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수들의 영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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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포수와 야수
1928년 7월 아프리카 서남부 앙골라에 있는 모코산 남쪽 기슭에 높이가 10m쯤 되는 관망대가 설치되었다. 관망대는 영국 왕실박물관 소속 학자들이 설치했는데 그 밑에는 포르투갈의 관리들이 주둔하고 있는 야생동물관리소가 있었다.

본디 그 일대는 바위산들과 반사막들이 퍼져 있었으며 원주민들이 농사도 지을 수 없는 불모지였다.

그러나 남쪽 구앙고강이 흐르고 있는 일부 사바나지역은 달랐다. 몇 십만 평쯤 되는 사바나에는 땅에 습기가 있어 풀들이 무성했으며 드믄드믄 나무들도 있었다.

그 곳에 많은 야생동물들이 몰려들었다. 각종 영양과 얼룩말 등 대형 초식동물들이 떼를 지어 살고 있었고 그들을 노려 사자, 표범, 하이에나 등 육식동물들이 돌아다녔다. 잡식성인 비비들의 무리들도 나무에서 내려와 그 사바나의 일각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래서 영국의 여류학자 세실 여사 등은 그 곳에 높은 전망대를 만들어 그 동물들을 관찰하고 있었다. 침팬지 등 유인원 등을 전문으로 연구하는 세실 여사와 그의 조수인 대학원생 인겔드양과 사진작가 파튼 등은 거의 하루종일 관망대 위에 올라가 있었다.

“저 사람들은 밥도 먹지 않을 작정인가.”

저녁 식탁에서 기다리고 있던 관리소장인 루이스가 빨리 내려와 저녁밥을 먹자고 고함을 질렀다.

“사자들이 다가오고 있는데 비비들이 아직 남아 있어요.”

금발의 인겔드양이 긴장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피비린내 나는 싸움이 벌어질 것 같았다.

그 곳에는 수컷 네 마리, 암컷 여덟 마리, 새끼 열 마리로 구성된 사자의 무리들이 살고 있었는데 그들은 평소에는 비비들을 공격하지 않았다. 비비들이 사바나 북쪽에 있는 산림뿐만 아니라 사자들이 살고 있는 동쪽 초원에까지 들어와 있어도 사자들은 비비들을 덮치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날은 상황이 좀 달랐다. 날씨가 흐리고 무더웠다. 사자들은 그런 날씨를 싫어했다. 더구나 그날 원주민 소몰이꾼들이 소떼들을 몰고 천천히 사자의 영지내를 지나갔다.

그럴 때는 사자들이 신경이 날카로워져 으르렁거렸다. 그까짓 소들쯤이야 당장 찢어죽일 수 있었으나 아무래도 긴 창을 쥐고 그들을 경호하고 있는 원주민 사냥꾼들이 마음에 걸렸다.

그들과는 싸울 수 없었다. 그들의 동족들이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마을에 살고 있었으며 싸움이 벌어지면 그들이 벌떼처럼 덤벼들 것이었다.

그래서 사자들이 다른 곳에서 화를 풀 염려가 있었다.

“비비들도 쉽게 당하지 않을 것입니다.”

관리소장 루이스는 비비들을 잘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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