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산의 포수마을(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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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포수와 야수
산림안에서 불을 피워놓고 있던 자들을 살펴보러 갔던 장비장군의 부하가 돌아았다.

“뭐라고, 20명 가까운 놈들이 모여있다고….”

“네, 나무꾼들도 있었고 호벌대들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정체를 알 수 없는 놈들도 서너명 있었는데 그중에는 산골마을에서 만났던 소금장수들도 있었습니다.”

“이런 고약한 놈들이 있나.”

장비장군이 대로했다. 그는 마을에 돌아가 비상경계령을 내렸다. 싸울 수 있는 장정들은 모두 무기를 갖고 마을 앞마당에 모였다. 모두 40명이나 되었으며 마을 바깥에 있는 장정들까지 합치면 50명이 넘었다.

그들은 산골 사람들을 못살게 만드는 평지 양반놈들을 쫓아내자고 고함을 지르고 있었다. 그들은 시퍼렇게 날을 세운 창과 칼을 휘두르고 있었으며 마을에는 살기가 떠돌고 있었다.

그들 장정들 뿐만이 아니었다. 마을에서 살고있는 남녀노소 거의 모두가 흥분하여 평지 양반놈들을 쫓아내야된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사실 평지 양반사회에서는 산골에 사는 포수들을 천민으로 간주하고 있었다. 짐승들과 함께 짐승들처럼 사는 포수는 백정과 다름없는 천민이라는 말이었다. 그들 양반들은 포수들을 집안 하인들처럼 마구 대했고 자기들 앞에서는 무릎을 꿇게 했다.

그들 평지 양반들은 차츰 산림에까지도 세를 뻗쳐 들어와 산골 주민들에게 여러가지 명목으로 과세를 했고 노역을 시켰다. 그래서 산기슭에 살던 산골 사람들은 마을을 버리고 산중복에 올라와 화전민이 되었고 그 일부는 포수마을에 들어왔다.

포수마을에는 또한 극심한 신분차별 때문에 평지에서 살지 못했던 백정이나 역부등 천민들도 들어와 있었다. 포수마을에는 그런 신분차별이 없었기 때문에 그들은 떳떳하게 살 수 있었다.

평지사회에서 떠도는 소문처럼 포수마을에는 노비들도 있었다. 그들은 목숨을 걸고 도망친 사람들이었으며 포수마을에서 신분을 숨기고 살고 있었다. 포수마을 사람들도 또한 그들의 신분을 캐내려고 하지 않았다.

포수마을의 장정들이 평지 양반들의 염탐꾼들을 쫓아내자고 고함을 지르고 있을 때 장비장군의 애첩인 여두목이 그들을 제지했다. 10여년전에 함흥에서 기방(妓房)을 경영했던 그 여인은 매우 영리했다.

여두목은 아침부터 어두워지고 있는 하늘을 보면서 평지사람들은 제발로 물러날 것이니 그들과 싸울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그럴 것 같았다. 겨울이 갑자기 닥쳐 들고 있었다. 눈이 내리고 있었고 강한 바람이 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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