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을 만든 사람들 - (2)부인 권양숙 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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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정치인생 일으킨 '버팀목'


권양숙 여사는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의 굴곡진 정치인생을 일으켜세운 큰 버팀목이었다.

노 당선자가 1977년 법복을 벗고 재야 변호사, 정치 입문, 낙선 등으로 힘들 때 ‘남편보다 한 발 뒤’에 서서 남편에 대한 존경과 인내로 묵묵히 그를 지켜주었다.

이런 권 여사를 노 당선자는 “여러 가지로 어렵고 힘들 때 내 아내 양숙씨는 누구보다도 든든한 후원자이자 동지다”라고 말하곤 했다.

권 여사는 1947년 경남 마산시 진전면에서 태어났다. 부산 혜화여중을 졸업하고 계성여상 졸업 3개월을 앞두고 공납금을 못내 중퇴했다. 그래서 그녀의 학력은 중졸이다.

이후 부산에서 사회생활을 하던 중 고향에 들렀다가 동네 총각인 노 당선자와 만나 결혼했다. 그러나 노 당선자와 행복한 시절은 10여 년. 노 당선자가 1975년 제17회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1978년 변호사로 개업을 한 후 1981년 부림사건 변론을 계기로 인권.재야 변호사의 길을 걸을 때였다.

1987년 대우조선 사건으로 변호사 업무 정지처분을 받고 구속되면서 권 여사는 불면의 밤을 맞았고 노 당선자는 1988년 국회의원 배지를 달았지만 그후 네 차례 낙선했다. 권 여사는 이런 그를 묵묵히 지켜보았다. 원칙과 소신을 존중하는 ‘정치인 노무현’의 정치 철학을 존중하기 때문이었다. 이런 권 여사를 노 당선자는 “내 집안의 골동품”이라고 표현했다.

하지만 권 여사는 노 당선자가 대통령 출마 의사를 밝혔을 때 ‘정치인으로서 내조’를 망설인 평범한 가정주부였다. 가정과 정치는 별개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러나 올해 노 당선자가 ‘마음 편하게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드는 데 가교 역할을 할 수 있다는 확신이 서면서 적극 도왔다.

선거운동기간엔 ‘소외계층 대변자’라는 노 당선자의 이미지를 행동으로 받쳐주기 위해 사회복지시설을 다녔다. 노 당선자의 연설과 TV토론, 언론 관련 보도 모니터도 했다. 매일 아침 신문을 정독하고 시사잡지를 꼼꼼히 챙기는 권 여사는 ‘뉴스 중독자’라는 별명을 갖게 됐고, 노 당선자는 “내 아내는 신문 보는 것만 빼고 다 마음에 든다”고 말하곤 했다. 이런 착실한 내조 덕에 노 당선자는 ‘대통령’의 꿈을 이뤘다.

내년 2월 청와대 새 안주인이 되는 권 여사의 ‘초심’이 5년간 지속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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