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정치1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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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제 의원. 1997년 대선 이후 그의 정치행보는 그의 정치적 양부인 김영삼(YS) 전 대통령을 닮았다. 집권당인 국민회의(민주당의 전신)에 입당한 것은 YS의 3당 합당에 비유됐다. 그리고 YS가 집권당 대통령 후보를 낚아챈 것처럼 그는 ‘국민의 정부’ 4년 동안 집권당 후보의 입지를 다졌다. 적어도 1년 전만 하더라도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로 그를 지목하지 않는 당내 인사는 드물었다. 확산된 그의 대세론은 어느 누구도 막을 수 없을 것으로 보였다. 순탄하던 그의 앞길은 김대중 대통령의 민주당 탈당을 계기로 당내 사정이 급속히 악화되면서 암초를 만난다. 그로선 최대의 정치적 실수로 꼽히는 ‘국민경선제’ 수용은 당내 위기상황과 맞물려 있다.

그러나 그는 경선 결과를 낙관했다. 그를 대적할 만한, 조직을 갖춘 마땅한 후보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의 캠프는 모든 경쟁 후보를 들러리로 생각했다. 따라서 적당한 표차로 1등으로 달려 국민경선을 축제의 마당으로 삼아 ‘흥행 대박’을 터뜨린다는 전략이었다.

그의 계산법이 빗나간 것은 첫 경선지인 제주에서였다. 정치권의 예상을 깨고, 2위로 주저앉았던 것이다. 상징성이 가장 큰 지역으로 꼽히는 제주에서의 실패는 전국으로 걷잡을 수 없을 만큼 번졌고, 급기야 그는 중도에서 경선을 포기, 두 번째 경선 불복이란 오명을 뒤집어쓴다.

경선 당시 노무현 후보는 제주에서 18.6%를 획득해 3위에 그쳤지만 경선 승리 가능성에 불을 지핀다. 무엇보다 제주에서 얻은 소득은 ‘이인제 대세론’에 제동을 걸었다는 사실이었다. 당시 그의 캠프는 이 점을 들어 제주 경선 결과를 평가했다. 실제로 그는 제주의 여파를 몰아 울산, 광주 등을 거치며 1위를 굳히고 끝내 국민후보로 선출된다.

▲제주는 노무현 경선후보에겐 기회의 땅이었다. ‘도약의 발판’이라는 선물을 안겨준 지역이었다. 노 후보는 이에 보답했다. 이번 대선에서 승리하면서 제주만이 가질 수 있는 ‘선물’을 내놓았다. 그것은 ‘국민경선제’의 정착이었다. 노 당선자의 등장으로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는 국민경선을 통해서만 뽑힐 수 있게 된 것이었다. 달리 말하면 첫 경선지인 제주가 ‘신 정치1번지’로 확실히 자리매김을 했다는 의미다.

제주 경선에서 한화갑 후보가 1위를 차지할 수 있었던 비결은 경쟁 후보 가운데 가장 제주를 많이 찾은 것이었다. 이 점은 민주당 모든 관계자가 인정을 한다.

우리 정치 시스템상 앞으로 대권에 도전하려는 정치인은 반드시 제주에서 인정을 받아야만 한다. 이는 우리에게는 복이고,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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