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산의 포수마을(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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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포수와 야수
마을사람들은 애써 긴장감을 감추려고 했으나 그렇게 되지 않았다. 일부 마을사람 특히 젊은 장정들의 태도에는 은연한 적대감이 있었다. 그들은 가난한 산골사람들을 억누르고 있는 관리나 양반들을 좋아하지 않았다. 산골사람들을 천민으로 보고 반말을 쓰면서 하인처럼 대하는 양반들을 싫어했다. 그들은 평소 그런 지배에서 벗어나 자주적으로 살아가야 된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말을 하지 않았으나 박사원은 일부 마을사람들의 적의를 느꼈다.

사실 무슨일이 일어날지 몰랐다.

박사원의 조사결과 여하에 따라서는 포수마을은 반역의 마을로 간주될 수 있었다. 포수마을의 촌장은 반역도당의 수괴로 처벌될 수 있었다. 국법은 역적에 대해서는 가혹한 처벌을 하도록 되어 있었다.

촌장인 장비장군이 역적으로 몰릴 이유가 몇가지 있었다. 이미 밝혀지고 있는 것만도 장비장군은 국법을 무시하고 밀림안에서 나쁜짓을 한 사람들을 잡아 멋대로 즉결처형하거나 손목을 잘랐고 매질을 하여 재산을 몰수했다. 조정의 왕도 못하는 짓이었다.

그는 또한 국법이 정한 신분제도를 무시하여 노예나 탈영병들을 숨겨주고 있었고 산골에 사는 사람들을 징발하여 노역을 시켰다.

마을사람들도 자기들이 역적으로 몰릴 위험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제발로 마을에 들어온 관아의 염탐꾼들에게 무슨짓을 할지 몰랐다. 후환(後患)을 없애기 위해 그들을 죽일수도 있었다.

그러나 박사원은 마을 여두목의 안내를 받고 마을촌장 사랑방에서 장비장군과 대좌(對坐)했다. 장비장군은 양반의 의관을 갖추고 있었으며 박사원도 그를 양반으로 대접했다. 그의 부친 장성대는 10여년전 함흥관영과 힘을 합쳐 만주와 조선의 국경을 넘나들던 소수민족 침략자들을 물리친 공으로 종삼품 대접을 받고 있었으니 그 아들도 소홀히 다룰 수 없었다.

소문대로 장비장군은 육척거구였으며 날카로운 눈과 거친 수염을 갖고 있었다. 그는 시무룩한 표정이었으며 별로 말이 없었으나 박사원은 그 인물이 자기를 마을로 유인하여 모살(謀殺)할 위인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그는 그런 음흉한 짓을 하지못할 인물 같았다.

박사원도 더이상 자기의 신분을 감추지 않았다. 그는 자기는 조선북방의 경비를 살펴보고 무산의 산림에 사는 산간마을 백성이나 화전민 포수마을들의 실태를 조사하려고 왔다고 말했다.

“포수마을의 실태를 조사하겠다고….”

장비장군의 눈이 번쩍였고 방안에 긴장감이 감돌았다. 장비장군이 고함을 지르면서 칼을 빼 들지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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