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린우호, 성신교린’ 토대로 제주 국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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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시민교류 페스티벌 이조 통신사’의 교훈-
지난달 일본 시즈오카현에서 ‘시즈오카.코리아 시민교류 페스티벌 2002’ 행사가 열렸다. 이번 행사는 지난번 한.일 정상회담 협의에 따라 양국 정부와 민간단체 등의 공동 참여에 의해 실현된 것으로, 필자는 정사(단장)의 자격으로 제주도교류단 55명과 함께 참가해 행사를 성대히 마쳤다.

▲300년간 평화교류를 선도한 우리의 자랑
일본 시즈오카현은 여러 가지 면에서 우리 제주도와 유사한 점이 많아 친근감을 더한다. 두 지역에는 양국을 대표하는 명산이 있고 산과 바다가 조화를 이루는 빼어난 자연경관을 바탕으로 최고의 관광지로 각광받고 있을 뿐만 아니라 감귤, 녹차, 해산물 등 특산물과 한.일 양국이 공동 개최한 ‘2002 월드컵’ 또한 두 지역에서 성공적으로 열려 세계적으로 더욱 유명해진 공통점도 갖고 있다.

이러한 유사점을 최대한 활용하고 우호 친선과 공동 번영을 위한 교류.협력관계를 구축하고자 제주도와 시즈오카현은 ‘교류 증진을 위한 실무합의서’를 체결하고 두 지역 간 청소년 교류, 한라산과 후지산 교차 등반 등의 교류를 폭넓게 진전시켜 왔다.

일본 역사를 보면 시즈오카현은 에도막부를 개설한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고장이다. 그는 이곳에서 태어나 전국통일에 위업을 달성한 후 260년간 계속된 막부 정권을 평화적으로 통치하는 기틀을 마련했다.

또한 그는 조선통신사 유치를 통해 임진왜란 이후 엉클어진 당시 조선과 일본의 국교관계를 회복시키고 조선 문화를 적극 수용해 교류 확대를 통한 평화공존체제를 실현시켰다. 그 결과 통신사가 경유한 일본 각지에는 당시 조선의 선진 유교문화가 전파돼 일본문화 형성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이번 행사는 이러한 당시의 뜻을 되살리고자 이에야스의 유적이 있는 시즈오카현에서 제주지역 청소년들과 시민들을 초청하고 조선통신사 재현 행렬을 통해 옛 선인들의 선린우호의 뜻을 되새김으로써 월드컵 이후 양국의 교류를 더욱 공고히 하고자 했던 행사였다.

▲세상은 변해도 역사적 교훈은 영원히 빛나
‘선린우호.성신교린’을 기본으로 하는 조선통신사의 기본이념은 평화공존과 상생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제주국제자유도시의 성공적 추진과 함께 ‘평화의 섬’이라는 이미지를 세계인에게 각인시킴으로써 동북아시아의 허브 지역으로 가고자 하는 제주도로서는 이러한 역사적 배경을 갖는 행사를 통해 일본 국민들에게 제주의 이미지를 높일 수 있는 호기가 됐다.

더욱이 이번 행사에는 제주지역 대학생들이 동아리를 중심으로 참가해 홈스테이를 하며 다다미, 전통차, 오니기리(일본식 주먹밥) 등의 일본문화 체험 기회를 가졌다. 그리고 선진 경제사회를 이룩한 일본인들의 생활예절과 양식을 배웠으며, 현대 자율경쟁사회에서의 우월적 지위 확보를 위해 선연(善緣)을 이루는 공존체제가 필요하다는 것 또한 느꼈다.

우리나라 4000년 역사를 볼 때 한.일 간 교류를 쌓고 친밀하게 지내던 시대에는 두 나라는 더불어 번영을 누렸다. 그러나 서로 다투며 침략하고 상처를 입혔던 아픔의 시대에는 두 나라가 같이 불행해 부끄러운 기록을 남겼다. 우리는 이러한 역사를 통해 ‘현자(賢者)는 역사에서 배우고 우자(愚者)는 저질러 놓고도 깨닫지 못함’의 교훈을 재인식해야 한다.

국익 또는 국민복리의 척도가 경제적 빈부에 의해 좌우되는 오늘날, 세계 경제대국의 위치를 고수하며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는 일본 경제기술에서 벤치마킹해야 할 부분은 분명히 많다. 우리는 그들의 문화를 이해하고 옥석을 가려 자아실현을 성취해야 함은 물론 교류 증진을 통해 진정한 동반자임을 서로가 깊이 인식해야 한다. 과거사에 얽매여 현실을 외면하는 것은 자기 자신과 사회에 대한 소극적이며 안일한 처사일 뿐이다.

이번 행사에 출발 전날 필자는 400여 년 전 조선왕조가 임진왜란을 막지 못했던 큰 패인을 떠올리며 당시 통신사 부사로 일본에 건너가 정치 실정을 정찰하고 돌아왔으나 당파심에 휘말려 “일본이 조선 침략의 우려가 없다”고 왕에게 진언한 학자 김성일의 묘를 찾았다. 그는 왜란 발생 후 자신이 잘못을 크게 뉘우치고 곽재우 장군 등과 의병을 일으켜 진주성을 지키다 전사했다.
우리는 이러한 역사를 깊이 교훈삼아 국제교류에 있어서 좀더 현실적이며 능동적으로 대처해야 한다.
21세기 제주발전에 초석이 될 ‘제주국제자유도시’의 성공적 추진을 위해 ‘선린우호.성신교린’을 기본이념으로 하며, 상생의 길을 도모했던 옛 선인들의 얼을 되살려 국제화 사회에서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도록 세계화된 안목에서 도민 모두의 적극적인 노력이 앞으로 더욱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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