 있었다. 날이 밝자 활꾼들은 칼잡이를 발견했다. 밤새 뛰어다녔던 칼잡이는 기진맥진해 있었다. 그는 그래도 산을 내려가겠다고 기어가고 있었다.

수십 개의 화살들이 날아갔다. 칼잡이는 전신에 화살이 꽂혀 죽었다. 그는 금화가 든 주머니를 꼭 쥔 채 죽었다. 그렇게 피리영감도 죽고 그를 죽인 칼잡이도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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