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바라는 나라와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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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는 제주도보다 더 작은 나라들이 여럿 있다. 그래서 가끔 거창한 꿈을 꾸어 본다. 만일 제주도가 무인도이고, 55만 인구가 거기에 새로운 나라를 건설한다면, 그리고 내가 그 나라 건국에 참여하게 된다면, 내가 바라는 나라는 어떤 나라일까?

우선 운(運)에 의해 내 인생이 좌우되지 않는 나라였으면 좋겠다. 내가 잘한 것도 아닌데 운이 좋아 혜택을 받고, 내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운이 나빠 불이익을 받는 사회는 바람직한 사회가 아니기 때문이다.

나의 잘잘못은 내가 떠맡지만, 가능하면 내 힘으로 어쩔 수 없는 것은 나에게 책임을 묻지 않는 사회였으면 좋겠다. 그리고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그 무엇이 그 사람의 운명을 결정짓지 말았으면 좋겠다. 누군들 가난한 집에 태어나고 싶고, 누군들 여자로 태어나고 싶었겠는가. 그리고 누군들 남보다 못한 두뇌와 외모를 가지고 태어나고 싶고, 누군들 장애인으로 태어나고 싶었겠는가.

물론 그것들은 다 전생의 업이고 하느님의 뜻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것이고, 그로 인한 모든 불행은 자신이 감수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으리라. 그러나 그 모든 책임을 개인에게 돌리는 것은 설득력이 부족하다. 만일 우리 사회가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빈부, 성별, 인종, 재능, 두뇌, 건강상태 등이 큰 문제가 되지 않는 사회라면, 누가 그 때문에 눈물을 흘리겠는가. 그런저런 선천적인 이유 때문에 차별받는 사회가 지속된다면, 지금의 나는 즐거울지 몰라도 내 후손들이 큰 고통을 당할지도 모른다. 지금 나는 운이 좋아 혜택을 누리고 있지만, 훗날 내 손자는 운이 나빠 평생 불이익을 받으며 살아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평생 ‘정의(正義)’라는 한 가지 주제만 가지고 연구하다가 지난 11월 24일 서거한 하버드대 철학과 롤스(J. Rawls) 교수는 선천적인 능력은 공동의 자산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내가 능력이 있다면 너를 돕고, 네가 능력이 있다면 나를 돕도록 하자는 것이다.

아마 그런 사회가 된다면, 지금처럼 혼자 행운을 독차지하지도 않고, 혼자 불운을 다 감수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리고 롤스는 정의로운 사회에서는 아무리 다수에게 이익이 된다 하더라도 소수의 권리를 침해해선 안 된다고 주장한다. 뿐만 아니라 불평등해야 할 합리적인 이유가 없다면, 모두 평등하게 대우해야 한다는 것을 주장한다. 정당화되지 않는 차등은 나쁘다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어떤 정책을 펼 경우, 구성원들 가운데 현재 가장 소외받는 집단에 가장 많은 혜택이 돌아가도록 해야 한다. 그런 사회라면 점점 빈부의 격차가 줄어들 것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빈부 격차가 점점 더 벌어지는 이유는 정책을 펼 때 소외받는 집단보다 기득권을 가진 집단을 먼저 고려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소수의 행복을 위해 다수가 불행을 감수해야 하는 사회이다. 다수의 행복을 위해 소수가 희생되는 것은 정의롭지 못하다. 그러나 소수의 행복을 위해 다수가 희생되는 것은 더욱 더 정의롭지 못하다. 내가 바라는 나라는 운에 의해서 인생이 좌우되지 않고, 소수의 행복을 위해서 다수가 희생되지 않으며, 더 나아가 다수의 행복을 위해 소수의 권리가 무시되지 않는 나라이다.

새로 뽑힐 대통령은 다수 국민들의 고통을 이해하고 그들과 함께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아니, 국민들에게 웃음을 안겨주진 못할망정 피눈물을 흘리게 하지는 말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자신이 내건 공약(公約)을 공약(空約)으로 만들지 말고 진정으로 새 나라를 건국한다는 심정으로 5년간 열심히 일해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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