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그 데이즈(Dog days-삼복 더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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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톤숄츠. 코리아컨설트 대표
서양에서 ‘도그 데이즈(dog days -직역-개같은 날들)’는 여름 중 가장 덥고 습기가 많은 날을 뜻한다. 더위가 계속되는 요즘 잠자리에서 일어나 맞는 아침 그 자체가 고통과도 같다. 어떤 일도 하기 싫을 정도의 고통스런 열기와 높은 습도때문에 온 몸의 힘과 에너지가 쏙 빠져나갈 정도다. 이런 날씨와 맞서기 위해선 에어콘을 켜고 사는 일이 상책인 듯하다. 아니면 산으로 여행을 떠나 시원한 개울가 다리 밑에 눕거나 말이다. 그것도 아니라면 개고기를 먹는 일로도 더위를 대신할 수도 있겠다.

그래서일까? 엉터리 주장이라는 것이 명백하지만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개같은 날들’이란 의미는 한국으로 부터 온 것일 수도 있다. 그것도 수세기를 걸쳐 오면서 아주 더운 여름 날 동양 의학에 따라 몸의 열을 식히고 여름에서 기를 보충하기위한 방법으로 말이다.

근래 들어 부쩍 나의 절친한 친구들이 함께 영어로 ‘도그(dog-개)’를 먹으러 가고 싶은지 물어왔다. 당연히 영어로 들어도 그것이 길에서도 사먹을 수 있는 핫 도그를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은 분명히 알고 있다. 물론 대부분의 외국인들이 개고기를 먹는데에 부정적일 것이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친구들이 조심스럽게 주저하며 얘기하는 것이 보통 있는 일이다. 그러나 사실 나는 몇 차례 이미 개고기를 먹은 바 있으며 그걸 먹는데에 아문런 문제가 없었다.

어려서 부터 늘 집에서 친구와 가족과도 같았던 개들과 살아온 내가 이렇게 개고기를 먹는 것에 대해서 오히려 내 한국인 친구들과 외국인 친구들이 더 이상하게 생각할 정도다. 지금 내가 기억할 수 있는 어렸던 시기의 개의 이름을 푈자였다. 북실북실한 털로 덮힌 따듯한 배에 베고 누워 함게 잠이 들었던 나의 첫번째 친구였다.

그래서 말인데 나는 정말 개들을 사랑한다. 지금껏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런데 그런 내가 어떻게 개고기를 먹을 수 있단 말인가? 그러고 보니 나는 다른 동물들 역시 사랑하고 내 어린 시절엔 토끼며 새들이며 그밖에도 다양한 다른 동물들과 한집에 살았었다.

내가 키우던 그 동물들을 무척 사랑했지만 그렇다고 나는 채식주의자가 되지는 않았다. 작은 토끼가 얼마나 예쁜지 알지만 그와 달리 맛있는 토끼 요리가 얼마나 많은지도 알고 있다. 작은 돼지는 또 얼마나 귀여운가. 그리고 큰 눈망울의 어린 송아지는 또 어떻고? 이렇게 생각하자면 끝이 없다. 모든 동물을 사랑하고 모든 동물을 먹는 것이 도덕적으로 잘못이라고 생각해서 채식주의자가 되었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본다.

그러나 거의 모든 종류의 동물을 먹으면서 단지 개고기를 먹는 것을 야만인 정도로 생각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나의 이런 얘기에 개는 매우 영리하며 인간과 가장 가깝게 살아온 동물이기 때문이라고 반박할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안다.

영리한 동물에 대해서 이야기하자면 돼지를 언급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다. 돼지가 개보다 영리하다는 것을 아는가? 물론 위에서 이미 나의 유년시절을 언급했듯이 개와 인간사이에서는 깊은 연대감이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지만 보는 동물이라고 해서 먹을 수 없다고는 생각치 않는다.

내가 개고기를 즐겨 먹지 않는 이유는 좀 더 맛있는 고기를 만들려는 의도로 개들에게 고통을 주며 죽이진 않을까하는 우려때문이다. 개고기는 일반적인 다른 육가공품과 달리 정확한 취급 법규 등에 의해 통제가 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어떻게 사육하고 도살해야하는지 모른다. 어떤 규제도 없이 고기를 얻거나 육질을 좋게하기위해서 불필요한 고통을 주는 것이 걱정이 든다.

요즘 사람들은 개를 때려서 죽이지 않는다고 말하는데 그것이 사실이길 바란다. 그러나 지금 아파트에 살기 몇 년 전까지만해도 광주의 내 이웃집에서는 매년 봄마다 작은 강아지를 여름에까지 키워 먹었다. 나는 개가 맞고 죽어가는 소리를 들어야만 했는데 그 소리는 참을 수 없는 공포와 고통 그 자체였다.

결국 나는 그 집 앞에 가서 집주인이 개를 때리는 것을 멈출 때까지 대문을 거세게 두둘겨 댔다. 내가 결코 그 개를 살려 낼 수 없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그렇다고 그대로 있을 순 없었다. 그래서 좋은 환경에서 동물을 사육하고 고통없이 빠르게 죽인다면 개를 먹는 것이 수치스럽게 여길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2002년 한일 월드컵이나 다른 외국 기관이나 단체들이 개고기 소비를 금지토록 하려는 요청이 있어왔음을 기억한다. 당시 나는 그들의 그러한 요구에 몹시 화가 났었다. 내가 개고기를 먹고 또 먹어야 해서가 아니라 그러한 요구가 믿을수 없을 정도로 무례하고 다른 나라의 음식문화에 대한 무지에 의한 간섭이 아닐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만약 이슬람 국가의 기관들이 그들의 종교때문에 런던 올림픽 기간동안 국민들이 돼지고기를 먹지 말고 술도 마시지 말라고 요구한다면 영국은 뭐라고 할 것인가?

그런 요구는 아마 영국뿐만이 아니라 세계적인 항의와 격노를 불러 일으킬 것이다. 그러나 당시 한국인들에게 개고기를 금지시키는 일은 항의의 불꽃을 일으키진 못했다. 오히려 한국 정부는 고개를 숙이며 식당들을 숨기는데 급급했다. 이것이야 말로 오히려 수치스러운 일이다.

동물보호와 종 보존을 위해 고래를 포획하는 것이 창피한 일이 되자 포장마차와 특수한(?) 식당의 테이블 위에 그 고기들이 놓여 있게 되었다. 고래, 개 말고 다른 동물은 국제적으로 보호해야할 종이 아닌가? 작은 뒷골목 어딘가에서 숨듯이 비밀리에 먹어선 안될 것이다. 어쨌든 지금은 삼복 더위 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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