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도 살아 숨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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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현대건축의 씨를 뿌린 거장 김중업(1922~1988년)과 세계 현대건축계 거장에서 마지막 계보를 잇는 멕시코 출신 리카르도 레고레타(1931~2011년).

국내와 세계에서 손꼽히는 이들 건축 거장은 공교롭게도 제주와 예사롭지 않은 인연을 갖고 있는 공통점을 지녔다.

당대 최고 거장의 손끝을 거쳐 만들어진 걸작 건축물이 제주의 자연과 어우러져 유작으로 남겨진 것도 그렇고, 안타깝게도 해당 유작이 철거되거나 철거 위기에 놓여 있는 것 또한 그렇다.

거장 김중업이 제주에 남겼던 걸작은 1964년에 설계해 제주시 용담동에 자리잡았던 제주대 본관 건물이다. 우주선 외형의 공상과학적 미래도시를 연상케 하는 건축물로, 고인이 만든 대표 건축물의 특성인 살아 움직이는 듯한 곡선의 미를 담아내 한국 현대건축사의 한 획을 긋는 걸작으로 평가받았다.

하지만 제주대 본관은 2012년 현재 흑백사진으로만 볼 수 있는 추억 속의 건축물로 남았다. 제주대의 아라동 이전 이후 자연을 배경으로 아름다움을 연출했던 건축물이 시름시름 낡으면서 구조적인 안전 문제로 결국 1995년에 철거됐기 때문이다.

당시 한국 건축계 원로들까지 직접 제주를 찾아 보존 운동을 벌였으나 걸작 건축물은 끝내 새로운 생명을 얻지 못하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15년 후 세계 건축계의 거장 레고레타가 서귀포시 중문 제주국제컨벤션센터 옆에 컨벤션 앵커호텔의 모델하우스인 ‘더 갤러리-카사 델 아구아(물의 집이라는 뜻)’를 지었고 이는 유작으로 남겨졌다. 카사 델 아구아는 레고레타의 명성에 걸맞는 수작으로 평가받는다. 제주의 파란 하늘 및 따사로운 햇빛, 쪽빛 바다와 조화를 이루는 아름다운 색감과 마치 숨을 쉬는 듯한 외벽의 질감, 편안하고 따스한 느낌의 내부공간 등은 거장 특유의 인간적인 건축미의 진수를 보여준다.

그러나 카사 델 아구아 역시 철거 위기에 놓였다. 레고레타가 제주에 선물로 남긴 걸작이기에 앞서 사업 시행자가 바뀌는 과정에서 불법 가설 건축물 신세로 내몰렸기 때문이다. 이에 서귀포시가 행정 대집행이란 강경 입장을 밝히면서 제주대 본관 전철을 밟을 기로에 놓인 셈이다.

사실 엄밀히 따지면 카사 델 아구아는 사설 건축물이다. 그만큼 행정 입장에서는 법대로 처리해야 하며, 혹시 모를 소유권 및 매각 여부 등을 둘러싼 분쟁에 휘말릴 소지도 차단해야 한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할수록 의문은 커진다. 처음 앵커호텔 투자 유치 후 제주국제자유도시에 걸맞는 세계적 건축물이라고 홍보하던 제주도가 어떻게 불법 건축물에 이르도록 놔두었는지 말이다. 또 혹시 예전처럼 행정 책임자의 마인드가 좀 더 긍정적이었다면 과연 지금의 파국 상황처럼 전개됐을까 하는 아쉬움도 크다

그동안 홍콩과 싱가포르, 상하이 등의 국제자유도시를 취재하면서 느낀 점은 ‘지속 성장 가능한 도시’는 과거와 현재, 미래가 공존할 때 만들어지며, 그 중심에 건축물이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제주는 안타깝게도 근대와 현대를 넘나드는 소중한 건축물을 잃고 말았다. 그리고 현대와 미래를 잇는 귀중한 건축물까지 잃어버릴 기로에 놓였다. 행정 집행에 앞서 어느 때보다 신중한 선택이 요구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처럼 중요한 시점에서 카사 델 아구아의 철거를 반대하는 건축계에도 정중히 요청한다. 제주대 본관 철거 당시 원로 건축가들처럼, 카사 델 아구아 철거 반대에 앞서 영구적인 보존과 함께 세계적 건축물로 만들 수 있는 전문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절실함을 보여줄 것을 말이다.

그래야만 행정이 도민들에게 카사 델 아구아의 존치 필요성에 대해 설명하고, 이해 관계에 놓인 기업들을 설득해 해결의 실타래를 풀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과정 속에서 제주의 초가와 서양 건축물을 융합한 창조적인 건축물이 탄생하는 꿈도 만들어지지 않을까.



<김태형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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