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소의 내면세계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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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종철/제주대학교 화학과 교수

사람을 비롯한 동·식물은 일종의 화학실험실 또는 화학공장처럼 수천 종류의 화학반응이 그 속에서 진행됨으로써 살아가고 있다. 일반적인 실험실이나 공장과 달리 인체의 반응은 온화한 조건에서 수행된다.

 

몸 속의 화학반응에는 황산, 질산 같은 강한 산이 관여하지 않는다. 또한 반응은 37℃ 정도의 낮은 상태와 중성 부근의 pH에서 일어난다. 이런 조건들 하에서 반응을 진행시키는 것은 대단히 어렵다.

 

인체에서 수천 종류의 화학반응이 온화한 조건에서도 잘 일어나는 이유는 반응 촉매, 효소가 관여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진행되지 않는 화학반응도 효소가 존재하면 너무나 자연스럽게 일어나며, 이때 발생하는 에너지를 이용하여 삶을 영위한다.

 

이 효소의 능력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카탈라제(catalase)라는 효소는 과산화수소를 물과 산소로 분해하는 것이다. 이 효소 한 분자는 1초에 9만 개 정도의 과산화수소 분자를 분해하는 것으로 밝혀져 있다. 100㎖의 소독약(3%의 과산화수소를 포함)에 1㎎의 카탈라제를 첨가하면 5분 정도 이내에 모든 과산화수소는 분해한다.

 

효소에는 더 중요한 기능이 탑재되어 있다. 즉 한 효소는 정해진 어떤 특별한 반응만 촉진시킨다. 사람이 밥을 먹었을 때 효소, 아밀라제가 작용하여 녹말을 분해한다. 아밀라제는 37℃라는 낮은 온도 등 온화한 조건에서 반응을 순조롭게 진행시켜 밥이 체내에서 제구실을 할 수 있게 한다.

 

효소가 어떤 특정 물질만을 선별하여 작용하는 성질을 효소의 특이성(specificity, 特異性)이라 칭한다. 효소의 작용을 받아서 화학반응을 일으키는 물질을 기질(substrate, 基質)이라고 한다. 효소와 기질 간의 관계는 흔히 열쇠와 열쇠구멍에 비유된다.

 

대부분의 효소를 명명할 때 ‘-아제(-ase)’라는 접미어를 붙인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disease(질병)를 효소의 하나로 착각하는 경우도 있다. disease를 효소로 표현할 때는 장난끼가 발동했을 수도 있다. 물론 ‘-아제’가 첨부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효소, 프로테아제(protease)는 고기를 부드럽게 하는 활성 성분으로 작용하여 질긴 고기를 먹기 쉬운 연한 고기로 만든다. 프로테아제 또는 카보하이드라제(carbohydrase)는 동물의 소화·흡수를 돕기 위해 동물 사료에 첨가할 수도 있다. 또한 프로테아제는 맥주 혹은 쥬스를 혼탁하게 만드는 단백질을 분해하여 맑게 만드는데도 사용된다.

 

우리 조상들은 질긴 육류를 연화시키기 위해 어떤 지혜를 썼을까? 할머니들은 배, 무우, 양파 등을 갈아 고기를 재워놓고 조리했다. 그 이유는 이들 속에 단백질 분해효소가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조상들은 생화학 또는 식품화학을 전공하지 않았지만 선대부터 축적되어 온 생활의 지혜가 있었기에 우리들이 연한 고기를 즐길 수 있었던 것이다. 마늘과 생강도 단백질 분해능력을 지니고 있다.

 

락타제(lactase)는 젖당(lactose)을 포도당과 갈락토스(galactose)로 가수분해하는 효소이다. 그래서 이 락타제는 아이스크림, 농축유 등에서 용해도가 적은 젖당의 결정 석출 방지와 감미증강에 사용된다.

 

고등식물의 과실에 존재하는 펙틴(pectin)은 과즙음료, 포도주 등에 불용성 침전을 형성하여 제품의 질을 떨어뜨릴 수 있다. 이때 펙티나아제(pectinase)는 이들 펙틴을 가용성으로 만들기 때문에 과즙과 포도주 등의 청징에 이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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